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게문학] 밤이 자하드 목따는 소설 1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린다.
온갖 호화로운 장식이 붙어있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 방의 용도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누가 보더라도 찬사를 아끼지 않을 예술품들이 흔한 그림마냥 무수히 걸려있는 것은 상당히 위화감을 자아내는 일이다.
그 가운데 펼쳐진 붉은 융단. 그 끝에서, 적색삼안의 문장이 새겨진 거대한 왕좌에 그는 턱을 괴고 의연히 앉아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오랜 옛날, 미개했던 탑에 들어와 문명을 전파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여 지금까지도 절대자로 군림해온 위대한 탑의 왕.
모두에게 경배받았던 그 사내의 이름은 바로 자하드였다.
탑 역사상 최강의 낚시꾼. 왕좌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2m 40cm의 거대한 신장, 찬란한 금발과 황금색의 눈동자에서 빛나는 안광은 누구라도 압도할만한 기백이 있었고 어떤 의미였든 실제로도 그랬을 터였으나, 지금 그의 눈동자 속에는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뚜벅, 뚜벅─
척!
발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콰아아앙──!!!!
직후, 굉음과 함께 알현실의 거대한 문이 뜯겨나가며 말그대로 '가루가 되었다'.
파스스스…
문이 있었던 장소를 가득 메운 연기속에서 걸어나온 그림자는 둘이었다. 작은 쪽과, 큰 쪽.
자연스럽게 자하드의 시선이 먼저 큰 쪽에 고정되었다.
탑의 절대적인 어둠의 상징. FUG의 수장인 그레이스 미르치아 루슬렉이었다.
"오랜만이군, 미르치아."
한 때는 탑을 오르는데 도움을 준 믿음직한 조력자였다. 강함과 위치를 생각했을 때, 쭉 자하드의 조력자로 남았다면 위대한 가문의 가주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우를 받으며 누구도 부럽지않을 지위를 얻었을텐데도 그는 굳이 자하드와 대적하는 길을 걸었다.
"수천년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자하드여, 너를 그 옥좌에서 끌어내리는 이 때를 위해서."
"그것 참 대단한 집념이군…. 물어볼 게 하나 있다만."
"뭐든지. 저승길 선물로 대답해주도록 하지."
위협적으로 검은 후크를 겨누며, 루슬렉이 말했다.
"미르치아…. 나를 계속 따랐더라도 너는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을텐데, 어째서 이런 일까지 벌이게 된거지?"
자하드의 질문에 루슬렉이 코웃음쳤다.
"흥. 뭔가 했더니 상상 이상으로 하찮은 질문이군."
자하드는 왕좌에 턱을 괴고 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든 대답해준다고 했던건 네가 아니었나? 대답해라, 미르치아."
"명령조인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게 하늘같은 자신감도 오늘로 마지막이니 이번만큼은 특별히 넘어가겠다. 그럼 말해주지, 그 이유를 말이야."
루슬렉은 양팔을 양쪽으로 과장되게 쭉 들어올렸다.
"자하드, 내가 너를 적대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네녀석이 탑의 밖에서 왔고, 함께 탑을 올라온 무리중에 가장 강하고, 문명을 전파한 것만으로 탑의 왕이 된다는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정도면 충분할까?"
자하드의 표정이 있는대로 일그러졌다. 그는 격렬한 감정을 억누르고 목소리를 냈다. 갈라진 목소리였다.
"고작… 그것 뿐인가?"
"고작이라니. 이것만으로는 부족한가? 그렇다면 이유를 한가지 더 대도록 하지. 네녀석이 왕의 그릇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의 도전을 결코 용납하지 않지. '탑을 오른다'라는 바늘구멍같은 출세의 길을 만들어 두고, 거기에서 탈락한 자들은 평생 자신들의 터전에서 남루한 여생을 보낸다. 만약 그들이 랭커가 되더라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너와 가주들은 관리자와의 계약으로 절대 그 위치를 위협받지 않지."
루슬렉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래."
그리고 양팔을 내린다.
"비선별인원이라는 예외가 없다면… 말이지."
자하드가 시선을 옮긴다. 그곳에는 루슬렉이나 자하드 자신과 비교하면 한없이 왜소한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안다. 이 청년은 루슬렉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최대의 위협이다.
"《가시》를 보고 짐작했지만… 자네가 쥬 비올레 그레이스로군."
다시 보니 비올레의 손끝에 금빛의 무언가가 걸려있었다. 단 일순간 뿐이었지만 자하드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비올레가 잡고있던 것은 머리카락이었다. 붉은 피로 칠해진, 금발의.
그는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최강의 공주'인 아도리 자하드의 몸을. 정확히는 그 시체를.
그것이 호화롭기 짝이없는 융단의 한가운데에 내팽개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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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도 하기전에 사망한 최강+존예의 공주에게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