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구울의 최대 문제점은 상징성을 위해 개연성을 날려먹었다는거죠.
그렇게 성경이나 트럼프카드 등의 상징물에 도쿄구울 스토리를 끼워맞추고 싶으면 성경이나 트럼프카드 관련 스토리를 쓰면 됩니다. 간단해요.
그런데 도쿄구울은 상징성에만 신경쓰느라 개연성을 다 날려먹습니다. 가령 용만 해도 말이죠.
왜 카네키만이 오가이를 먹으면 용이 될 수 있죠?
왜 다른게 아니라 오가이를 먹어야 하죠?
그리고 오가이를 먹는다고 용 수준으로 변할 수 있는 이유는 뭐죠?
이 이유들이 단 하나도 나온적이 없습니다.
물론 독자들 사이에 추측은 있습니다. 반구울이니까 오가이가 증폭제가 된것이다, 카네키가 노화된게 한번에 돌아오면서 변할 것이다.
근데 말이죠. 작품은 독자가 쓰는게 아닙니다. 작가가 쓰는거에요. 도쿄구울은 위의 이유에 대해 단 하나도 설명한 적 없습니다. 왜 카네키만이 용이 될 수 있는지, 왜 오가이가 용이 되는 기폭제인지, 그리고 오가이를 먹는다고 용 수준으로 강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얼빠진 만화는 단 한번도 설명한 적이 없고, 작가가 해야 할 개연성 부여를 독자가 추측하고 있는 셈입니다.
설정놀이, 상징놀이에 미쳐서 작품의 핵심인 용이 되는 것에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요.
만화에 현실성은 없어도 되지만, 개연성이 없는 순간 그건 만화가 아닙니다. 그럴듯한 그림놀이죠.
이시다 스이씨는 상징성 부여하겠다고 허세부리지 말고 기본적 개연성부터 부여하길 바랍니다.
만일 그렇다면 아오기리는 최강의 구울들만 있겠죠. 고문의 귀재 야모리 선생이 계시는데. 잡아다 죄다 고문하면 최강 구울 되는데.
별 볼 일 없던 무츠키가 고문 당하니 타키 요모와 비비는 기적.
보통 만화에서 강해지는 수련과정은 굉장히 자세하게 그리는데, 잡혀서 잠깐 고문당했다고 강해지니 노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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