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사가로 써봤다(매우 짧음)
죽음이 지척에 다가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죽음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 그래서 죽음이란 것만큼 추상적인 것이 없노라고 생각했음에도 막상 죽음이 다가오자 이토록이나 선명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머잖아 이 육체는 바이없이 부스러지고, 영혼은 갈갈이 찢겨 사라지겠지. 소생조차 불가능한 죽음이 그를 덮칠 것이다.
“하하….”
그런데도 웃음이 나왔다. 죽음이 코앞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목숨을 바쳐 동족을 구할 수 있어서? 그의 친우가 그의 죽음에 죄책감 서린 표정을 지어서? 그가 저질러 온 죄를 이걸로 갚을 수 있어서?
‘안돼…. 아난타….’
아니. 아니다.
‘가지마…. 제발….’
이건 편안한 것이 아니었다.
‘굉장하잖아. 내가 그렇게 대단한가?’
‘아니, 그 이상으로 대단해. 다른 모두가 죽어도 너만은 살아야 해. 어차피 네가 가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거야. 그는 널 속이고 있어. 내 말을 들어.’
“이제 와서?”
피로 눌어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희붐한 눈동자에 실소가 들어찼다.
‘돌아와! 돌아와!! 가지 말라고!!! 야!!!! 돌아와…. 제발….’
이건….
체념이었다. 후회였다.
진심을 담은 당부까지 한 귀로 흘리면서까지 무시했건만.
결국 죽음 앞에서 닥쳐오는 것은 인정이었다.
그래. 진실은 너무도 명백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아닌 척 해도, 그동안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해 왔어도 결국엔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필 그 시기가 왜 이제인지…. 그는 짧게 통탄했다.
주변에선 난잡한 소음과 섬광이 반짝였지만, 그가 몸을 뉘는 땅 주위만은 적요했다. 그 고요함이, 무뜩 사무치게 서러워졌다. 귀를 울리는 비명과 소음에는, 어쩐지 그녀가 내지르는 소리도 섞여있을 것만 같았다. 그 마음을 짓밟으면서까지 당부했거늘, 어째서 그녀는 그를 구하고자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것일까.
‘아난타!’
당장이라도 그를 부르며 뛰쳐 올 그녀가 떠올랐다.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꿈결처럼 다가서겠지. 그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어쩐지 살고 싶어질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니네….”
그 뒤에 다가서는 온갖 험한 소리도 기꺼이 달가워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온갖 소리를 늘어놓고, 슬쩍 웃는 그 미소를 본다면 정말로.
웃어주는 그 얼굴이 몹시도 보고 싶었다. 우는 얼굴보다도, 화내는 얼굴보다도 그저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홍옥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게 웃으며 다가와주겠지. 물결치는 파란 머리카락이 손끝에 닿고, 이내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아올 것이다. 시덥잖게 이어지는 대화에 기꺼워하는 나날은 이제 없겠지. 하필이면.
“….”
마지막에 본 것이, 온 진심을 부정당한 얼굴이었다. 절망과 분노가 범벅되어, 그를 안쓰럽게도 바라보았던 그 얼굴에서 가장 크게 본 것이 참담함이었다. 죽는 것은 그인데, 그녀의 표정은 그런 그를 뛰어넘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죽어, 그렇게 스러지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하게 될까.
그 표정만을 생각해도 마음이 싸르르했다. 절망에 내던져진 그녀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단지.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 웃음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 힘을 동족을 위해서 쓰면서도, 그 동족 안에 그녀도 포함되어 있어 다행이라 여기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드문드문 충동적으로 느껴지던 감정을 별 볼일 없는 감정이라 치부하며, 적당하게 이어지는 나날에 만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몹시도 후회가 되었다.
죽음에 미련이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동족을 위해 헌신했으니 만족하리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남는 것은 온통 회환과 미련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구렁텅이에, 네가 있었다.
아.
나는 왜 이제 와서야….
웃던 얼굴이 어느새 일그러졌다. 아난타는 입을 벙긋거렸다. 소리조차 먹어버린 공간은 여전히 고요했다. 코끝에 피비린내가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가 사라지고, 손끝부터 점차 부스러지는 감각이 흐려졌다.
죽음, 죽음. 영원을 살며 죽음을 숱하게 봐왔으나 이토록 죽음이 싫은 적이 없었다. 그는 제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피인지 눈물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격렬하게 부딪히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다.
그는 단말처럼 그 이름을 내뱉었다.
“…사가라.”
그 이름을 불러도, 이제는 대답을 들을 수 없다.
그녀가 이름을 불러도, 대답해 줄 수가 없다.
아. 나는 죽어서까지도.
이 감정을 네게 말할 수 없구나. 그 말을 할 수가 없구나.
아아. …더 이상 웃는 얼굴을 볼 수 없구나.
*
내일 시험이라 스트레스 쩔게 받아서 한 번 짧게 써봄. 개연성이 뭐고 없는 의식의 흐름 ㅇㅇ
아난타는 드러난 대로 하면 아난사가 뭣도 없이 사가라 짝사랑만 되므로 내가 우울함.
그리고 커플이란 참고로 진짜 아니더라도 엮어줄 땐 감정이 있는 게 아니겠음? 솔직히 좀 작중에서 멜랑꼴리한 장면이 드문드문 있어서, 혹시 아난타도 역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때 대체 여성형으로 둘이 뭐한걸까 ㅡㅡㅡ!!!! 꽃밭 데이트였으면 좋겠다 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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