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게문학/짧음]사슴6
일이 틀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이불을 개고, 팔자 좋게 자고 있는 라헬을 깨웠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치니 짜증을 내면서 일어났다.
"2시간만 자고 가자더니..."
라헬이 찌푸린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자기도 잠 많이 자서 좋으면서.
우리는 폐건물에서 나와 아침을 먹고 역으로 향했다. 역 안으로 들어가 작은 매점 앞을 지나가는데, 우리 뒤에 누가 따라붙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라헬하고, 담당 랭커분인가요?"
퍼그 지원부대였다. 라헬이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놀라며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나도 따라서 몸을 돌렸다.
"퍼그는 아직 우리랑 적대 관계가 아니야. 가만히 있어."
나는 허리를 살짝 구부려 라헬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상대방에게 말했다.
"누구세요?"
"저는 퍼그에서 파견한 랭커 이준구입니다.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젊은 랭커가 친절한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아... 벌써 오셨네요. 그런데 다른 랭커들은 어딨죠? 혼자 파견됐을리는 없을텐데."
제발 다른 랭커들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해라.
"다른 분들은 다른 곳에서 두 분을 찾고 계십니다."
내가 원하던 대답이었다. 나는 미끼를 더 던졌다.
"랭킹 몇위에요? 지원부대로 왔으면 비올레랑 싸워야 하는데, 당연히 세자릿수 이하겠죠?"
"약 8만 3000위입니다. 랭커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랭킹이 낮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친절한 어린이였다. 이렇게 예의바른 친구를 죽이려니 마음이 아팠다.
"그 랭킹으로 비올레를 잡겠다고요?"
"저 말고도 슬레이어 화이트님과 슬레이어 야마님과 하이랭커 두 분이 계십니다. 저는..."
"아, 그럼 충분하겠네요. 근데 제가 포켓을 잃어버렸는데 좀 빌려주세요."
나는 준구의 말을 끊고 포켓을 빌렸다.
그리고 준구와 함께 화장실로 가면서, 빌린 포켓으로 통화를 하는 척 했다.
물론 연기였다. 내가 손가락 끝으로 포켓을 지져서 고장냈으니까 통화가 될 리 없었다.
화장실에서 준구를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칼을 꺼내 준구의 목을 그어버린 뒤 시체를 화장실 제일 안쪽 칸에 던져놓고 나왔다. 누가 곧 발견해서 비명을 지르며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우리는 10시 30분 기차를 타고 이 도시를 떠날 예정이니까.
라헬은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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