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판타지 - 4
잠시 빡돈 듯,
덤비려 들던 크레이는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크- 카압- "
길-게 들이쉬는 숨소리,
동시에 크레이의 눈동자는 새빨간 핏빛에서
돌연 푸르른 바닷 빛깔로 바뀌었다.
" 하마터면, 너무나 흥분해서 싸움이라도 시작해버릴 뻔했네-"
'컬러 마인드(color mind) -
인가."
" 야, 너. 왜 계속 아는 척인데?
이 상태에서도 짜증을 느낄 정도네에- "
7색 죄악마의 일원인, '크레이 다크네스'
그의 color mind (색감)은 피지컬 매직인 그가 쓸 수 있는
딱 한 가지의 '자신에게만 들어먹히는' 이미지 매직-
자신의 시야에 색을 먹여서 감정을 최면시키는 기술로,
이성으로 감성을 지배하는 마법이다.
" 정말 큰일 날 뻔한 일이였어,
너와 나 정도의 마력이 부딪히면....
이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게 분명하잖아. "
아까의 신경질적이고 미친 듯한 성격은 온데 간데 없이,
살살 타이르는 듯 하면서도 뭔가 상대에게 노림수를 던지는 듯한 그 말투는
그의 하얗고 흐늘흐늘한 외형과도 제일로 어울리는 모습이였다.
그 말에 프로는 맞장구치며,
"그렇겠군- "
긍정했다.
흰 장발의 전신을 검은 로브로 차려입은 한 남자,
약간 푸른빛을 머금은 산발의 꾀죄죄해보이는 또 하나의 남자,
둘은 높은 첨탑꼭대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상황을 살폈다.
아까부터의 자질구레한 대화는 그저 단순한 인사치레일 뿐,
그들은 줄곧 살피는 중이였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흐름을-
둘의 대기엔 공기뿐 아니라 '긴장감'이 실렸다.
용은 뭔가 공포를 느꼈는지
지금 칠성검이라는 것에 찔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15초까지 어떤 울음도 하지 않았다.
다만
뭔가,
변해갔다.
이상하게,
.
자리에 엎어쓰러져 있던 서넛은
죽지 않고서 반죽음이나 다름없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충 보게 된 광경은,
멀지 않은 곳에서 몸을 낮추고
가만히 무언가 빛나는 것에 찔린 채로 바닥에 박힌 흑갑룡,
무자비하게 부수어진 하나하나의 건물더미,
벽이거나 바닥이거나 구분 않고 흩뿌려진 핏방울과 옷치레, 살점, 뼈조각들,
그리고 그나마 그건 나은 것이라는 듯 흩날려, 희미하게 시야를 긋는 피골의 비린내나는 안개.
" 해....해치워진건가...."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한 젊은 무도가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어 바닥에 피째로 굳어서 걸레가 된 듯이 보이는
중년의 마법사는
"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몸이이......
내 몸.....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에겐 용이든 뭐든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남는 건 절규,
도저히 손쓸게 없게 된 제 육신에 부르짖는
절규.
이 땅바닥에 엎어진 대부분에게 그렇다.
이것이,
한 생물을 강제로 그 터전에서 끌어낸 결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결과.
-
중앙지에서 동쪽 멀리 떨어진
작은 인도주의 외곽,
마을의 중심 번화가라 할 상점터의 바깥은
주로 대다수 주민들의 거주지로,
외부세계로의 로맨서들의 최후 관문인 '인도주(引導州)'
로서의 역활로 주로 로맨서들에게 필요한 무기나 식량등을 전문적으로 매매하는 상점터와는
사뭇 그 풍경이 다르다.
혈기왕성해 날뛰어다니는 젊은 로맨서무리,
은근 악의를 품은 매매를 위해 서성이는 장사꾼들의 모습,
술에 빠져 악을 지르는 주정뱅이,
전체적으로 왁자지껄한 번화가스러운 상점터의 활기와는
조금 그 의미가 다른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뜨겁고도 차분한 활기.
이 곳에서도 번화가의 변화는 심상찮은 것이였다.
" 어이- 왠지 소란스러운데? "
포장마차에서 꼬치를 씹어 넘기던
거드씨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맞은 편에 앉은
라인하트에게 물었다.
"딸꾹-.... 그게 말야- 딸꾹-....
방~금 전에 빈 녀석한테 듣기론 딸꾹-...
저~쪽 상점가에 커다란 용이 나타났다던데~ 딸꾹-..."
술에 취해선 침을 흘리며 라인하트가 겨우겨우 질문에 답했다.
" 어이어이. 그럼 좀 위험한 거 아니냐. 도망이라도...."
깜짝 놀라 일어나려는 거드를 말리며,
" 그깟 몬스터 나타나는게 하루 이틀입니까.
용이래 봤자. 노스랜드 종자정도나 되는 놈이겠죠 뭐.
또 유기용인가. 이래서 사역사놈들이 문제라니깐.
자기가 책임진 녀석은 끝까지 키워야지. "
주인장은 태평한 소리를 늘어놨다.
이런 일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만히 듣던 라인하트는
" 헤헤헤헤- 그러겠네. 그러겠어.
만에 하나라도 딸꾹-.... 나타난다면 이 내가 휩쓸어버리면 딸꾹-...
그만이고 말이지!! "
라고 했다.
거드는 비웃듯이 말하며,
"그게 아니라 너같이 낮술에나 취해다니는 놈이 제일 먼저 먹히지 않을까?
얼빠진 녀석. 키키키키킥- "
라고 했다.
가만 듣던 라인하트는 술김에 조금 화가 났는지,
거드를 골리는 말을 던졌다.
"야...딸꾹-...
뭐랬냐.. 거드...딸국-...
왕년에 맞아 살던 녀석이 까마귀 고기 먹었나...? 딸꾹-...."
" 앙? 뭐라? "
거기에 유치한 거드는 유치하게 화내며 반응했다.
주인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형씨들 진정 좀 하세요...
릴렉스- 릴렉스- "
다툼이 커졌다간 장사에 방해가 될 것 같았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싸움이 될 만한 싹을 잘라내버렸다.
흐름 끊긴 거드는 약간 심통을 내며,
아까 끓어오른 화를 술잔에 넣어,
"콱- " 소리를 내며 술잔을 세게 내려쳤다.
그와 함께,
"콰악-"
"이익-? "
"잉-? 딸꾹-...."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투쾅-
콱-
투드드드드득- "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잘 서 있던 포장마차는 통째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그리고 거길 뛰어나가며
비너스는 앳된 목소리로,
"아, 미안요."
라며 뛰어 지나갔다.
" 이 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 미안하면 다냐아아아아!!!!!!!!!!!!!!!!!!!"
주인장은 화나 소리쳤다.
그리고,
"억-! "
누군가 또 한명,
주인장의 머리를 밟고 길을 지나친다.
" 검을 어디로 빼돌리는 거냐. 꼬맹아아아아아아아-!"
" 으아아아아아아-
거 영감님 참 말 안 통하시네!!! "
" 짜강-!
쨍-!
덜컥-!
푸칵-!
"
비너스는 마을을 휘저으며 뭔가를 깨부수거나 밀치고 다녔다.
마을은 점점 도미노처럼 차례로 혼비백산이 되기 시작했다.
"극.....그윽.."
" 하하...안 됐구만.... 주인장....
난 이만 가네....."
"오....오오...나도 갈게....딸꾹-...."
거드와 라인하트는 바닥에 주저앉아 불쌍해보이는 주인장을 향해 한마디 던지며
부러진 포장마차를 지나쳐갔다.
계산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