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게문학] (밤라헬) 반짝반짝 빛나는 눈- 1
칼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귀에는 내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눈을 깜박거리며 주변을 두리번 거려보지만 무척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서서히 힘을 주며 일어나보지만, 그 순간 주변이… 움직였다?
“아악-!”
그제서야 나는 내가 있던 곳이 단단한 지반이 아니라 여러가지 돌을 곂쳐 쌓아올린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지? 이를 꽉 물고 귀퉁이들을 붙들어 보지만 오히려 또다른 돌이 무너질 뿐이었다. 쓸리는 몸이 아파 질끈 눈이 감겼다. 그러자 내가 떨어지는 것이 멈췄다. 어디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슬며시 눈을 떠본다.
“...”
“...”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황금색 눈동자. 그렇게 예쁜 색도 처음이었지만, 흔들림 없이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빛또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소한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스물다섯번째 밤. 탑이 울던 날 태어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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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했다. 밥을 해주면서 밥은 어떻게 먹는지, 옷은 어떻게 더럽히지 않는지, 머리카락은 어떻게 헝클어뜨리지 않는지. 다행히도 밤은 내가 시키는 모든 것을 고분고분히 잘 따라와줬다.
그래도 말을 가르치는 건 꽤나 힘들었는데, 처음 밤이 했던 말은 “라헬”이었다. 너무너무 기뻤다. 그런 기쁨 덕분에 밤에게 말을 가르치는 건 가장 힘들면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처음엔 어렵게 한 단어 두 단어 가르치면서 매우 더뎠지만, 어느 순간 밤은 내가 가르치는 족족 따라하고 이해해냈다. 말이 “틔이다”라는 게 이런 뜻 같았다. 이제 밤은 나와 얘기하는 데에도 왠만해선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렇게 말을 빨리 배우나? 아니 이건 밤이라서 그런 걸거다. 기특하면서도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가르쳐냈다는 것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다.
나는 되도록 밤에게 좋은 것들만 가르쳐주었다. 이 아이가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그 금빛 눈동자에 언제까지나 티끌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끔 “싸움”이나 “배신”이라는 것도 가르쳐줘야 했었지만, 나는 밤에게 그런 것은 절대로 하면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신신당부했다. 밤에게 나쁜 짓을 하면 하늘이 무너질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밤을 가르칠 수록 밤은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물어왔다. 밤이 가장 궁금한 건 나에 대한 것이었다.
“라헬은 어디서 온거야? 저 위는 어떤 곳이야 라헬?”
“...밥 안 먹을 거야 밤?”
나는 일부러 질문을 피하면서 그릇을 밤에게 건냈다. 하지만 밤은 조금도 입에 대지 않고 질문을 반복했다.
“응? 라헬. 저 빛 위는 분명 이 곳처럼 외롭지 않겠지? 라헬같은 사람들이 많은 근사한 곳이겠지?”
“…그래 맞아. 밤. 저 위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가는 곳이야.”
근사한 곳… 아니야 그 곳은 절대 그런 곳이 아니야. 그렇지만— 첫날,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던 흔들림 없는 눈. 티끌 하나 없는 눈.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눈.
“위에는 행복이 가득해. 신이 주시는 나무에서 과실이 열려. 무척 맛있지. 매일마다 즐거운 축제가 열리고, 선택받은 아이들은 매 축제마다 춤을 쳐. 밤은 춤을 춰본 적이 한 번도 없지?”
“축제? 춤..?”
“아... 아직 가르쳐 준 단어가 아니였나? 아무튼 저 위는 말이야, 밤.”
그 눈이 변하는 걸 나는 바라지 않았다.
“여기와 달리 어둠이 없는… 무척 즐거운 세상이야.”
그래서 나는 밤에게 거짓말을 한다. 진실을 알면 밤은 더 이상 같은 눈을 하지 않을 걸 아니까. 나는 변할 밤의 눈이 두려우니까… 적어도 이 아이는 나를 그렇게 바라봐주지 않았으면 하니까.
어차피 밤이 위에 올라갈 일은 없을 거다. 나만 말하지 않으면 밤이 그걸 알 수도, 그런 눈을 하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두는 것이 밤에게도 좋은 것이다.
거짓말을 해도 나의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미 나의 하늘은 부서진지 오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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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끝
최대한 본편 전개대로 가겠음 ㅇㅇ
팬픽 몇년 만에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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