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나선계단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도착한 곳은 계단이었다. 내가 오르던 계단은 주변이 창문하나 없이 벽으로 막혀 있는 나선계단이었지만, 폐쇄적인 장소와는 달리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아니, 어둡다고 볼 수는 있었다. 비록 해가 둥그렇게 뜬 대낮에 보면 미약하다고 볼 수있는 밝음이었지만 빛하나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계단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는 충분히 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이상하거나 특이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선계단은 계단이고 계단은 올라가기 위해 존재한다. 때문에 이 나선계단이 전등이나 흔한 촛불하나 없더라도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밝기가 있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나라의 녹을 먹는 마법사인데, 1년에 한번 있는 마법 과제물을 잊고 태평하게 놀던 탓에 발표날은 탁자위의 긴 초가 반쯤 탈정도의 시간밖에 남지않았다. 나랏님 딸의 지나가는 말소리로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다급하게, 모두를 놀래키고 나라의 주인을 만족시킬만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손을 놀렸다. 불을 얼려보고 물을 녹여보며 무지개의 빨강을 갈색으로 바꿔봤지만, 그것들은 이미 다른 마법사들이 많이 해본게 아닌가. 했던 걸 안했다고 우길 수도 없고, 빨강이 변색된 무지개를 손으로 찢으며 휴지통에 던졌다. 게을러 비우지 못한 꽉찬 휴지통에서는 새로운 쓰레기가 들어가자 만삭의 몸을 버티지 못하고 안에있던 낡은 물건을 뱉어냈다. 쓰레기를 던진 휴지통에서 오히려 쓰레기가 날라오자 나는 휴지통을 비우기도 비워야겠구나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물건을 바라보게 됐는데 휴지통이 쏘아 낸 그것은 저번에 내가 방을 올라가다 턱에 걸려 넘어진 계단이었다. 계단은 말했다시피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위한 존재, 만약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게 된다면 분명 낡았다는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새것으로 바꾸면서 버리게 된 계단인데, 그 계단을 보자마자 이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초가 다타고 많이 남지 않았기에 나는 지체없이 바지 주머니 깊숙히 손을 집어넣어 소용돌이를 꺼냈다. 그리고 소용돌이와 계단을 합쳤는데,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소용돌이와 계단을 합치고 나온게 바로 문제의 나선계단이었다.
나선계단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주체를 못하고 터무니 없이 거대해졌다. 그러더니 자신을 만들어준 주인을 못알아보고 나를 집어삼키는 패륜을 저질렀다. 계단의 리모델링 증축공사가 끝났는지 더이상 커지지는 않는 것 같지만, 나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원통형 건물에 갇혀버렸다. 밑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이 펼쳐져 있고, 위도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이 펼쳐저 있다. 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천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보통 건물을 나가기 위해서는 아래쪽으로 향한다지만, 이 세상 건물들중 꼭 출구가 아래에 달려있는 건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사란 원래 상식을 벗어나는 존재다. 마법사 만세.
나라마법과제물발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람을 집어삼키는 괴상한 나선계단을 발명했으니 일단 나는 나라마법과제물발표는 무사히 마칠 수 있는게 아닌 것인가. 물론 나까지 집어삼켰다는 것은 흠이긴 하다만. 새로운 가정부가 예쁘던데..... 진지한 고찰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끝자락에 다달았다. 아직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 한참의 계단이 남긴 했지만, 내 감은 이제 끝났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마지막 계단에 두발이 모두 올라갔을때 나는 아직 계단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도착한 곳은 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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