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가을 편지 - 박얼서
그댈 만난 날
수줍은 듯 마주치던 철쭉 길 능선을 따라
연초록 푸른 가슴을 열고
서로 볼 꼬집으며 반기었지요.
그댈 만난 날
중인리를 떠나 금산사로 넘어오던 길
짙푸른 무더위 계곡물에 띄워
한 여름 어화둥둥 날려 보냈죠.
어느덧 이 가을 속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와
우뚝 선 곳 정상입니다. 산은
석양을 등진 모습으로
낯익은 손님을 맞이합니다
기억 푸르던 시절
메아리 하나 둘 불러봅니다
이 골짝 저 골짝 흩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다가
가늘게 떨리며 되돌아옵니다
청설모는 여전히 부지런합니다
월동준비가 한창입니다
곡예 하듯 터전을 오가며
땀 흘리는 모습을 보는
핏발선 시야가 맑아집니다
자그마한 폭포를 지나면서
물줄기는 나지막이 반주합니다
새들이 합창을 시작합니다
파라다이스를 듣고 있습니다
청감의 오염이 씻겨집니다
붉게 물든 사연 한 장
일기장 깊숙이 담아둡니다
산은 온통 잔치마당입니다
벌겋게 취해 있습니다
그 품속에 든 나도
함께 어울려 취해버렸습니다
취기 점점 더 번져갑니다
모악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