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게문학] 아바타라 ㅡ 10.75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이어서 시간을 거스르는 통로를 연다.
무슨 헛소리냐고 생각하는게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여신' 베르단디의 입에서 나온 말인 이상 얘기가 달라진다.
"듣고보니 말이 안되는건 아닌데... 그럼 이 녀석은 필요없는거 아니야? 왜 그 고생을 해서 데려온거야?"
새하얀 은발에 온통 흰색뿐인 옷, 그 외모와는 모순되게도 이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악마'인 666사탄이 의아하다는 듯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9살 정도 돼보이는 갈색 피부의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당연히 너 정도 되는 괴물을 직접 옮길 수는 없어. 입구에 닿자마자 [통로]가 무너져내릴 거라고. 누군가에게 계약한 상태로 딸려서 가는건 가능하겠지만, 인간의 영혼으론 며칠도 아닌 수십년 단위의 시간여행을 버티는건 불가능하지."
베르단디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북유럽신화의 주신 '오딘'이 오토바이를 타고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왔기 때문이다.
오딘은 오토바이에서 황급히 뛰어내려 쓰러진 아이와 베르단디의 가운데에 착지하더니 감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놀라워!!! 이런걸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다니. 어때 베르단디, 할 수 있겠어?"
베르단디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규정을 어기는 일이야. 하지만 할수 있냐 없냐로 따진다면.... 가능해."
그 말을 하는 베르단디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꼬마 아이들이 제딴에는 짖궂은 장난을 치기 직전에 짓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다른 준비를 모두 마치더라도 추가적으로 '운명의 세 여신' 전원의 허가가 있어야 해. 하지만 과거의 여신 '우르드', 미래의 여신 '스쿨드'는 라그나로크 이후로 수십년간 행방이 애매한 상태니... 내가 그 둘을 대신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저 꼬맹이는 왜 데려온거야?"
사탄은 궁금했던것을 재차 물었다.
"왜긴 왜야? 시간역행의 매개체로 쓰려는거지. 방금 말했다시피 너를 과거로 보내려면 계약을 해줄 매개체가 필요해. 그런데 인간의 영혼으론 못 버티니... '절대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이 녀석을 이용할수밖에 없지. 천한 인간의 피가 섞여서인지 발키리에게도 쉽게 잡히는 수준이지만, 영혼의 내구력은 믿을만할거야."
베르단디의 설명에 사탄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막 끄덕였다.
"요약하자면 너와 마지막으로 계약한 '딘 아그네스'가 태어난 시간과 현재를 잇는 통로를 열고, 내가 저기 있는 '여래의 아들'과 계약을 맺은 채로 과거로 돌아가 '여래의 아들'의 영혼을 딘 아그네스의 영혼에 덮어씌운다는 거지?"
"그래. 바로 그거지."
그때 오딘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 딘이란 녀석은 어때? 내가 이름도 못 들어본걸로 봐서는 그리 대단한 녀석은 아닌것 같은데..."
드라마를 보는 느낌으로 인간계를 계속 지켜보던 오딘도 듣지 못한 이름이다. 라그나로크 이후 전체적으로 재미없던 역사임에도 그 속에서 최대한 흥미로운것을 찾아보았으나, 오딘이 얻은 유일한 눈요깃거리는 '전쟁' 뿐이었다.
먼 옛날 트로이Troy 같은 곳에서는 인간의 싸움에 신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곤 했지만 이제는 금제 때문에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딘은 개입하지 못한다면 구경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심정으로 라그나로크 이후에 인간계에서 두 차례 벌어진 대규모 전쟁의 중요한 장면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런 오딘이 모르는 이름이라면 그리 뛰어난 인재는 아닐 것이고, 혹시라도 그 점이 계획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물어본 것이다.
"학생 시절엔 좀 잘나갔지만 GOH 대회에서 '갤러헤드'의 계약자에게 처참히 패배한 이후로 조용히 살고 있다가 x세대인가 뭔가 하는걸로 박무봉의 눈에 들었던 모양이야.
박무봉에게 스카우트된 이후로 눈에 뵈는게 없었는지 자신의 고향 근처인 '서쪽의 마녀' 세력에게 자주 시비를 걸었고, 그러다가 결국 운 없게도 서쪽의 마녀 본인과 마주쳐 단번에 즉사했어. 보통 녀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재天才는 더더욱 아닌, 그저 그런 녀석이었지."
"아..."
오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챈 베르단디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걱정 마. 어차피 '여래의 아들'이 딘으로써 살아갈테니 원래 딘이 어떻든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야."
"그건 다행이네... '통로'는 언제 열 생각이야?"
"사탄2세가 다 자라면, 그 즉시."
666사탄의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만든 안전장치다. 계약으로 묶인 매개체를 통해 과거로 보내는 방법은 분명 효과가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나도 강한 사탄의 힘은 잘못하면 통로를 붕괴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분신을 만들어 보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분신'인 이상 예상치 못한 위험이 생길지도 모르니 7주인 서클의 능력 '분열'을 카피해 제 2의 사탄(사탄 2세)을 만들어 냈다. 신체구조부터가 다르므로 7주인보다는 분열하는 속도가 느리지만, 그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분신과는 달리 분열된 육체는 둘 다 '본체'이며 어떤 방법으로도 둘 사이의 연결을 끊을 수 없다. 설령 둘이 다른 시간대에 있더라도 말이다.
언뜻 보면 매우 정교하고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닐 뿐더러 베르단디가 편법을 쓴다지만 어쨌건 운명의 세 여신 중 둘이나 행방불명이라는 점이 계획 자체에 근본적인 오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술의 달인 '오딘'의 백업에, 불가능한 일도 그대로 실현시켜버리는 '환웅'의 권능(물론 사탄이 카피한 것이다.)이 더해지면 그 정도 오차는 어떻게든 메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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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드디어 사탄 2세가 다 자라고 오딘의 여러 제어 장치도 완벽히 준비되었다. '여래의 아들' 나후라와 반강제적으로 계약을 맺은 사탄 2세는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뒤덮은 거대한 마법진을 둘러보았다.
마법진에 빼곡히 쓰여있는 룬 문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인간 마법사는 평생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힘을 띄고 있었으며 마법진의 전체 크기는 수백 km가 넘었다.
그 마법진 한가운데에는 '여래의 아들' 나후라가 신비한 빛에 휩싸인 채로 떠있었다.
"오딘, 저 꼬맹이 기억은 확실히 지웠지?"
"그래 사탄 2세. 이제 통로만 열면 돼."
오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베르단디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를 열었다.
"그럼 간다."
제일 먼저 나후라가 강렬한 빛에 휩싸여 사라졌고 나후라와 직접계약으로 묶여있는 사탄2세가 그 뒤를 따랐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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