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아빠 ! - 1.5 (유성훈)
길가에 허연 가로등이 켜질 즈음의 저녁시간,
배고픔에 허덕이는 수많은 좀비 군단이 복도를 달려나갔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무명동에 위치한 혈천(血?)고등학교,
제 2 공화국 시절에 개교하여,
당시 무림 영화에 빠진 어떤 미친 교장이 작명했다던 이 학교는
강제 야자를 하는 빌어먹을 학교다.
이 학교의 급식 시스템은
전적으로 점심 급식에 식비를 쏟아 붓는
이상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저녁 급식은 '극악'으로 맛대가리가 없다.
혈천고 저녁 급식의 잔인하고 비인륜적인 맛은 고교 조폭의 정점,
일각마(一角魔)를 뛰어넘는 제 0 순위의 악마로 취급받으며,
'악마의 만찬'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 급식은 여느 고등학교의 급식과 같은,
평범하디 평범한 식재료를 음식의 베이스로 사용하는데,
그 결과물은 식재의 조합으론 절대로 나올 수 없는
D분자의 광학이성질체를 동반하는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뽑아내기에,
생화학적인 미스테리를 자아낸다.
이러한 이유로,
혈천고의 저녁 급식은 암흑가의 독극무기로 유통되고 있다.
그 신비함은 어떠한 독살이든
사체에 생화학적 흔적을 남기는
여타의 독극물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며,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는 완벽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
저녁 급식이라는 시스템이 이 학교에 생긴지 어언 8년,
외지에서는 온갖 소문과 억측으로
도시괴담을 이뤄가지만
이 학교에서 저녁 급식의 존재를 아는 학생은 없다.
그래서.....
저녁은 다들 매점을 씁니다.
-
"허억...허억...."
유성훈은 아침에 맞은 상처를 치료하고서
거친 숨을 토하고 복도로 나왔다.
복부와 가슴엔 두꺼운 붕대가
그를 감싸고 있다.
" 보건선생님이 왜 그렇게 놀라시지....
늑골 골절이라느니 병원엘 가라느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하시고....
으....그나저나....
점심에 이유린한테 초코바를 바친 덕에,
저녁 값이 없어....
저녁은 굶어야 하나....
일단 매점에 가서 누구한테라도 얻어먹자....
그게 좋겠어. "
유성훈은 매점으로 갔다.
" 윽- 사람 많다아-
오늘따라 훨씬 많네 이거....
아니,
내가 보건실에 가느라 늦게와서 그런가."
매점안은 시끌시끌,
혼비백산 했다.
타 학교의 급식실 수준의 크기를 자랑하는 우리학교 매점이지만
이 수많은 좀비들을 전부 수용하기엔 역시나 역부족일지도 모른다.
"역시 이 학교,
매점 수익이 장난아닐거야."
이만한 수의 학생들이,
저녁 급식이 없어서... 아니 저녁급식을 몰라서
매점으로 끼니를 때우니,
상당한 벌이가 될 거다.
뭐,
일부 도시락을 싸오지만.
" 누구 얻어먹을 녀석 어디 없나."
처량한 얼굴로 두리번대던 유성훈은,
역시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 내가 단순히 늦게와서가 아닌가....'
" 으아아아아- 이게 말이되냐고오오오 "
"배고파아아아아아아아- "
"살려줘어어어어어어-! "
" 누가 나에게도 식량 보급을-!!!"
다들 배고픔에 절망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뭐야....
다들 나처럼 이유린한테 돈을 뜯긴건가?
아냐.
그럴리가 없지.
이유린이 아무리 위장이 커도 그렇게 많은 초코바를 먹을리는 없어.
그럼 어째서...? '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유성훈의 눈 앞을 검은 공간이 막아섰다.
" 어이. 수환김."
" ? "
검은 공간 속에서 김수환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빙글- 나타났다.
" 너 제발 그러고 다니지 마라.
깜깜한 뒷모습이 마치 걸어다니는 5수생의 미래같군. "
" 뭔 개소리야. "
" 아니 그보다,
대체 뭐야, 이 잔인한 광경은. "
" 컵라면이랑 닭대갈버거랑 케로로빵이랑
전부 재고가 떨어졌대. "
' 그랬던 거군.
확실히 잔인하다. '
그때,
매점 밖에서도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 자자.
닭대가리버거를 단돈 3000원에 판다. "
매점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은
운동장 쪽의 가로등 밑,
지그재그로 난 금이빨의 치열에,
금색 귀걸이, 금색 반지, 금색 목걸이,
금색 신발, 금색 교복을 입은 멍청하게 생긴 놈.
혈천고 꼴통으로 유명한,
금색의 한석규는 쫄따구들과 함께 가판대에서 닭대가리 버거를 팔고 있었다.
' 잠깐.....
재고가 떨어진 닭대가리 버거를....
어떻게 저 녀석들이 팔고 있는거지?
설마.....
저게 바로 사재기 인건가? '
녀석은 따까리들과 함께 조금조금씩
닭대가리버거를 대량 구매해버린 것이였고,
그렇게 오늘자 재고를 바닥시켰다.
그리곤 1000원짜리의 닭대갈버거를 3000원에 팔아치우려 하고 있는 것이였다.
유성훈은 어려서부터 조폭의 세상을 수없이 바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이런 수법으로
특정 구역의 특정 물품에 대한 일정 제한으로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여버리는 것,
이것은 바로 조폭들의 세계에서 쓰이는 장사의 방법이기도 하다.
" 우어어어어...."
" 닭대가리 버거....."
"히히히히....겨우 3000원이래...."
금색의 한석규의 방식에 말려든 우리학교 좀비들은
하나 둘 이성을 잃고 그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거기에 걸리지 않았던 건,
코딱지 파며 서 있는 김수환과,
유성훈 뿐이였다.
' 읏...! 위험해....
다들 배고픔에 눈이 멀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담을 넘어서 편의점에 다녀오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란 걸 모르고 있어....
여기서 이 집단 최면에 걸리지 않은 건,
바보인 이 녀석과
이 수법에 대해서 잘 아는 나뿐인가....
아니 나였더라도 평소라면 걸려버렸을지도 몰라.
내가 가난한게 다행이다. 돈이 있었다면 나도 걸렸겠지. '
유성훈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과,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에 대한 생각을.
' 어쩐다... 어쩌면 좋지.
이대로 가면 저 얄미운 놈들의 지갑을 채워주고 말아.
젠장.
그건 너무 부럽단 말야.
그렇게 부러워지면 안되는데. '
유성훈이 망설이던
그때,
" 이봐, 너희들. "
" !! "
녀석들이 닭대가리버거를 판매하던 맞은 편에서,
샤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색의 한석규는 가로등에 비쳐지는 녀석의 실루엣을 보고는 흠칫했다.
" 뭐....뭐냐...! "
서서히 다가오는 그 녀석,
파묻힐 것 만 같이 하얀 순백의 사긋사긋한 머릿칼,
마치 조각으로 파낸 것 같은 높은 코와,
예쁜 입술,
남자 답지 않은 뽀얀 피부에,
교복이 어울리는 175cm의 체격을 가진 녀석이였다.
" 누구 허락받고 거기서 장사하냐. "
" 니가 무슨 상관이야?!
교칙에 교내에서 장사하면 안 된다는 규칙있어? "
" 음.....
내가 아는 바론 없는데, "
" 그럼 꺼져버려.
금색의 한석규도 모르는 거냐. 이 자식. "
금색의 한석규....
그 남자의 무시무시함은
금색이라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서 끝난다.
" 뭔지 모르겠는데, "
녀석은 무신경한 표정으로 비웃듯 답했다.
" 뭐라아아아아아아?!!!
다들!!! 우리의 저력을 보여줘라!!!"
금색의 한석규의 한마디에,
" 지크 하일 !!! "
을 외치며, 따까리들은 그 녀석에게 닥돌했다.
" 저...저거.."
유성훈은 당황했다.
그리고....
"훗. "
백발의 그는 따까리들을 가볍게 무시하며
그들이 딛고 서 있는 땅을 바라봤다.
그러자,
두드드드드드드드- !
" 그아아아아악- "
그들이 딛던 땅이 바닥으로 꺼졌고,
그들은 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고,
금색의 한석규는 덜덜 떨며 그 녀석에게 물었다.
" 이....이게...어떻게 된 거야...."
녀석은 답했다.
" 학교는 나의 필드다. "
-
" 야, 진심 위험했다고? "
" 헤헤, 그러게. "
백발의 그는 백지환(고1),
유성훈과는 어렸을 때부터의 불알 친구다.
유성훈이 한석규가 달아난 가판대에 몸을 기댔다.
" 오늘 내내 보이지 않더니. "
"아아. 조금 바쁜 일이 있었거든,
근데, 사실이야? "
" 앙? 뭐가. "
" 너희 조직이 해외로 떠났다는 거, "
" 아, 뭐 그렇게 됐지.
하하하하. "
" 음....그래서 소감은? "
" 소감이고 뭐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게 되서."
" 그러게. "
"응. 그래. "
"그렇구나. 그럼 이만. "
" 어이, 저녁에 학교와서 오자마자 가는 거냐.
그리고 아까 땅속으로 꺼진 녀석들은 어딨는 거야. "
" 그 녀석들은 지하에 있을 거야.
학교에 손을 좀 써뒀거든,
운동장 반경에 들어가는 모래지반은,
전부 내 뇌에 심어진 칩으로 인한 무선 조종으로 가라앉게 만들 수 있어, "
" 학교에 뭘 해놓은 거지 이 자식...."
백지환은 손을 위로 흔들며
교문을 건너 나갔다.
그리고,
" 이제, 긴장해야 할 거다. 성훈아. "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했다.
-
유성훈은 교실로 돌아갔다.
"휴....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
아직 감독도 안왔고. "
툭-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 ? "
두드리던 건 다름 아닌 소연이였다.
한소연은 쑥쓰러운 표정으로
도시락을 내밀었다.
' 뭐...뭐야 이 녀석. 설마..! '
마찬가지로 쑥쓰러워진 유성훈.
" 나...나 먹으라고? "
유성훈의 물음에 한소연은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아...아까 나때문에 점심값을 지출해버린 것 같아서,
유린이 대신에 괘...괜찮다면 내 도시락이라도. "
"야. 왜 니가 사과해.
그런 건 이유린이...."
찌릿-
이유린이 째려보고 있었다.
"이...이유린 님이 드신 거니까.
나한텐 당연한거지 하하하. "
식은 땀을 흘리는 유성훈.
한소연의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마...맛있어..!
너 언제 이렇게 요리 실력이 늘게 된 거야..! "
" 하하....
요 근래 조금."
' 정말 맛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소연인 천사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만 덜렁이답게 간이 조금.....안 맞는 것 같지만. '
유성훈은 행복한 저녁을 먹었다.
-
1.75 에서,
하하.... 다시 미뤄야겠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