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4)
그런 실망감이 가득한 듯한
키리토의 비꼬는 목소리에도
사람이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멎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가브리엘 밀러였다.
키리토의 말이
한 음절, 한 음절 뱉어질 때마다
그의 육체 내부가 악다구니를 쓴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느긋한 목소리.
결코 급하지 않은 목소리.
지금 가브리엘 밀러가 겪고 있는 최악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그 고통을 즐기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평생동안 가지고 놀 장난감을 구한 듯한
아이같은 천진난만한 목소리.
악마
아니 악 그 자체를 지배하는 마왕이거나
아니면 그 위의 마존급의 존재이던지
그렇게 떠오른
그 생각과 동시에
가브리엘 밀러
그 자신의 머리 속을 순간적으로 스친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어둠의 왕자) 조차도
자신의 휘하에 둘 수 있는
로드 오브 나이트메어 (악몽의 군주) 가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목소리였다.
가브리엘 밀러는 안다.
자신도 악당이기 때문에
악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악마나 지옥의 마귀를 능가하는
그들을 아니
이 어둠과 혼돈을 지배하는 존재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더럽고 잔인하던 그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였다.
자신의 조력자였던 그 야나기나
자신처럼
신사의 껍질을 썼지만
그런 껍질의 안에
사이코패스급의 잔인함과 사악함을 숨기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여서
상대를 위협하거나 억압하는 이들과는 달랐다.
이 아이의 현재 모습은
악이자 어두움 그 자체였다.
아니
이 아이는
뼛속까지 악이자
진정한 의미의 어두움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바다보다도 더욱 깊은 곳
어둠보다 더 어두운 곳
혼돈의 바다 안에서
그 혼돈 그 자체를 지배하는 존재
바로
악몽을 지배하는
악몽의 군주 (로드 오브 나이트메어)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낮은 웃음.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언뜻언뜻 배어 나오는 낮은 웃음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지켜보며
이렇게 웃는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 환장하고도 남을 것은.......
지금 그의 귀에는
그 악마를 능가하는 어둠을 지배하는
저 존재의 목소리가
천상의 하모니보다 더욱 감미롭게 들린다는 것이다.
악마든 누구든 말을 걸어주니까.
적어도
무언가를 들을 수 있으니까.
진짜로 기막힌 일이지만
사실이다.
그때,
그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시지요."
그 말에
가브리엘 밀러의 몸이 들썩였다.
움직인다.
움직이고 있었다.
언더월드에서 강제적으로 로그 아웃을 하고 나서
키리토의 지시로
그의 몸에 투여된 근육신경 마비약의 효과가 풀리는 해독제를
관(?)에 누워있는 가브리엘 밀러 머리맡에 있던
하늘색 교복의 청년이
가브리엘 밀러의 목에 투여한 것과 동시에
마치 돌처럼 굳어 있던
그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브리엘 밀러는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어떤 기쁨이나
공포의 표현 하나 없이
그의 몸이 바로 서는 순간
전신이 비명을 질렀다.
그 짧은 시간 만에
그의 근육이 올올이 풀려 버린 느낌이 들고
풀려 버린 근육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비명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가브리엘 밀러는
그 고통마저 기쁘게 받아들였다.
일어선다.
하지만
가브리엘 밀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지금 몸을 바로 세우는 것만이
그의 지상명령이라는 듯이
최선을 다해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알고 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키리토는
그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숨 쉬는 것을 멈추라 하면
멈춰야 한다.
살아 있는 것을 멈추라 하면
죽어야 한다.
한 줌의 영혼조차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 이 순간
키리토는
가브리엘 밀러의 모든 것을,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