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단편 팬픽] 토끼를 쫓아가는 엘프 [1]
이 팬픽의 시점은 본편 11권 벨이 아스테리오스와 조우한 직후 입니다.
본편에 언급 되었던 엘프 소녀가 레피야 라는 가정하에
'만약 레피야가 자신을 구해준 벨에게 사랑에 빠진다면?'
이라는 설정으로 작성된 팬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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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쫓아가는 엘프
[이쪽으로!]
[서둘러!!]
【로키 파밀리아】의 단원들이 괴물의 포효가 들린 곳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확인하고 올 테니까 잠시 기다려! 놈을 발견하면 종을 울릴게!]
레피야는 몇몇 동료들이 뻥 뚫린 곳으로 뛰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기다려도 들리지 않는 종소리에 불길한 느낌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 때
ㅡ콰아앙!!!
뒤에서 들리는 폭음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무너진 벽에서 거대한 검은 괴물과 백발의 소년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쏟아지는 잔해더미가 레피야의 시야를 검게 물들였다.
으윽… 어지러워.
어두웠던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자 텁텁한 흙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레피야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레피야씨! 괜찮으십니까!?]
[레피야! 일어날 수 있어!?]
주변에서 다른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 괜찮아요. 으윽! 잠깐 정신을 잃은 것뿐이에요.]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레피야가 괜찮다고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ㅡ부우워어어어어어어!!!
뼛속까지 울리는 포효소리에 레피야를 비롯한【로키 파밀리아】의 단원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아…….
눈앞에는 괴물이 있었다.
레피야는 지근거리에서 포효하고 있는 괴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곁에 있는 다른 단원들도 그저 두려움에 몸을 떨며 굳어있을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포효소리를 듣고 건물에서 나와 거리로 나오고…
그리고 뒤에서 벽이 무너진 다음… 검은 미노타우로스와ㅡ 흐읍!
스윽ㅡ
자신을 노려보는 칠흑빛 괴물과 눈이 마주치자 레피야는 돌처럼 얼어붙었다.
일어나야 되는데… 얼른 일어나서 싸워야 하는데… 안 돼.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어.
레피야는 무력한 자신의 모습에 절망을 느꼈다.
온몸을 휘감는 압도적인 기세가 심장을 움켜쥐어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끝도 없이 늘어나는 공포가 사지를 붙잡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쿵! 쿵! 쿵!
검은 미노타우로스가 레피야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구나….
다가오는 괴물을 보며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 레피야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레피야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은 그 순간
[흐아아아아아앗!!]
귀를 때리는 기합 소리에 레피야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러자 눈앞에는
빛이 있었다.
새하얀 빛이 다가오는 어두운 죽음을 막고 있었다.
벨 크라넬이 검은 미노타우로스와 맞서고 있었다.
마치 공포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너의 상대는 나라는 듯이
공포에 빠져 얼어붙어 있는 자신과【로키 파밀리아】의 단원들과 달리 저 소년은
용감한 모험자의 얼굴을
포효하는 남자의 얼굴을
괴물과 맞서는 영웅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손발이 떨렸다. 가슴이 치밀어 올랐다.
부여잡은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이 감정이, 목을 메이게 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레피야는 생각했다.
아….
긴장이 풀리면서 꾹 참고 있던 눈물이 레피야의 양 볼을 타고 흘렀다.
살았다는 안도감, 모험자로서의 경외감,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를 볼 때 마다 느껴지는 감정들이 레피야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마, 말도 안 돼.]
[도대체 어떻게…]
다른 단원들의 목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처절한 사투를
남자의 모험을
영웅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싸울 수 있는 건가요? 나와 같은 Lv.3이면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면서 모험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영웅처럼
마치 내가 동경하는 아이즈씨처럼…….
눈앞에 있는 순백의 빛은 자신이 동경하고, 존경하고, 좋아하는
아름다운 소녀의 순수한 금색의 빛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벨을 멍하니 바라보던 레피야는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으으… 뭐에요 정말! 치사해요! 치사해요!]
[평소에는 다정한 분위기에 연약한 태도로 순수한 척 여자들을 방심 시키고 여차할 땐 지금처럼 멋있어지고!]
[천하에 둘도 없는 변태에요! 여자의 적이에요! 저질이에요! 이런 식으로 아이즈씨랑 다른 여성들까지…!]
[레, 레피야…?]
가까운 곳에 있던 한 엘프 단원이 의미 불명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 레피야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레피야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이래서야 마치 내가…
내가 저 사람을… 정말로…….
문득 귀까지 새빨개진 레피야가 고개를 들자ㅡ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눈에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차갑게 식은 그녀의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뜨겁게 뛰고 있는 그녀의 가슴 속에 새하얀 빛이 가득 찼다.
…아 그렇구나.
나는… 나는… 정말로…….
레피야는 그 동안, 정확히는 18계층에서 이블스 무리를 조우한 이후부터 그 소년을 볼 때마다 느꼈던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던 감정에
그녀의 마음을 살살 간질이는 감정에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감정에
지금 이 순간
그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렇구나.
나는 저기에 있는 저 남자를
찬란하게 빛나는 저 빛을
벨 크라넬을
좋아하고 있구나.
울창한 숲속에서 걸어 나온 아름다운 엘프가
깡충깡충 뛰어가는 새하얀 토끼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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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3권 발매일이 연기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멘붕이 와서
멘탈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재미있게 봤던 11권을 다시 보다가
"그래! 새 책이 안나오면 직접 쓰면 돼!" 하고 삘받아서 한번 끄적여 봤습니다. ^^..
외전에서는 벨과 같이 나오는 장면이 있어도 본편에서는 '로키 파밀리아의 엘프 마도사' 정도로 묘사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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