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게문학] (단편) 체스
“체스같은 거 이기면 뭐해, 밥도 혼자서 못하는데.”
네 판을 내리 밤이 이기자 라헬은 돌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높은 곳에서 희미하게 내려앉는 불빛만이 동굴 안을 밝히는 전부였다.
“라헬이 다 해 주잖아.”
밤이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체스판의 말을 하나하나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체스판 밖에 있던 나이트와 룩이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안 올 때면 어떻게 할 건데? 그대로 씻지도 못하고 굶어 죽을 바보면서. 머리도 무서워서 혼자선 못 자를걸?”
라헬이 툴툴거리며 돌아누웠다. 체스를 가르쳐 준지 1주일 만이었다.
“...마지막 판 하자, 라헬.”
밤이 돌아누운 라헬의 등을 보며 말했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라헬은 머리를 한 번 긁적이더니 돌아 앉아 체스판을 내려다보았다.
“캐슬링도 제대로 못하면서 계속 이기게는 안 놔둬.”
라헬이 가운데 폰을 두 칸 앞으로 밀었다.
“말대로 라헬이 없으면 난 정말 그럴지도 몰라.”
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른 폰을 앞으로 보냈다.
대칭적인 모양이었다.
“언제까지고 나를 필요로 해선 안 돼 밤. 어느 정도는 혼자서 할 수 있어야지.”
손이 몇 번 빠르게 움직이더니 서로 진형이 갖추어졌다.
“필요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밤의 눈이 판을 빠르게 훑었다.
“네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들이야.”
“그럼 난 라헬을 필요로 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라헬이 킹과 룩의 위치를 바꿨다.
“그럼, 언젠가 네가 크면.”
라헬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럼 안 크고 싶어.”
“안 크고 싶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안 크는 게 아니야, 밤.”
라헬이 핀잔을 주었다.
밤의 킹에 첫 번째로 체크가 걸렸다.
“라헬이 필요하지 않아도 라헬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밤이 킹을 폰의 뒤로 숨기며 말했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귀찮은 사람이야, 밤. 그리고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 그건 좋은 거야.”
“라헬처럼?”
밤의 비숍이 진영 깊숙이 들어갔다. 라헬이 잡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나도 다 큰 건 아니야, 하지만 너보단 많은 걸 할 수 있지.”
라헬은 손놀림이 점점 느려졌다.
라헬의 룩이 밤의 비숍에 잡혔다.
하지만 이내 퀸과 나이트가 밤의 킹을 위협했다.
“그렇구나...”
밤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룩을 한 칸 앞으로 밀었다.
“해보고 싶은 것 있어? 내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자라고 나면.”
“.......”
기물이 7개만 남자 밤도 점점 말을 옮기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가 만약 라헬이 필요 없을 만큼 큰다면...”
라헬의 손이 멈칫했다.
이건가? 아니면 걸린 건가?
“라헬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싶어.”
라헬의 킹이 구석으로 몰렸다.
“체크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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