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초나라 정벌에서 20만 끌고갔다 패하는게 역피셜인줄 알았는데요
우연히 나무위키를 보니까 이신이 초나라 정벌전에 패했다는 기록이 틀렸을 가능성도 높다고 하네요.
뭐 나무위키 글이니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지만요.
<나무위키 발췌>
그리고 이신의 패배의 기록도 왕전의 열전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사기》 〈진시황본기〉나 〈초세가〉 그리고 같은 열전에서도 이신의 후손인 〈이장군 열전〉이나 이신의 부장으로 참전했다는 〈몽염 열전〉에는 일절 기록이 없다. 원래 사기에서는 그 인물 조상에 대한 업적을 간략하게나마 써주는데 항연은 후손 항우의 〈항우본기〉에서도 왕전에게 패배한 기록만 있지 이신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기록이 없다. 비슷한 시기 열전에 이목이 진나라와 싸워 이긴 기록은 〈조세가〉에도 잘 기록되어서 교차검증이 가능한 것과 대조적이다.
세부적인 기록들도 모순적인데, 몽염은 자신의 열전에 원래 진나라의 법률업무를 맡다가 기원전 221년이 되서야 장군직을 맡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몽염이 이신의 부장으로 초나라의 침을 공격했던 시점은 왕전이 복귀한 시점인 기원전 224년 이전의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왕전의 열전에는 왕전이 초나라 공격 때문에 은퇴한 것은 삼진(조, 위, 한)을 멸망시킨 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기에 왕전이 은퇴할 때는 위나라는 건재한 상황이었고, 왕전이 은퇴한 다음 해에 멸망한다. 때문에 본기에 왕전이 병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복귀해 초나라를 공격했다는 기록을 조합해보면 이신이 대패를 당한 것이 아니라 대치상황에서 왕전과 단순히 임무 교체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사기 <백기왕전 열전>에서도 이신의 패배 과정은 모순적인데, "이신은 평여(平與)를 공격하고 몽염이 침(寢)을 공격하여 초군을 대파한다. 이신은 다시 언(鄢), 영(郢)을 공격해 격파하고 서쪽[10]으로 진군해 몽염과 성보(城父)에서 만난다. 초나라 사람들이 따라오면서 3일낮 3일밤을 쉬지 않고 이신의 군대를 대파한다. 두 개의 보루를 치고 들어오고, 7명의 도위(장군)을 죽인다. 진나라 군대가 패주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언'과 '영'은 이미 진나라 영토였기에 '초나라 사람들이 따라오면서'라는 서술 등에서 이신은 이미 주 전장을 떠나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당시 창평군이 일으킨 반란에 의해서 이신의 보급로가 막혔고, 그것을 뚫기 위해 움직였다는 점을 가리키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초나라에서의 패배는 항연이 잘 싸운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후방에서 창평군이 일으킨 반란이라는 설이 현대에 들어서 각광받고 있다.
<하략>
이목도 실제랑 조금 다르게 그리니...이신도 달라질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파워인플레가 심해져서 막 장풍쏘고 검기날리고 그러지만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