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60)
요시카 내각 관방장관실 부대변인은
천근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힘들게 옮겼다.
저 화려한 문 너머엔
신선한 피를 갈구하는 좀비 같은 무리가
목을 빼며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 힘들었다.
그녀를
더욱 최악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바로 손에 들려 있는 발표문이다.
총리관저의 공식 발표문은
말 그대로 총리의 입장을 대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문구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서 만들어진다.
새해 정견발표 같은 것이라면
전문가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토시 하나까지 살펴본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불과 몇 분 만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총리와 정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고이즈미 신지로 내각 관방 장관이 아닌
아베의 예스맨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각 관방 부장관 직속의 관료 한 사람이 썼고,
아베 신조 총리는
그저 슬쩍 읽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해버리고 말았다.
발표문이 일으킬 파문은
전혀 생각조차 않은 것이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옛 생각이 났다.
그녀는 전직 아나운서였다.
나이가 많고 예쁘지도 않아서
슬슬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하나둘 넘겨주는 신세였다.
그러다가 기회가 온 것이
3년 전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정 뉴스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그때는 뉴스가 끝날 때마다
앵커가 짧은 맨트를 붙이는 게 용납이 되던 시설이었다.
보통은 정부의 비판이나 날카로운 식견을 말했는데,
그녀는 달랐다.
보수적인 그녀의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노골적으로 정권을 칭찬하지 않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사회가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어서 혹시나 해본 것이다.
방송국의 주요 임원이라도 했으면 했는데,
그런 그녀의 노력을
놀랍게도 집권 여당의 원로들이 알아주었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총리 대변인이 된 것이다.
한 번 쓰면
무슨 논란이 나오든 오래 쓰는
아베 신조 총리었던지라,
이제 조금만 있으면
총리 대변인 일을 한 지도 3년 차에 접어드는데,
이젠 나갈 때가 된 것 같다.
후우,
심호흡을 크게 한
요시카 대변인은
문 앞에 있던 의전관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의전관이 먼저 나가서
곧 대변인이 나오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자
거대한 군중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프레스룸에
요시카 대변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과연
예상처럼
벌떼와 같이 몰려든 기자들이 보였다.
이들은
저마다 가지고 온 카메라로
누가 더 크고 강력한 스트로보를 달고 있는지 경쟁을 하듯
플래시를 펑펑 터트렸다.
찡그리기라도 하면
그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을 게 분명했기에
요시카는 표정관리에 온 힘을 기울였다.
선글라스가 심히 생각났다.
눈이 부시기도 하지만
지금 들고 있는 발표문의 내용 때문에 더욱 간절했다.
아주 역사에 남을 장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중용해준 총리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일본 정부 마크가 떡하니 박힌 연단 앞에 선 요시카는
시장통처럼 웅성거리는 기자들은 상관치 않고
가지고 온 발표문을 들고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먼저 사죄를 구하고자 합니다.”
사과의 말과 함께 연단 옆으로 나와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숙였다.
다시금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총리의 발표문을
요시카 대변인이 대신해서 발표하는 형식이었으니,
공적으로 보면 총리의 사과와 마찬가지였다.
요시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국민 여러분께서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로
얼마나 상심하셨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밝혀진 비리는
이미 내각에서 확인하고 내사 중이었습니다.
또한, 정치적인 이유로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진 것이라 파악됩니다.
무엇보다 범죄의 은닉 자금을 받는 것은
끔찍한 횡령범죄의 공범이 되는 행동입니다.
그러니 범죄자의 감언이설에 속지 마시고,
차분히 국가의 적법한 사법 처리를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나 파격적인 발표를 기대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 아니었다.
프레스룸 기자석에 앉아서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는 기자들에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신 내각 총리대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 해외투자사업에 관련된 모든 비리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확실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입니다.
수사에 투명성을 기하기 위해서
시민과 원로들이 추천하는 후보 중 특별검사를 임명하고,
내각부터 국회까지
단 하나의 성역도 없이 수사와 기소에 관한 전권을 주겠습니다.
또한, 기계신이라는 해커에게 경고합니다.
횡령한 은닉 자금을 애꿎은 국민들에게 퍼트려
공범을 양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자수하고 빼돌린 은닉 자금을 성실히 반납한다면 선처하겠으니
신중히 생각하기 바랍니다.”
다부진 경고의 말에 다시금 플래시가 터졌다.
말은 그럴듯하고,
공정하게 처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으니 바로 특별검사 인선이었다.
시민들이 99명의 깨끗한 후보를 추천하더라도,
총리의 입맛에 맞는 적당한 권력 지향적인 인물 하나만 있으면
그를 뽑겠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끝난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요시카 대변인의 말은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확실한 조치를 하기 위해
현 시간부로
내각 총리대신의 권한을 이용해 긴급명령권을 발동합니다.
은행의 온라인 현금이체나 송금을 제한합니다.
이체나 송금은 오직 지점의 창구를 통해야 하며
얼굴이 나온 신분증으로 실명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조치는 일단 15일 동안 유지될 것이며,
문제의 향방에 따라 예정보다 빨리 해제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각 총리대신의 긴급명령권은
과거 일본 제국 시절 치안유지법보단 약해졌지만,
상당한 파괴력이 있는 권한이었다.
이 권한을 통해 이뤄진 조치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버블경제 당시 금융실명제 도입시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해커 하나 잡자고
긴급명령권을 동원해버린 것이다.
“또한,
현 조치 이전 불가피하게 은닉 자금을 수뢰한 계좌는
해당한 금액이 회수될 때까지 거래가 동결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에게서 돈을 받은 계좌는
먹은 돈을 토해낼 때까지 얼려버리겠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결정의 바탕에는
빼돌려진 돈에 대한 권리가 국가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융 거래에 제한을 둬버리면
경제가 위축될 텐데도 막 나가는 것은
뒤가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각은
언제라도 불신임 상정 통과로
언제라도 완전히 해체가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어짜피
오션 터틀 사건으로
정치적으로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받은 상황이였기에
다시 할 수도 없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던,
야당이 이기든 상관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번 아베 신조 총리는
이번 해외자원사업 비리와 큰 연관도 없었다.
진짜 몸통은 전 총리와 여당 원로들이었고
그는 부스러기 좀 주워 먹은 것뿐이었다.
그러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비리에 얽힌 이들을 모조리 잡아다 감옥에 넣어
당과 정치권에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회수한 자금으로
국민들에게 인기 좀 끌 선심성 사업 크게 하는 게
여러모로 나은 판단이라 여긴 것이다.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실시간으로 터져 나왔다.
-원래 주인에게 돈 돌려준다는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이냐!
-국가에 돌려줘 봤자다!
모두가 도둑놈들인데 또 무슨 빌미로 빼돌릴지 모른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가 만들어놓은 환급 신청 사이트를 통해서
환급받은 사람만 해도
이미 수백만 명이었다.
이들의 계좌가 일시에 동결되자
불만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공과금 결제일이 내일인데
계좌를 막아버리면 어쩌라는 거냐부터
집에 먹을 게 떨어졌는데, 돈을 찾을 수가 없다, 굶어 죽으라는 소리냐 하는 건 약과였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실수가 있었고,
기업 명의의 계좌까지 일부 막혀버렸던 탓이다.
기업의 당좌계좌가 막혀버려 입금받을 것을 못 받는 일이 벌어졌고,
돈을 갚아야 하는 데 갚지 못한 일이 터졌다.
기업이 빌린 돈을 갚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부도가 났다는 이야기였다.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는
이러한 정부의 과감한 행보를 비웃는 것처럼
이번에도 정부보다 한발 앞서 움직였다.
-HSBC, 시티은행 등등 해외 은행 거래 권장.
총리의 말발이 먹히는 국내 은행과 달리
해외에서 들어온 은행의 경우
총리의 조치가 먹히지 않았다.
긴급명령권은 일본 국민만 통하는 권한이지
해외 사업체엔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효과를 발생하게 하려면
국회에서 법으로 통과되어야 하는데,
지금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손익을 계산하느라 뜻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더욱이
이번 비리와 얽힌 이들은
당연하게도
힘이 있는 여당의 중진 의원들인데
이들 숫자만 해도 100명이 넘었고,
대부분 공천을 받아서
이번 총선에 후보로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어떻게 해서든 숨기고 축소해야 할 판에
일을 더욱 크게 벌이는
아베 신조 총리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덕분에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가 올린 새로운 게시물을 보고
사람들이 외국계 은행으로 벌떼처럼 몰렸다.
국내 은행과 비교하면
사업장이 얼마 없는 외국계 은행에는
순식간에 번호표가 동날 정도였다.
마치 몇 년 전
한국 최대의 메신저 프로그램이었던 카톡 감청 사태 때,
너도나도 국가권력이 감청할 수 없는 외국계 메신저로 갈아타는 일이
이젠 일본 금융업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현금성 포인트로도 변환 가능!
근처에 외국계 은행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지방 사람들을 위해서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는 또 다른 것을 들고 나왔다.
카드의 포인트였다.
초대형 인터넷 쇼핑몰의 포인트로도 되었고,
페이팔이나 구골 e포인트나 애플사의 아이페이와 같은
결제 서비스용 포인트로도 환급됐다.
총리관저가 빠르게 움직여
큰 길목은 차단했지만,
오히려
큰 길목만 신경쓰느라 골목길은 뻥뻥 뚫려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총리가 나서 준 덕에
환급률은 더욱 빠르게 올라서
이젠 6분에 1%씩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가 찍었다.
-우리의 대답은 거절이다.
특권의식에 쩔어 한 입으로 두말하는 자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는가.
총리 대변인의 발표에 대한 답이다.
그러면서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는
동영상 하나를 띄워 주었다.
바로 총리를 비롯해 1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들,
그리고
국회의원의 계인 계좌에 환급금을 넣어주는 영상이었다.
시스템의 화면은 마치 미래에서 온 것과 같이
허공에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이 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영상의 내용.
일반인의 계좌에 환급금이 입금되면
자동으로 동결되어버린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높으신 양반의 계좌는 그렇지 않았다.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가 얼마를 넣어주던
계좌는 정상 상태였다.
특별한 예외목록으로 만들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 중 상당수는
이번 비리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대리인 혹은 본인들이
직접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았다.
기계신에게 돈을 빼앗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동결된 계좌 때문에
뿔이 잔뜩 오른 국민들은,
자신들과 달리
멀쩡하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에
결국에는 폭발해버렸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는 본인들과 달리
VIP창구를 통해
은행원 혹은 은행 지점장들이
힘 있는 사람이라고 굽실거리며
설설 기는 꼴이 분통을 터지게 만들었다.
당연하게도
아베 내각과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는 급속도로 추락했다.
특히나
긴급명령도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던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율은
과거 한국과의 분쟁을 일으켰을때 보여준
지지율 상승을 능가할 정도로
진짜 폭락이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반대로
골든 에그와 언더월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다.
지금 당장
차기 총리 후보로 나오면
압도적인 지지도로 당선이 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