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 세상에서 가장 강한 캐릭터는 뭘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캐릭터는 뭘까?"
옛날에 나는 이것이 모든 캐릭터 vs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캐릭터들 중 최강. 아니라면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의 세계관 최강자를 찾고 결정짓기 위해 브게가 있고, 설연카가 있고, 배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고 보면 이것은 본질이 아니었다. 이미 해당 세계관 최강자가 확정된 경우에도 vs는 계속되었다. 진짜 본질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둘 중에 더 강한 캐릭터를 서열 매기는 것에 우리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본질은 비교고 서열화다. 국가별 GDP 순위를 비교하는 사람도 있고, 세계 부자 순위를 비교하는 사람도 있고, 메시와 호날두를 비교하는 사람도 있고, 시계와 차 계급도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애니와 만화를 좋아해서 그 덕심 때문에 브게를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랬다면 캐릭터 vs가 이토록 마이너 한 취미일 리 없다.
사람에게는 무엇을 비교하고 서열을 매기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 계급을 만들고 순위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은 인류 역사 전반에 매우 자주 있어왔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애니와 만화이기에 그 분야를 서열화 시킴으로서 우리의 욕구를 해소하는 것 뿐이다.
다만, 하나의 본질에서도 그 안에서 사람마다 다양한 취향이 갈린다. 좋아하는 세계관이 다르고 관심 있는 작품이 다르고 흥미 있는 ~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나는 특정한 ~권이나 특정 작품에서의 서열이 아니라 전체, 세상 모든 캐릭터들의 서열,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캐릭터에 매우 큰 흥미를 느낀다.
오래전부터 필자는 여유 시간이 있을 때 가끔 이 상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옛날 내가 기독교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애니타운 논겟에 가고 나서는 나는 그것이 전지전능이라고 생각했다. 브게를 접하고 나는 그것이 절대적 무한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도 훈련소에서도 자유 시간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으나 끝끝내 그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당장 종이를 펴고 펜을 들어봐. 거기에 네가 만들 수 있는 최강의 캐릭터를 만들어봐.
네가 지금 어떤 캐릭터를 만들던 너는 반드시 그것보다 더 강한 캐릭터를 새로 만들 수 있다.
전지전능한 캐릭터를 쓰면 초전지전능한 캐릭터를 만들면 되고, 초전지전능한 캐릭터를 쓰면 초초전지전능한 캐릭터를 새로 만들면 그만이다.
네가 작품에 어떤 캐릭터를 쓰던 그것은 논리와 수학에 제한되지 않는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다만 그것을 타 세계관과 vs 할 때 그것이 논리와 수학에 제약받는다는 것 뿐이다.
설렁 형언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고, 인간의 모든 학문과 상상, 사고, 사유를 초월한 캐릭터라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종이에 쓰면 그만이다.
우리가 논리와 수학 밖에 무엇이 있는지 언젠가 알 수 있을 수도 있고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그것이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다. 논리 안, 논리 밖이라는 구분조차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논리와 수학을 초월했다는 문장은 종이에 쓸 수 있다.
그것이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해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라고 종이에 쓰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나는 아무리 고민해도 끝끝내 가장 강한 캐릭터, 가장 큰 세계관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 봐.
어떤 캐릭터도 상상을 벗어날 수 없으니 상상이 가장 큰 것인가? 아냐. 이 캐릭터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쓰면 돼.
어떤 캐릭터도 수학과 논리를 벗어날 수 없으니 수학과 논리가 가장 큰 것인가? 아냐. 이 캐릭터는 수학과 논리를 초월했다고 쓰면 돼.
어떤 캐릭터도 사람의 생각을 벗어날 수 없으니 생각이 가장 큰 것인가? 아냐. 이 캐릭터는 인간의 사고와 사유를 초월했다고 쓰면 돼.
어떤 캐릭터도 책을 찢고 현실로 나올 수 없으니 책과 종이가 가장 큰 것인가? 아냐. 이 캐릭터는 허구를 초월하여 현실로 나올 수 있고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쓰면 돼. 어? 그럼에도 이 캐릭터는 현실로 나올 수 없어. 그것은 불가능해. 왜 불가능하지?
이 캐릭터는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써본들. 다음 장에서 작가가 그 캐릭터를 소멸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야.
스스로 존재하는 캐릭터가 어떻게 있을 수 있지? 모두 작가가 창조한 건데.
어떻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캐릭터가 있을 수 있지? 결국 전부 인간인 내가 상상한 것인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너는 상상을 초월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어.
전술했듯, 책을 찢고 나올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종이에 이 캐릭터는 바로 지금 노트를 찍고 현실로 나온다!라고 써본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왜지?
허구-현실의 차이는 작가마저 초월한 것인가? 아무리 종이에 허구를 초월해 현실에 도달한 캐릭터를 써본들 그 캐릭터는 만들어지지도 않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리 그렇게 써봐야 무슨 게임의 보정 시스템처럼 자동으로 이 캐릭터의 능력이 허구 안으로만 제약되게 뿅! 하고 변하는 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비로소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것은 정말로 너무나 당연해서 누구나, 세상 모두가 아는 결론이었다.
그것들이 '가짜'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허구이고 픽션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작가는 '진짜'다. 현실에 사는 '존재(存在)'다. 이 존재는 철학의 실존이나 현존, 일전에 내가 쓴 기독교 신의 존재(Ipsum esse)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실제로 있다는, 실재(實在) 한다는 말이다. 진짜로 없는(非有)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어떤 철학자는 실재론을 주장하고 어떤 철학자는 그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와 우리의 세계가 실재하던 실재하지 않던 그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의 세상이 실재하지 않는다 한들 종이 속 허구의 것들과 우리의 차이는 실재하는 것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참 우스운 말이지만, 만약 우리의 세계가 우리의 감각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조차 허구로 보는 것이다. 개콘이 따로 없는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설렁 우리 자신조차 허구고 신 같은 존재가 있어서 우리를 허구로 본다 한들 상관없다. 그래도 종이 속 존재들에게는 우리가 실재하는 것와 다를 바 없다. 그만큼의 허구-현실 차이는 그대로다.
이것은 모든 의문을 해결한다.
모든 캐릭터는 가짜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가짜이니 우주보다 클 수 있다. 가짜이니 생각을 초월할 수 있다. 가짜이니 수학을 초월할 수 있다. 가짜이니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 세계 챔피언을 상상해 봐. 당연히 너보다 피지컬적으로 대부분 다 우월할 거야. 현실에서 네가 그 챔피언을 이기는 건 말도 안 돼. 그러나 상상으로는 이길 수 있지.
상상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고, 우주 밖에 존재한다고, 빅뱅 이전으로 가서 담배를 피운다고,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지금 이 순간 산산조각 난다고 얼마든지 그릴 수 있어.
그런다고 진짜로 세상이 멸망하는 건 아니잖아. 진짜로 내가 우주 밖에 있게 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전왕보다 쌔다고 상상해 본들 진짜 전왕보다 쌔지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전왕보다 강해지는 상상, 전왕을 이기는 상상은 할 수 있잖아.
우리는 우리를 초월한 것을 상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아무 일도 없음은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이야.
픽션의 캐릭터가 책을 찢고 나온다고 상상해도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렇지만 분명히 그것을 상상할 수는 있어.
만약 종이에 존재를 초월하고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초월한 캐릭터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 허구를 초월한 캐릭터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
그 캐릭터의 스펙은 정말로 존재를 초월한 게 맞고, 정말로 허구를 초월한 게 맞아.
허구와 현실의 차이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허구를 초월한 캐릭터조차도 허구로 볼 수 있고, 존재를 초월한 캐릭터조차도 비존재로 볼 수 있는 거야.
다시 말해, 스펙상 정말로 실재하는 캐릭터조차도 우리는 허구로 볼 수 있는 거야.
만약 우리가 캐릭터를 책을 찢고 나올 수 있게 만들려면 뭐 기독교의 신처럼 존재를 부여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가 되면 가능하겠지.
창조물에 존재를 부여해서 존재물로 만들어 존재하게 하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한텐 그런 능력은 없지.
만약 묘사할 수 없는 게 있다면 묘사할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을 정의 내릴 수 있고, 정의 내릴 수 없다면 그것을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쓰면 그만이다.
상상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쓰면 되는 것이고, 생각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쓰면 그만이다.
따라서 종이에 쓸 수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다.
가장 강한 캐릭터는 최소한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언젠간 누군가 그 답을 찾을 수도 있고, 아무도 못 찾을 수도 있고, 정말 어떤 브게이 말마따나 각자 개인이 생각하는 최강의 캐릭터가 짱일 수도 있지.
그렇지만 세계 최강의 캐릭터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보다도 강한 것은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정말로 너무나 당연해서 세상 누구나 알지만, 그렇기에 모두가 동의하고 인정하는 객관적인 참이자 가장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그것은 '존재'다.
기독교 교리에서 오래전 모세가 신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신은 '나는 존재다(에흐예 아세르 에흐예, ehyeh asher ehyeh)'라고 답했다고 한다.
비록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나는 '어 진짜요? 우리도 존재에요.'라고 답할 수 있을 거 같다.
모든 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나 오랫동안 생각한 만큼 진실에 가까웠으면 좋겠다. 반박은 얼마든지 환영하나 시간상 그 반박에 즉각적으로 답변하긴 어렵다는 점을 미리 사과하겠다.
글 읽어줘서 고맙다.
무슨과 나오심? 수학 연구하는데 부전공 필요한지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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