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만추 인물들을 D&D식 성향으로 분석해봅시다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하다가 갑자기 삘이 와서 D&D식 성향에 맞춘 소형 캐릭터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서 캐릭터들을 분석해보자 합니다.

* D&D식 성향 - TRPG 역사상 가장 지대한 역할을 끼친 판타지 보드게임인 던전 앤 드래곤(약칭 D&D)는 단순히 판타지 설정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을 나타내는 등의 소위 '룰북' 시스템을 정립했는데, 그 룰북에서 나타나는 소위 '성향'은 질서/중립/혼돈, 선/중립/악의 분류로 캐릭터의 선함과 악함, 순종과 반항 등을 총 9가지의 유형으로 구분하는 시스템입니다. D&D 외에도 마블/DC코믹스, 타입문 세계관(근데 타입문 세계관의 경우 나스가 지멋대로 분류를 그지같이 해놔서...) 등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격 묘사에 집중하는 서브컬쳐 시리즈들에서 이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도표입니다. 약 1시간 만에 완성해서 그런지 퀄은 개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들의 성향을 설명하겠습니다.

질서 선(Lawful Good) - 이미지는 가네샤. 주로 뛰어난 통치자나 선한 신, 의사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법을 어겨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항상 법을 지키는 부류인데,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선 캡틀딱이나 슈퍼맨, 호구왕이 해당합니다. 가네샤는 오라리오 시민들이 맘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파밀리아를 이끌고 합법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딱 맞는 케이스고, 그 이외에는 괴멸 이전 아스트레아 파밀리아가 해당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립 선(Neutral Good) - 이미지는 우리의 주인공 하렘토끼 벨. 흔히들 말하는 '선한 사람'의 대부분이 이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돕는 방법이 법/규칙에 어긋나든 어긋나지 않든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예시로는 마블코믹스 대표 거지인 스파이더맨이나, 간달프, 슼승님, 옆동네 성게머리, 대머리 망토가 있습니다. 벨의 경우엔 몬스터를 돕는 행위가 전세계적으로 금기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제노스를 돕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혼돈 선(Chaotic Good) - 이미지는 류 리온. 주로 불합리한 체제에 항거하거나, 악인을 처벌하기 위해서 법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하는 인물들이 해당합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 하면, 레지스탕스나 의적이 있습니다. 창작물에선 배트맨이나 로빈 훗, 어쌔신 크리드에 나오는 암살단 등이 대표적 인물들로 꼽힙니다. 류의 경우엔 아스트레아팜 괴멸 이후 이빌스에 가담했거나 연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족치러 다녔지만 그 수단이 철저히 폭력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혼돈 선에 해당합니다.

질서 중립(Lawful Neutral) - 이미지는 길드 본부. 법과 규칙을 중시하는 부류로 소위 말하는 '머법관'에 해당됩니다. 인정을 판단에 개입시키지 않는 부류의 법조인들, 공무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창작물에 나오는 인물 중에선 아카이누, 렉스 루터 등이 해당합니다. 던만추 세계관에 나오는 오라리오의 길드는 주신인 우라노스는 선할지라도 체제 자체가 주요 파밀리아들을 비롯한 모험자들의 범법행위들을 눈감아주는 등 선함과는 거리가 좀 있고, 규칙에 따라 모험자들의 분쟁을 '중재'만 해줄뿐더러 도시의 가장 큰 수입원인 마석의 안정적인 공급을 제일 중요시하는 등의 면 때문에 질서 중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립(Neutral) - 이미지는 조용하게 무서운 시르 플로버. D&D식 중립에는 두 가지 중립이 있는데, 하나는 타노스식 중립이고 다른 하나는 '미정'이라는 의미의 중립입니다. 던만추 세계관에선 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후자에 대해서만 설명하자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것을 가치관보다 중요시하는 소시민들이나, 약육강식의 본능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에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시르의 경우 작중에서 보인 행동들은 순수히 벨을 좋아해서 한 것이지 딱히 선한 일을 하겠다는 의도로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시민의 카테고리에 함께 넣었습니다. 던만추 세계관에서 대놓고 악한 존재로 묘사되는 흑룡이나 던전 속 몬스터들(얘내들은 대놓고 인류에 대한 악의 같은 게 나타나서) 같은 걸 제외한 일반적인 몬스터들의 경우, 아슬아슬하게 이쪽 범위에 들어간다 볼 수 있습니다.

혼돈 중립(Chaotic Neutral) - 이미지는 몰드 레트로. 소위 말하는 '힙스터' 기질의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악행을 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잭 스패로우가 여기에 해당하고요. 몰드의 경우 신입 모험자 신고식 운운하면서 투명투구 쓰고 벨 때릴 때는 흔한 양아치 모험자로 악한 모습도 좀 보여줬지만, 11권에서 보여준 행보대로라면 오히려 선함에 크게 물들어서 선에 가까운 혼돈 중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시를 몰드로 들었을 뿐이지, 대부분의 모험자들이 다 여기에 속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질서 악(Lawful Good) - 이미지는 이빌스(진) 헤르메스. 질서 악 성향 같은 경우에는 체제 내에서 그걸 악용하거나 자신만의 신념/규칙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서 남들에게까지 그 규범을 강요하는 케이스인데, 현실의 독재자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창작물에선 그 유명한 다스 베이더와 매그니토, 그리고 타노스가 여기에 속합니다. 헤르메스의 경우 자신의 신념인 '영웅 만들기'를 갖고 여러 등장인물들한테 가혹한 시련을 강요하고(위에서 언급한 벨의 신입 신고식이라든가, 어린 아이즈를 이빌스로 타락시키려 했던 행위라든가, 제노스들을 함정에 몰아넣고 벨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로스 일행의 희생을 강요한다든가 등등...) 그것에 대해서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우라노스를 위시한 길드와의 뒷거래로 자기의 행위들을 전부 합법적인 굴레 내에서 실행하기 때문에 질서 악 쪽의 성향을 많이 띠고 있습니다. 아무리 헤르메스가 주인공의 조력자 포지션으로 '선역'에 해당한다 쳐도, 그게 절대로 헤르메스의 '선함'을 나타내주진 않습니다.

중립 악(Neutral Good) - 이미지는 릴리를 줘팬 전적이 있는 게드. 중립 악은 양아치, 조폭, 연쇄살인범 등등 전범이나 테러리스트 등의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대부분 유형의 범죄자/악한들이 속해있는 케이스입니다.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걸로 보입니다. 게드의 경우 릴리가 약하다는 이유로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줘패기만 하다가 통수를 맞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양아치 유형으로 중립 악에 속합니다.

혼돈 악(Chaotic Good) - 이미지는 소드 오라토리아에서 섹시함을 담당하는 레비스. 혼돈 악은 혼돈 쪽과 악 쪽으로 구분되는데, 혼돈의 경우 그냥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면서 아무나 죽이고 부수고 다니는 케이스고, 악의 경우 자신이 극악한 악역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롤 플레잉의 일환으로 모든 곳에 혼돈을 가져오는 걸 '수단'으로 삼는 케이스입니다. 전자엔 DC 코믹스의 조커가 해당하고, 후자의 경우 반지의 제왕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판타지물에서 나오는 오크, 드래곤 등의 나쁜 몬스터들이 해당합니다. 레비스의 경우 도시를 작살내서 에뉘오가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하는 것, 즉 혼돈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고 그 와중에서 일반 모험자들도 서슴없이 죽일뿐더러 악에 해당하는 몬스터들도 마구 죽이기 때문에 '혼돈' 쪽에 가깝습니다. 반면 똑같이 혼돈 악에 해당하는 이빌스, 특히 주신 타나토스나 오라리오 밖에 있는 암살단의 주신으로 추정되는 세크메트의 경우 자기가 악역을 맡는 걸 자처했기 때문에 혼돈 악 내에서도 '악'에 해당합니다.

참고로 벨과 시르의 이미지가 저렇게 돼있는 이유가 뭔지에 대해선, 던만추 덕질을 좀만 하신 분들이라면 다들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