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카네키는 자신의삶에 주체가 되지 못 했네요
카네키의 성격과 가치관은 모친의 영향이 큽니다.
손해보는 성격과 남한테 미움받기 싫어서 괜찮다고 웃는 습관
그렇지만 모친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아들에게 손찌검을 해버리죠.
야모리 고문 당시 어머니의 회상 때는 나오지 않았지만
2부에서 자아를 속에서 끄집어 내는 과정에서 함께 딸려나온 기억
아마 카네키 스스로가 어머니에게 맞은 기억을 봉인한 것 같네요.
그렇지만 그런 어머니라도 다시 사과하며 애정을 주었겠고..
여기서 카네키가 쉽게 정을 끊지 못 하는 정에 대해서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영향을 주었을껍니다.
또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힘든 사람이 된 거죠.
나를 때리는 어머니라도 나를 사랑해주기위해 내가 미워할 수없다면서요.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수단(자기합리화,기억봉인)이였던 것 같습니다.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카네키의 집 배경을 보면 카네키가 놀만한 게 따로 없습니다.
또한 유전적인 영향인지,환경의 문제인지 카네키는 상당히 내성적입니다.
히데가 있다해도 학교가 끝나면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껍니다.
히데가 이사오기전까지는 교우관계도 더 안 좋았을테구요.
그렇기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만큼 아버지의 서재가 카네키의 유일한 놀이터가 될 수 밖이 없었고,
책을 읽으면서 엄마를 기다리는게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겠죠.
책들의 이입하다보면 카네키가 현실을 잊게 만들고 책의 세계로 도망가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을꺼예요.
결국은 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카네키의 환경 영향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읽었던 책을 읽게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모습을 자신의 뇌 속에 상상하며 그렸을껍니다.
그런 요인으로 2부에서 아리마를 멋대로 아버지처럼 따랐던 것 같습니다.
의지할 수 있는 강한 사람, 자신을 제어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아버지의 이상형으로 그리고 아리마와 겹쳤던 것입니다.
또한 카네키가 1권에서 그렸던 구울의 모습은 상당히 색감이 커질고 선이 날카롭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사람의 심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상대 심리-내면 심리를 분석하기도 하구요.
외적으론 사람 좋은 웃음을 짓지만 내면에는 한 없이 날카로운 감정을 가진 것 같습니다.
마치 모친이 카네키앞에선 다정하면서도 어쩔 때는 날카로워질 수 밖이 없었던 것처럼요.
어머니와 생김새나 분위기가 비슷한 여성인 리제를 보고 반했습니다.
단순히 여자라서 좋다가 아닌 어머니와 비슷한 감상을 받았기때문입니다.
여기서도 모친에게 크게 의존했을 카네키의 인간상이 보이네요(도쿄구울 2쿨엔딩에서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함께 자는 일러스트도 있죠)
하지만 구울이였고,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구울의 삶을 살게 되었죠.
히데가 말한 어린시절 카네키는 연극을 잘했다고 했죠.
그건 자신이 아닌 타인(배역)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실을 수 있기때문에 연기를 잘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한해서는 재능에 상관없이 잘 하거나 노력하기때문이죠.
히데의 눈에는 카네키가 잘 하거나 즐거워했던 모습으로 보였을껍니다.
카네키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얼굴에 드러내지않는 법을 어릴 때부터 배웠으니깐
자신의 감정을 싣고 표정을 보이는 연극이 신선했을껍니다.
이후로 야모리에게도 영향을 받고 , 수 많은 사람들한테 휘둘리고 간섭당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잃고
이번 화처럼 수 많은 자아를 스스로가 만들어냈던 게 아닌가싶습니다.
하이세라는 인간상도 결국은 카네키가 도망가기위해 만든 그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기방어를 위해서요.
작가님은 일부러 2부부터는 카네키에게 계속해서 선택의 갈림길을 만들고 선택지를 주는 것 같네요.
기억을 되찾은 후 하이세로써 살 것인가, 카네키로써 살 것인가
왕이 될 것인가,왕이 되지않을 것 인가
후루타를 놓아둘 것인가 , 잡을 것인가
구하러 갈 것인가,식량반과 이동할 것인가
결국 작가님은 수 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고 번뇌하는 인간적인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카네키가 쿠레오로부터 히나미를 구한 직후 이 세상은 잘못되었다고 바꾸겠다고 생각을 품죠.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에는 도달하지 못 하고 줄곧 실패만 해오네요.
그 과정에서도 타인의 간섭과 농간이 있었고, 왕이 된 것도 아리마와에토가 깐 레일에 올라탔것뿐이니깐요.
카네키는 왕이라는 그릇에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서 싫은 내색도 못 내고 수 많은 결정을 내리죠.
결국 정답을 만들지 못 해서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이 생겼겠죠.
동료가 다치지 않았으면했기에 자신이 모든 걸 떠안고 다치길 또 다시 택한거죠.
그렇기에 츠키야마와 니시키도 카네키의 그런면을 알기에 이번에도 말리지 못 했던거죠.
하지만 사지가 절단나죠.
자신을 위해서 움직이려해도 결국엔 타인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카네키는
마치 모친처럼 그런 모습을 보이네요.
카네키의 그런 복잡한 셈법과 정에 약하다는것을 알기에 후루타는 단순하게 그 점을 노렸구요.
카네키는 히데가 죽은 줄 알기에 자신의 버팀목을 잃었지만
토우카와의 결혼과 토우카의 임신을 통해서 작가는 카네키에게 살 명분을 또 다시 줘버렸나싶네요.
카네키가 용이 되는 결과까지의 모든 전 과정이 카네키가 주체가 되지 못 했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더 서글퍼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