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레벨업] 아스본의 이야기 '광휘의 그림자' 10화
"왜 나서면 안된다는 겁니까?"
"네가 나서지 않는 게 도움이 더 많이 되니까. 나와 싸우느라 용맹님을 도와주지 못하는 게 낫니, 아니면 내가 저기서 어설프게 연극을 하는게 낫니?"
물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벨리온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전투에 참여하고 싶었다.
아무리 자신의 주군에게 도움되는 것이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라 해도 그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는 건 신하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 순간 몸이 튀어나가려고 했지만 다행히 지혜가 막아줘서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근데 찬란님은 어디 간겁니까?"
파멸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찬란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광휘 다섯이 나오더니 몇 마디를 나누고 싸움이 시작됐다.
"아마 내 방을 가지러 갔을걸? 리플렉터로 내 방에 융합되어 있는 무구를 빼내러 말이지."
한 박자 늦게 이해했다.
'그럼 찬란님이... 생각을 읽는 무구를 가지러 갔다고?'
"당장 가서 막..!"
둔탁한 소리가 뒷목에서 퍼져나갔다.
고통도 온 몸을 감쌌고 몸에서 마력이 완전히 빠져나감을 느꼈다.
"전투를 망치지 말고 지켜보렴."
지혜가 한 짓이었다.
"너.... 왜...."
털썩.
"이번에는 진짜 위험하겠는걸? 지혜의 군단이여. 전투의 결과에 대비한다. 용맹님이 승리하시면 우리는 이대로 용맹님께 갈 것이고, 패배하면... 용맹의 군단 전원을 척살하고 찬란님께 간다."
벨리온에게는 의식을 잃기 전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군단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젠장... 이러면 안..돼...'
그는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정신 차려!!"
"너 같으면 정신 차릴 수 있겠냐? 한 눈 팔지 마!"
"명랑! 오른쪽이다!!"
끼리리리리릭
검이 마찰하며 엄청난 열이 발생했다.
그런데 명랑의 검이 붉게 변하더니 완전히 두 동강 났다.
"이 뭔..."
쾅!
"야 이 멍청아!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작정 공격을 막는거냐? 마력의 밀도가 낮은 이상 깨지는건 당연한거지!"
5명의 광휘와 아스본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혼전 속에서 아스본을 제외한 광휘들은 파멸탄의 데미지를 입었고, 원래 차이가 심했던 실력들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5명이어서 그나마 버티는거지, 1명이라도 모자랐다면 버티기는 커녕 전원 전사였다.
[쾌활 님, 지혜 님과 연결 되었습니다.]
"그 녀석 지금 어딨는거야?"
[그게... 용맹님이 심어놓은 파멸탄에 군단이 거의 궤멸되었고 혼자서 벨리온과 전투하고 계신답니다.]
아스본에게는 희소식이었으나, 광휘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가뜩이나 지쳐있는 그들에게는 후방 지원인 마법사가 필요한데 하필이면 마법사가 빠지다니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찬란님... 빨리 돌아오시지요...!'
"왜 그러지, 벌써 끝인가?"
연락을 하는 도중 광휘 1명이 의식을 잃고 힘의 균형이 깨져버렸다.
"무슨 저런 괴물이 있는거야..!"
"저 분이 제대로 참전했으면 이미 전쟁이 끝났을텐데..."
"절대자가 전쟁이 안끝나게 하기 위해 저 자를 호위 무사로 둔거겠지? 중요한 전투를 제외하고는 다 참전한 녀석이잖아!"
"잡담 그만해.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스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왤까?
마력이 다 닳았다?
아니, 그의 마력량은 비정상적으로 넘쳐난다.
그럼 데미지가 심하다?
물론 날개가 완전 타버리기 전이라 고통이 있겠지만 움직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움직이지 않는 이유... 도대체 무엇일까?
"알았다! 날개를 공격하는 거다!"
"뭔 소리야, 이미 잿더미나 다름 없는 날개를 공격하는 게 뭔 의미인데?"
"그거야 바로. 날개가 잿더미나 다름 없지만 형체가 사라지지 않아. 즉, 사라지면 안되게 조절하고 있는거야. 그래서 지금 미동도 않는거고..!"
'낭패군.'
정확한 부분을 찔렀다.
날개는 이제 한계다.
제 역할을 하기는 커녕 완벽한 짐이었다.
여기서 힘을 더 개방하면 바로 어둠에 먹혀버린다.
그리고 어둠에 먹힐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이상 날개는 제 심장만큼 중요한 부위가 되었다.
의식을 잃은 1명의 광휘를 제외하고 동서남북을 에워쌌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전장에는 고요한 바람만이 맴돌고 있었다.
이윽고 가장 거대한 나무에서 나뭇잎 한 장이 바람을 타면서 떨어졌고, 마침내... 땅에 닿았다.
"으아아아아아!!"
4명의 광휘가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방어따위 하지 않겠다는 목적인 양 엄청난 속도로 접근했다.
날개가 급소가 된 이상 선택지는 없었다.
이제는 날개가 버텨주기를 바라는 것 밖에 없다.
"... 지배자의 권능."
우웅....
대기의 마나가 위대한 자의 권능에 응답했다.
마나를 사용하던 광휘 4명은 그 자리에서 정확히 움직임이 멈췄다.
입을 놀릴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 완벽하게 얼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를 못했다.
'어떻게 절대자의 권능이 저 자에게..!'
'큰일이군... 여기까진가...'
광휘들은 각자 최후를 예감했다.
하지만 아스본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피가 쏟아져 나왔다.
"커헉... 제길...!"
기회라고 여긴 광휘들은 움직이려 했지만 지배자의 권능으로 꽁꽁 묶여버려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 모든 감각을 지배자의 권능이 막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푹! 푹! 푹! 푹!
무형의 칼날이 광휘들에게 뻗어나갔다.
전원 복부를 관통 당해 피를 토하면서 뒤로 날라갔다.
"크...윽..! 뭔... 저런 괴..물..."
"이건... 이길 수.. 없..."
"여기까지...인가..."
"...."
총 2명의 광휘가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3명의 광휘가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고 아스본은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큭.. 쿨럭! 쿨럭!"
피를 토하며 휘청거리는 와중에서도 그는 오직 광휘들을 죽이겠다고 다짐한 눈빛을 지니고 다가왔다.
'설마... 진짜 죽이겠어..?'
시작은 쾌활이었다.
그의 앞, 약 50cm 되는 거리에서 검을 양손으로 잡고 들어올렸다.
태양빛이 검에 반사되어 밝게 빛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두운 마력이 검을 감싸안기 시작했다.
"야... 너.. 무슨... 그건 나를... 죽... 쿨럭!"
광휘들은 전원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고통스러움도 원인이지만 아스본이 쥐고 있는 검은 '영체를 파괴하는 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눈에는 더이상 초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날개도 깃털이 전부 사라지고 뼈대만 남았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군주의 기운과 흡사했다.
"죽.어.라."
기계적인 말과 함께 아스본의 검이 밑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땡강!
"찬란...님! 쿨럭!"
찬란은 도착하자마자 공격당하는 광휘들을 보았고, 쾌활이 죽기 전 아스본의 검을 두 동강 내고 그의 몸을 차서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선 물었다.
"무슨 짓이냐, 아스본. 네가 절대자를 지키고 싶다면 광휘들을 더더욱 죽여선 안된다는 걸 모르는건가?"
"........."
'이상하군... 왜 저 녀석에게서 아무런 생각을 읽지 못하는거지?'
기적적인 상황에 돌아온 찬란.
그의 오른 손 약지에는 금색 빛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리플렉터의 힘으로 지혜의 방을 축소시킨 '지혜의 반지'였다.
원래 원칙대로라면 아스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했지만 읽지를 못했다.
못 읽는 경우는 단 하나, 생각이 없는 상태이다.
즉, 지금의 아스본은 폭주한 상태라는 것이다.
'성가신 놈이군. 마치 파멸을 보는 것 같아.'
아스본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찬란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그를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인식했다.
이윽고 찬란과 아스본은 검을 쥐고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