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 아, 둥글구나
우리는 똑같이 두팔 벌려 그애를 불렀다.
걸음마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애가 풀밭을 되똥되똥 달려왔다. 한번쯤 넘어졌다
혼자서도 잘 일어섰다.
그애 할아버지가 된 나는 그애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들
고 있었고
그애 할머니가 된 나의마누라는 그애가 좋아하는 바나나
를 들고 있었다.
그애 엄마는 아무것도 들고있지 않았다. 빈손이었다
빈가슴이었다 사실 그는 그럴필요가 없었다.
달려온 그애는 우리들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다가 초콜릿 앞에서 바나나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다가 제엄마 품으로 뛰어들었다. 본시 그곳이
제자리였다 알집이었다
튼튼하게 비어있는, 아, 둥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