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블리치는 밸런스를 논할 필요가 없는 만화다..

 시작하기에 앞서, 본인은 원피스,나루토,헌터,클레이모어,간츠,베르세르크 등 그 외 어떤 만화보다 블리치를 즐겨보았고, 그 독특한 세계관과 캐릭터들의 매력에 빠졌었음을 밝힌다. 하지만 블리치의 만화로써의 가치는 아란칼편 초반부까지만 통용된다. 웨코문도편부터의 블리치는 '럭키짱'급의 스토리와 전투패턴을 반복하는 막장만화가 되었다. 현재 블리치가 가진 몇가지 문제점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1. 위에서 언급한 럭키짱 수준의 진행.

"겨우 그정도냐?"

"윽..이대로는 안되겠군. 하지만 이게 내 만해다!"
"아..아니?! 어떻게 이런 힘이? 으아아악"

"후우..끝났나"

"하하 정말 간지러운 공격이군. 자 보여주마 이게 내 레스렉시온의 힘이다!!"

"이럴수가? 끄아아아악"

이렇듯 늦게 힘을 개방한 자가 승리하는 뻔하디 뻔한 패턴은 너무나 쉽게 승패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들고, 따라서 독자들은 흥미를 잃게 된다. 그 반증으로 항상 점프 TOP5 안에 들던 블리치는 우류와 챠드가 웨코문도로 잠입해 허세를 부리던 시기부터 발행수가 급감하기 시작, 결국 10위 밖까지 밀려나고야 만다.

2. 자기가 창조한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는 쿠보.

꼬맹이 얼음대장 히츠가야 토시로, 자라키 켄파치, 아이젠과 에스파다까지..쿠보는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뿐. 멋진 캐릭터들을 적절한 곳에서 써먹지 못하고 버린 게 한두번이 아니다. 아란칼편에서 히든카드 쯤으로 여겨지던 바이저드의 현재 꼴을 보라. 아이젠은 엄청나게 쎄고, 머리도 좋은 퍼펙트 보스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그 포스를 어필하기 위해 그에게 한두방에 나가 떨어지도록 진행한 것은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3부가 시작된 지금 고작 퀸시 간부들에게 듣보잡 취급받고 썰리는 광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신지는 원작과 애니에서 겐류사이,아이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체의 수장으로 묘사되었다. 근데 현재는 아이젠때와 마찬가지로 여자 퀸시에게 열심히 자기 능력을 설명해주다 한방에 리타이어 되고 만다. 신지 만큼의 포스를 자랑하던 켄세이는 원더와이즈와의 전투씬이 통째로 증발해버리고, 마스크에겐 "고작 이따위 발차기에 뻗은거냐 히사기?" 라는 허세가 무색하게 벌레 취급을 받으며 몇컷만에 반송장이 되고 만다. 로쥬로 역시 그대로 갔어도 지는 전개로 그렸겠지만, 자신의 능력 '소리에 의한 환각'을 친절히 설명해준 뒤에 적이 고막을 파괴하는 행동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마치 그들이 바이자드라는 것을 까먹은 것처럼 가면 꺼내는 것도 보여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아무리 조연이지만 "100년전에 벌써 대장+호로의 힘이니까 지금 대장들보다 강할꺼야!" 하며 기대하던 독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지경이다. 물론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은 작가의 마음이니, 캐릭터의 승패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는 더이상 밸런스만의 문제가 아니고, 쿠보 본인의 묘사와 연출의 한계란 것이다.

3. 승패가 순식간에 너무 갈리는 허무함.

2번과 연결되는 문제지만 따로 언급하겠다. 블리치는 배틀물이다. 그것도 그닥 복잡한 머리싸움 없이 서로의 능력과 힘을 심플하게 보여주며 1:1 방식의 전투를 고집하는 배틀물. 따라서 그 전투장면이라도 재미있고 스펙타클하게 보여줘야 하는데 쿠보는 그마저도 귀찮은 것 같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 에스파다에서 최강으로 취급되는 울퀴오라 시파가 있다. 유일한 2차 해방으로 주인공을 압살하고, 우류의 대사로 다른 에스파다와는 격이 다른 듯이 띄워주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이치고가 완전호로화라는 힘을 내자마자 그 전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간단히 제압되고, 허무하게 사라진다. (거의 모든 캐릭터들의 끝이 허무하므로 울퀴오라가 관장하는 죽음의 형태와는 상관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 외에도 뱌쿠야vs조마리 , 마유리vs자엘아포로 , 붕옥 아이젠vs무월 이치고 , 긴죠vs이치고 , 스타크 등등.. 잠깐 투닥투닥하다가 속전속결로 끝나는 전투가 한둘이 아니다. 아니, 2부 이후로 제대로 재밌게 그린 전투는 켄파치vs노이트라 , 그림죠vs이치고 정도로 손에 꼽을 지경이라고 해야 맞겠다. 1부 소울 소사이어티 편이 재밌었다고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유가 그것이지 않을까. 블리치가 원피스나 나루토처럼 캐릭터간의 전투를 자세하게, 길고 치열하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현세에서 아란칼과의 전투 부분은 원피스 정상결전만큼 재밌었을지도.

4. 설정을 개 밥아먹듯이 바꾸고 떡밥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모습.

3부 퀸시편에서 아주 뜬금없는 갑툭튀 설정이 등장한다. 바로 파괴된 만해는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가 없다는 것. 그동안 마유리의 만해는 여러차례 파괴되었고, 코마무라와 토시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특수한 만해라는 거지같은 핑계만 남긴 채 이치고와 렌지 일행은 힘을 되찾기 위해 영왕궁으로 떠나고, 잠깐 사이에 엄청난 파워업으로 돌아온다. (왜 다른 대장과 부대장들은 여태껏 0번대의 도움을 받아 강해지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껏 완벽한 참백도의 모습을 보였던 참월이 알고보니 젊은 시절 유하바하의 모습이고 퀸시의 힘이란 설정 또한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리타이어된 캐릭터들은 까먹었다가 한참 뒤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재등장시키고 (렌지,우류,챠드,네루,그림죠 등등 한둘이 아님.) 아란칼 편에서 던졌던 오리히메의 아란칼 동화 떡밥은 회수할 생각조차 없는 듯 하다.

얘기하라면 더 나열할 수 있지만 주된 의견은 거의 적은 것 같으니 대충 여기서 끊겠다. 블리치는 이미 만화 덕후들의 성지인 루리웹에서조차 더이상 밸런스 토론이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근데 당신들도 나도 애착을 가지고 지금까지 계속 보고 있으니 씁쓸하기도 하고.. 만화가 이토록 엉망진창인데 미성년자 중고딩들은 게시판을 점령하여 "토시로vs할리벨의 밸런스는 잘못된 것이 없고 다 상성이다." , "뱌쿠야는 이치고한테 발렸지만 에스파다 최속 조마리보다 빠르다!" , "작가가 수긍한 부분이 있으니 소설도 공식 설정으로 다 인정해야 한다." , "켄파치 짱짱맨!" 같은 소릴 하면서 물을 흐리고 말도 안되는 대뇌망상을 늘어놓고 있으니 착찹하기도 하고 그렇다. 생각해보니 편하겠네..대충 갖다붙여 씨부려놓아도 팬들이 알아서 가지고 소설써주니.. 블리치란 만화는 참 좋아하는데 쿠보라는 작가가 원망스러워 적은 글이니 너무 미워하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