가을로 다가옹 친구야 - 박금숙
헤이즐럿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 끝에 서서
막바지 푸르름에 혼신을 다하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지
들꽃들의 향연이 이어지는 산책길,
자잘한 풀들까지 육안으로 확인될 만큼
가까운 그 길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할 정도로
난 왜 그렇게 지리멸렬하게 살았을까
하지만 너를 알고 나서
모든 게 달리 보인다는 것
하늘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았고
늘 같은 자리에 나란히 가지를 쪼는
새들의 다정함을 알았으니까
그래,
황량한 사막에 희귀의 싹이 돋는다 해서
크고 튼튼한 나무 되지 말라는 법 없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런 나무 말이야
사람이 나무처럼
긴 세월을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 한 번쯤 누군가에게
뿌리내리고 싶은 건 마찬가지 아닐까
더운 여름 다 가고 가을로 다가온 친구야
이왕 한 발짝 다가섰으니
우리 함께 떨어지는 낙엽이었음 좋겠다
그리고
새봄이 오면 그 자리에서 다시
새잎으로 돋아나 만날 수 있는
나무이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