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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할머니
대갈맞나 | L:47/A:442
245/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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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184 | 작성일 2018-12-23 21: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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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할머니

1주일 정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신촌역에서 신도림 방면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고 있었구요.



제 앞자리에는 웬 머리 긴 여자가 분홍색 범퍼 케이스를 씌운 아이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은 그저 평범했죠.

평소 지나쳐왔던 평범한 저녁의 지하철 풍경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겨우 홍대 입구를 조금 지났을 때였을까요?

갑자기 여기서 빠져 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 몸이 갑자기 답답해지며, [아, 여기선 못 있겠다. 무조건 옆 칸으로 가야해.] 라는 생각이 들었죠.

만약 제가 겪은 사건이 제가 서서 자면서 꾼 꿈이라면 아마 이 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너무 답답했던 저는 무조건 옆 칸으로 가야한다는 본능에 의지해 옆 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의 칸과 칸을 연결하는 문 사이 공간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기댄채 서 계셨습니다.

저는 [왜 이런 곳에 할머니가 계시지?] 하면서 그냥 살짝 옆으로 비켜 지나갔죠.

다행히 옆 칸에 들어서자 그 때까지 느껴지던 갑갑함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을 놓고 편히 서 있는데, 무언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시선이 향한 곳에 아까 그 할머니가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객차의 양 가장자리에 있는 팔걸이가 달린 자리였죠.



분명 제가 칸을 이동할 때만 해도 문과 문 사이에 있었고, 제가 이동한 후에 다른 사람이 오지 않았는데도 할머니는 그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죠.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그 순간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할머니가 앉아 계시던 자리는 빈 자리였고, 주위 사람들은 서 있는 채로 갑자기 비명을 지른 저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더군요.



지하철 역을 확인하니 이제 막 합정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한 정거장을 겨우 지나갈 동안의 시간에 그 일들을 겪은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 일은 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우선 제 앞에 앉아 있던 아이폰을 들고 있던 여자가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왠 중년의 아저씨가 앉아 계셨죠.

홍대 입구에서만 해도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이건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자가 합정역에서 내리고 아저씨가 그 자리에 앉았거나, 아니면 제가 정말로 지하철 옆칸으로 이동했거나요.

두번째로는 할머니가 제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후에도 계속 그 할머니가 생각나서 유심히 그 입모양을 떠올렸더니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 할머니는 제게 [너, 나 봤지?] 라고 말하고 있던 거였죠.

이제 1주일이 지나갔지만, 저에게는 정말 무섭고 생생했던 경험이었습니다.



과연 저는 지하철에서 서서 자면서 이상한 꿈을 꾸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기묘한 체험을 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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