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新婦) : 서정주 시
신부(新婦) : 서정주 시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를 못 참아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당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 감상 : 시집 [질마재 신화]의 첫 번 째 작품으로 낭만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인의 정절을 짧은 이야기체로 노래한 작품이다. 첫날밤 신랑의 오해로 신부가 소박을 맞았지만 40~50년 후(즉 늙었을 때) 변함없이 신부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고 신랑의 손길이 닿은 후 재가 되었다 함으로써 여인의 삶이 완성되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