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의 아버지들
이번 평양 침공전 에피소드에서 두 명의 아버지가 나왔네요.
한 명은 부성애가 너무도 깊어요. 그게 자신을 망쳐버렸죠.
막내아들이 적에게 붙잡혔다는 이유로 눈이 뒤집힌 채로 유인하는 곳까지 갔고.. 처참하게 능욕당한 채로 나무에
묶여 죽은 아들을 보고서 분전하다 포위망에 걸려서 전사했어요.(용백공)
나머지 하나는 냉혈한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지만 결과적으론 공사구분할 줄 알아 반박불가인 합리적인 인간.
자기 아들이 공격하기엔 최악으로 험하고 불리한 지형에서 궤멸 수준의 타격을 받아 생사도 불확실한 상황임에도
가면 속 가려진 얼굴 덕에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철함을 보여주었죠.(왕전)
(어차피 천하통일 때까지 죽지 않을 명줄이니 살아있는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아들이 적군에게 모욕을 당한다 해도
왕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듯..)
작가가 어쩌면 용백공의 성격은 삼국지 원소의 결점을 참조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원소는 자기 막내아들이 병 걸렸다는
이유로 조조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도 날려버렸으니.. 다행히 후계를 이을 장남이 있어서 군세를 수습하고 새로 용백공이
되었으니 망정이 안 그랬으면 조군 좌익은 뇌토의 함정으로 대장을 잃고 추가타로 박살이 나고 말았을 겁니다.
업 공방전 후반에 왕분의 사생아 의혹인지 아주 어이없는 스토리가 나와서 설마 작가가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우리나라 막장드라마를 참고했나 싶을 정도로 왕분의 출생의 비밀은 개인적으로 거북했어요.
(실제 역사상 왕전의 아들은 왕분 하나뿐이고 왕전에 이어 왕분이 천하통일을 확정짓고 왕씨 가문이 진나라 군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 됩니다.)
요즘 사이버렉카이니 뭐니 해서 사리사욕을 노리고 얼토당토않은 신상털기나 불확실한 정보가 나오는 상황이 아주
개판을 치고 있는데.. 전국시대에선 단지 한번 모함을 받거나 의심을 사기만 해도 그게 독이 되고 족쇄가 되어 끝내 비참하게
죽기도 하니 인간 하나의 인생을 파멸시키는데 있어 의심이나 헛소문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으니 고대나 현대 사회나 막장도는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같더라구요.
왕전이 왕분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대하는 건 천하통일 끝나고 후반부에나 작가가 보여줄 것 같지만 왕이 되고
싶다는 주변 의심이 그게 자신에게 있어 평생 족쇄이니 왕분도 자기 같은 꼴 날까봐 일부러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기엔 왕전이 너무도 냉혈한으로 보인다는.. 창의 기초를 가르쳤던 이런 모습은 정말 의외였죠.
왜 자기가 직접 왕분에게 창술이나 군략의 기본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낄 정도..
작가가 한 술 더 떠서 막장도를 더 높이겠답시고 왕분 밑으로 동생이랍시고 유능한 양자를 데려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철권 게임을 놀다가 알았는데 헤이하치가 카즈야라는 후계자가 있는데도 일부러 더 성장시킨답시고 자극하기 위해
리 차오랑을 데려와서 둘이 경쟁시키고 저울질하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즐겼더라구요.)
안 그래도 왕씨 가문 종가의 후계자이고 천하대장군이 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는 입장인데 그런 막장 상황까지 이어졌다면
왕분 내면에 있는 스트레스가 분노와 증오심으로 변질되어 왕전보다 한 술 더 뜨는 냉혈인간이 됐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가서 왕전이 입 싹 다 씻고 이 모든 게 다 널 천하대장군으로 키우기 위함이었다. 넌 내 아들이다. 이런 식으로 구워삶으면서
아버지 코스프레하려 한다면 그것 또한 어처구니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몇 번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게 있어서 살얼음판 같은
부자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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