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주인공
1.연극의 주인공
연극의 주인공은 타인이 쓴 대본대로 움직이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카네키는 연극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어요. 남의 계획대로 살아야만 하는 존재니깐요.
후루타에 의해 구울이 되고 아오기리에 잡혀 구울이 되고 ccg에 잡혀 수사관이 되고 에토에 의해 강제로 각성하고 아리마와 에토의 각본에 따라 왕이 되고
결국 후루타의 계획에 의해 용이 됬습니다.
2.저항과 실패
그럼에도 카네키는 연극속에서 당당해지고자 노력합니다. 위에서 히데가 말한 것처럼요.
1부의 흑카네키는 자신의 의지로 인간인 아몬을 살려주고 백카네키는 철골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노력합니다.
1부 마지막에서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고
2부의 하이세는 행복한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검은 사신은 히나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척안의 왕은 인간과 구울의 화합을 위해 투쟁하고 자신의 의지로 가정도 만들었습니다.
두번째 이미지는 143화 카네키의 독백입니다. 카네키는 연극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노력했지만 항상 실패합니다.
백카네키는 철골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노력했지만 아오기리에 의해 카노우를 잡는데 실패합니다. 안테이크전에 뛰어든 카네키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고 아리마에 의해 카레 냄비 속의 감자가 되어버렸죠.(더 얄궂은건 자신의 의지로 살려주었던 아몬이 막판에 자신을 가로막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참 인생 계획대로 안풀리죠.)
하이세의 삶은 에토에 의해 망가져버렸고 척안의 왕은 용이 됩니다. 자신의 의지로 만든 가정은 파탄내게 생겼고요..
143화 독백이 인제 좀 이해가 갑니다. 타인에 의해 카네키의 삶은 정해졌고 카네키는 주어진 운명속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죠. 그러나 더 강한 힘에 의해 매번 그의 계획은 엉망진창이 되고 또 타인에 의해 끌려갑니다.
3.나름 성공?
검은 사신은 다른 카네키들과 달리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히나미도 구하고 아리마와의 싸움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죠.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와 코마도 살아있네요.(1부 백카네키의 선택과 실패를 어느정도 위로받았죠.)
그런데 이게 진정한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카네키는 아직 연극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카네키가 반강제로 연극의 주인공을 해야됬던 것처럼 아리마와 에토에 의해 강제로 왕이라는 배역을 떠맡은거죠.
세번째 이미지에서 잘 드러납니다. 카네키는 인간과 구울의 화합을 상징하는 왕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사실 그의 마음은 공허합니다. 억지로 맡은 배역이잖아요.
4.아리마
아리마도 타인에 의해 끌려가며 살았습니다. 사신이라는 배역을 맡으며 타인을 죽여왔고 반인간이라는 숙명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카네키한테 동질감을 느낀 이유입니다.
아리마 역시 카네키처럼 세계에 저항합니다. 아리마는 자신의 의지로 척안의 왕이 됬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타인을 죽여야 하는 배역을 떠맡은 아리마가 마지막에는 무언가를 남기며 죽었습니다. 연극의 대본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은 성공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리마에 의해 카네키는 척안의 왕이라는 새로운 배역을 떠맡게 됬지만요..
5.이 글을 쓴 이유
사실 이번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각성(특히 척안의 왕으로서의 각성)은 용가리가 되기 위한 무의미한 것들이었을까요.
척안의 왕이 되며 웃는 장면에서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카네키도 불쌍하고 스이에게 실망했습니다.
검은 사신,척안의 왕으로서 보여줬던 카네키의 모습이 너무 무의미해보였습니다. 그릴 필요가 없었잖아요. 그때 작가는 아무 의미없이 이런 모습들을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척안의 왕도 결국 아리마와 에토라는 타인이 정해준 배역이었기 때문에 카네키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다. 이게 작가의 생각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