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현존하는 만화의 엔딩 중 최고의 엔딩을 꼽아보라고 하면
저는 늘 '슬램덩크 엔딩이 최고다'라는 대답을 합니다.
(애니는 짱구)
스토리, 연출력, 긴장감 등 그 당시 스포츠 만화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그리고 최고의 퀄리티로 갖추고 있었거든요.
꽤나 많은 분들이 지학의 별을 비롯한 라이벌 팀에 대한 떡밥 회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슬램덩크의 엔딩을 비판하시는데,
사실 슬램덩크는 그런 이유로 비판 받아도 될만한 작품이 전혀 못됩니다.
팀에 대한 설정놀음하기에는, 장르가 너무나도 다르거든요.
슬램덩크의 엔딩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라,
저는 이번 리뷰를 통해 '과연 슬램덩크란 어떤 작품인가?'에 대해 한번 말씀 드려보고 싶습니다.
-갔다 온다, 기본기에 충실한 슬램덩크
혹시 '갔다 온다'라는 표현에 대해 아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라노벨이든 만화든 애니든 무슨 작품이든 간에 주인공은 이(異)세계에 갔다가 돌아와야만 합니다.
여기서 이세계는 농구가 될 수 있겠고, 마법 세계가 될 수 있겠고, 가상 현실이 될 수 있겠고...
그것은 작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매우 중요한 요소거든요.
*단, 일상물, 치유물은 예외입니다. 일상물 치유물의 경우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에 가깝습니다.
한 예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나 짱구, 어른 제국의 습격을 댈 수 있겠군요.
주인공은 모두 이(異)세계로 갔다가 돌아오죠.
동시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오고요.
강백호가 등의 통증으로 몸져누웠을 때, 과거 회상과 함께 내뱉는 대사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는
슬램덩크가 바로 그 '갔다 온다'에 충실했음을 보여주는 대사입니다.
소연이의 소개로 농구를 시작한 백호가, 농구 세계에 빠져들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결말부분에 돌아와서 농구 세계에서 강제로 쫓겨나게 됐을 때,
그가 갔다 돌아오면서 무얼 배우고 느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니까요.
그 때문에, 백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백호의 대사를 명대사 중 하나로 받아들이지요.
-지켜지지 않는 기본기
제가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엔딩이 망했다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이런 사소한 기본기조차 제대로 안 지키는 법이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슬램덩크의 엔딩이 정말로 나쁜 편이었다면,
백호의 이런 회상장면 없이 산왕전은 진행됐을 것입니다.
또 만약 슬램덩크의 엔딩이 정말로 나쁜 편이었다면,
우리는 백호의 영광의 시대를 영영 볼 수 없었을 테지요.
그러나, 슬램덩크는 기본기에 매우 충실한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들이 무시하고 제대로 지키지조차 않는 기본기까지도 지키고 있으니까요.
'나는 바스켓맨이니까' 같은 장면만 봐도,
주인공의 목적이나 목표를 확실히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매우 정석적인 장면입니다.
아마,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도 떡밥회수를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슬램덩크 자체가 만화의 정석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기본기에 착실하니까요.
그런 그가 떡밥회수를 하지 않았다는 건,
떡밥 회수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떡밥회수가 필요 없는 개그만화처럼,
슬램덩크 또한 떡밥 회수가 필요 없는 만화의 일종이었던 거죠.
-슬램덩크는 어떤 작품인가?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슬램덩크는 애초에
농구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있는 스포츠 만화가 아닙니다.
지학의 별이나, 다른 쟁쟁한 라이벌들과 경기를 펼치기 위해 존재하는 만화가 아니란 말이죠.
굳이 따지면, 슬램덩크는 청춘 만화에 좀 더 가깝습니다.
강백호라는 문제아가, 농구를 접하게 되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만화니까요.
그 당시 스포츠 만화와 비교해보면 아시겠지만,
(라고 해도 환타지 스타, 우리들의 필드 같은 축구 만화 밖에 없지만,)
강백호나 정대만, 서태웅이나 송태섭 같은
문제아를 주연으로 내세우는 스포츠 만화는 흔치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게, 작중에도 등장하지만 그 당시 스포츠는 매우 숭고한 위치에 속해있어서,
싸움이나 트러블이 일어나면 바로 폐부 될 정도로 문제아들과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슬램덩크는 메이저나 우리들의 필드 같은 최고봉을 목표로 하는 스포츠 만화보다는
주인공들이 뜨거운 청춘을 불태우는 상남 2인조나, 오늘부터 우리는 같은 청춘 만화에 가깝습니다.
*물론 슬램덩크는 스포츠+청춘 만화입니다. 이 리뷰에서는 어느 쪽의 비중이 더 큰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분명 이기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기기 위해 농구 하기보다는
청춘을 불태우기 위해 농구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상남 2인조가 이기기 위해 싸움이나 경쟁을 하기 보다는
청춘을 불태우기 위해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슬램덩크는 분명, 농구 경기를 하는 만화가 아닌 청춘을 불태우는 만화입니다.
-청춘만화로써의 슬램덩크?
게다가, 슬램덩크가 스포츠 만화가 아닌 청춘 만화인 이유에 대한 추가설명은
작품 후반부에도 나옵니다.
"백호군은 우리 팀에 리바운드와 끈기를 더해주었네.
태섭군은, 스피드와 감성을...
대만군은 예전엔 혼란을...
호호홋... 하지만 지금은 지성과... 비장의 무기인 3점 슛을...
태웅군은 폭발력과, 승리에 대한 의지를..."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대사입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슬램덩크 최고의 명대사로 꼽는 대사입니다.
이게 뭐 중요한 대사냐구요?
문제아 캐릭터들의 성격을 따지고 고치기보다는
끈기나 폭발력, 의지 등으로 표현해서
캐릭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대사거든요.
대부분 감동을 주는 만화가 주인공의 성격을 착하게 순화시키거나 바꾼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이 대사는,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왜 청춘 만화일 수 밖에 없는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스포츠 만화가 주인공이 운동 실력을 키우는 거나
성장해가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슬램덩크는 강백호나 서태웅이라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기보다는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요.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캐릭터를 이해하게끔 만들고,
더 나아가서 독자들을 성장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지요.
-슬램덩크의 엔딩이 최고의 엔딩인 이유
제가 슬램덩크의 엔딩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크게 복잡한 이유가 아닙니다.
그저, 서태웅과 강백호가 서로에게 패스해서, 한번씩 총 두 골을 넣는 장면이
너무나도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거든요.
대사하나 없는 그 장면이 뭘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냐고 궁금해하실 분도 있을 텐데,
그 장면이 대단한 이유는 서로 싸우기만 하던 두 청춘 만화의 주인공이
끝에 가서야 서로를 인정한다는 뜻을 함축적으로나마 담아내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슬램덩크에서 농구란, 이기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뜨겁게 불타오르는 청춘임을
다시 한번 독자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켜주는 장면인 거죠.
비록 대사나 묘사가 없어도, 독자들은 충분히 서태웅이나 강백호가
서로에게 패스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그림으로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엔딩을 그려낸 겁니다.
게다가, 오히려 대사가 없어서 더욱 박력있게 느껴지는 연출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저는 슬램덩크의 엔딩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청춘만화로썬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으며,
아무 말이 없어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독자들에게 전달했으니까요.
-결론
슬램덩크란 어떤 작품인지, 그리고 슬램덩크의 엔딩이 왜 최고의 엔딩인지에 대해서
입 아프게 떠들어대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만족한 분들보다도 만족 못한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말 따위야 어찌 되었건
갑자기 뚝 끝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후유증을 남겨줬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그런 분들은 한번만 더 슬램덩크가 과연 어떤 만화인지에 대해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제목 '슬램덩크'만 생각해봐도, 작품 내에서 슬램덩크가 나오는 횟수는 극히 적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죠.
리뷰 내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슬램덩크가 스포츠 만화에 더 가까운지 청춘 만화에 더 가까운지...
왜 엔딩에서는 대사가 없었는지... 왜 많은 팬들이 명장면을 꼽는 장면들이 명장면인지...
같은 걸 한번 더 생각해보시면서,
왜 제가 슬램덩크의 엔딩을 최고의 엔딩으로 꼽는지 다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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