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나의 독소전쟁 참전기록 (리메이크)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이 글은 저와 함께 독소전쟁에서 함께 싸운 국방군(Wehrmacht) 전우들에게 바칩니다.
저는 1920년 독일 바이에른 지방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당시 저의 조국 도이칠란트는 1차세계대전의 패배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프랑스, 벨기에등등이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하는등 외세의 간섭도 많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저는 훗날 독일의 국가지도자겸 국가총리가 되는 히틀러씨의 약진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제 어린시절을 이겨내고 전 어느덧 청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1937년 독일 라인란트 재무장 선언직후 독일 국방군 육군 병사로 입대했습니다.
저는 몇주간의 혹독한 군사훈련을 겪었습니다. 당시 독일 국방군의 기초군사훈련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제 고향친구인 헤롤트도 훈련도중 사망했을 정도였죠.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슬로바키아 분할도 직접 목격하고 시간이 지나고 1939년 8월 갑자기 저와 제 전우들은 폴란드 국경근처로 배치되었고 9월 초 국가지도자겸 국가총리인 히틀러씨는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서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폴란드 바르샤바 점령부터 파리 개선문 행진까지 전부 경험하고 다른 전선의 우리 국방군 전우들은 노르웨이와 덴마크까지 점령하고 우리 독일은 바다사자 작전을 통해 영국 런던 점령 직전까지 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독일 국방군 공군과 해군은 영국 본토 공격에 실패하고 우리는 기약없이 프랑스 해안지대에서 대기하다 어느날 갑자기 소련 국경지대로 배치되었습니다.
1941년 6월은 제 생애 잊을수 없었던 엄청난 경험의 시작이었죠. 수백만명이 넘는 독일 국방군과 우리 우방군들은 소련 침공에 투입됐습니다.
우리는 벨라루스 민스크, 우크라이나 키예프, 세바스토폴, 자포리자를 손쉽게 점령하고 수백만의 소련군 포로들을 획득해서 이 전쟁은 곧 우리가 이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하고 1942년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이름에서 따온 스탈린그라드에서 우리군은 대규모로 패배하고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육군 야전원수가 소련측에 일방적으로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 큰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그리고 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은 소련에 패배했고 전 이때부터 우리 조국의 패배를 직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미국의 아이젠하워 원수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발터 모델 육군 야전원수가 라인강 수비 작전(벌지 전투)을 통해 미국과 서부연합군에 일격을 가할려 했으나 결국엔 실패했고 저도 소련땅에서 계속 후퇴해서 결국 우리 조국 본토에서 국민돌격대를 지휘하는 장교가 되었지만 전 이미 우리 조국의 패배를 직감해서 별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4월 저는 베를린 근교에서 소련군 기갑부대의 공격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죽은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깨어났습니다. 동물귀가 달린 미소녀들이 모여있는 어느 학교같은곳에서 다시 깨어났습니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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