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로 9권 제6장『각자의 맹세』 (마지막 파트) 일부 번역
제6장 『각자의 맹세』
4.
아무 생각도 없이 걷다가 깨닫고보니 다시 렘이 잠든 방 앞에 섰다.
틈만 나면 스바루의 발은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그것이 끝없이 자는 렘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을 뿐이라고 자각하고 있어도.
"나는 강하다고 너는 말했지만……네가 있어 주지 않으면 그렇게 허세를 부리는 나를 볼 수 없잖아, 렘"
누워있는 렘의 모습은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전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숨소리는 있다. 심장도 박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생명활동 다운 활동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렘의 존재는 이제 스바루의 안에밖에 없는 것이다.
"――"
렘의 침대 옆에 앉아, 그 자는 모습을 보던 스바루는 회상한다.
——깨어나지 않는 렘을 되찾기 위해서, 『단도로 목을 찔렀다』는 기억을.
그 순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켜쥔. 최고의 선택. ——그것의 포기를 망설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렘을 잃느니, 그녀가 없는 미래로 진행을 하기보단, 몇번이라도 『나태』와의 전투를 거듭하여, 지옥을 반복해도 상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단도가 목을 뚫고 피와 통증과 열과 상실감에 자신이 사라지는 감각——그것이 맑아질 때 『사망회귀』한 스바루 앞에는 침대에서 자는 렘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자살 직전에 오토 세이브라니. 정말로, 젠장"
리스타트 지점의 변경에 스바루는 무엇인가의 잘못이라고 다시 자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발작적인 행동은 『사망회귀』를 해도 렘을 구할 수 없는 역설을 깨달고 중단하여, 스바루는 단도를 떨어뜨리고 무너졌다.
가령 『사망회귀』로 페텔기우스와의 결전 전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그 시점에서 렘 일행들과 별도 행동을 시작하고, 몇 시간 후에 귀로에서 당한 렘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갈 수 없다.
만일 따라갔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대죄주교를 쓰러뜨릴 방안은 아무것도 없다. 그쪽으로 가면 페텔기우스의 만행을 놓치고, 에밀리아를 희생하게 된다.
렘을 도울려고 간다면, 에밀리아를, 에밀리아를 도운다면 렘을——각자가 희생하지 않고 구출하기 위한 가능성 조차 손가락으로 셀 수 없다.
그 지독한 선택 사항을 깨닫고, 스바루는 자해할 수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도 아무런 대항책도 없이 계속해서 렘에게 기대만으로——.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갑자기 배후에서 들어온 은방울 같은 음성에, 스바루는 어깨를 움직이고 회고를 끝냈. 얇은 미소를 짓고 스바루를 바라보는 것은 이 몇시간 동안 계속 혼자서 지내온 소중한 소녀이다.
뻔뻔스럽게 소중한 상대라고 말한,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에밀리아, 인가?……뭔가 볼일이라도 있는 거야?"
"없으면 찾아오면 안 되는 거야? 나도 이 아이……렘 씨의 관계자가 맞지?"
"렘 씨, 인가"
침대에 다가가서 스바루의 옆에서 렘을 보는 것은 에밀리아였다. 자신의 은발을 매만지며 에밀리아의 입에서, 경칭을 붙여서 렘이 불린 것에 위화감이 있다.
그 스바루의 말에 에밀리아는 "그래"라고 중얼거린다.
"나, 이 아이에게 경칭을 쓰지 않았구나"
"에밀리아 땅은 로즈월의 손님이지. 람의 여동생이라는 건 설명할 필요 없겠지?"
"응, 알고 있어. 왜냐면, 람이랑 정말 닮았어……다른 점이, 없네"
렘의 잠든 얼굴을 보던 에밀리아는 아마도 뇌리에 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붕어빵 같은 쌍둥이 자매이다. 머리와 눈동자 색깔, 눈빛과 가슴의 크기 이외는 똑같다.
――이제 와서, 람도 렘을 잊은 건 아닐까라며,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스바루, 계속해서 깨어있던 거지? 조금은 쉬는 편이 좋아"
"별로, 피곤하다는 게 아니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뭔가를 하고 싶다는 게 본심이지? 그렇게 마음이 매일 노력한다면 몸이 먼저 지칠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야"
간청하는 울림에 스바루는 겨우 에밀리아 쪽을 본다. 이 방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둘의 시선이 얽히고 자주빛의 눈동자에 떠오른 근심의 빛에 스바루는 숨을 토했다.
에밀리아가 이 방에, 사실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겨우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정이 없었네, 나"
"아니, 그렇지 않아. 나, 스바루에게 최대한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 진짜 정말로"
자조하는 스바루에게 에밀리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초췌한 스바루를 걱정하고 이 방에 온 것이다. 무리를 하는 스바루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기 위해서.
허리를 꺾고 에밀리아가 의자에 앉아 스바루와 시선을 맞추고 열심히 말을 찾았다.
"분명 괜찮아,라고 내가 말할 수 없겠지. 스바루의 기분을 알아주고 싶지만…… 잊어버린 이 아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무엇을 말해도 스바루의 신경을 긁을 뿐이겠지라고 생각하니까 "
"——"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야 해. ——렘에 대해서, 혼자 떠맡아서 고민하지 말아줘. 나에게도 제대로 스바루의 고민를 말해줘"
"에밀리아……"
뜻밖의 에밀리아의 말에 스바루는 가만히 눈을 떴다.
그 에밀리아의 제의는 정말로 스바루에게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는 렘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나지 않으면 뭔가를 하면 안 되는 거야? 스바루가 이렇게 슬픈 얼굴을 할 만큼 소중히 생각하는 아이라구? 그걸 나도 도와주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는 게 그렇게나 신기한 거야?"
"――"
"스바루가 나를 도와주었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스바루를 도와주고 싶어. 스바루가 상처받고 있다면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 ——그런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서슴없이 들어온 신뢰와 무엇하나 의심할 필요없는 친애의 정.
에밀리아가 일부러 말을 걸었기에 처음으로 스바루는 자신의 고집을 녹인다. 그리고 깨닫고 보니 굳어졌던 내가 정말로 바보처럼 생각되어 왔다.
"……에밀리아 땅, 굉장하네"
"그래? 스바루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에밀리아라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한 스바루에게 에밀리아는 멍한 얼굴을 한다. 알고 있는 듯, 알고 있지 않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스바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입술이 미소의 모양으로 변한 것을 자각하고, 스바루는 겨우 깨달았다.
——렘의 잠을 알고나서 이후, 이번이 처음으로 보인 마음의 감정이다.
"에밀리아.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뭔데?"
"뒤 좀 봐줄래? ——조금은 울게"
"응, 알았어"
스바루의 소원에 따라 에밀리아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 배려에 구원되면서, 스바루는 자신의 무릎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치밀어 오른 감정에 맡긴 채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계속해서 자는 렘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휩싸여서 시간을 낭비하고 에밀리아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그걸로도 모잘라서 걱정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고.
렘을 기억하고 있는 게 자신 뿐이라고, 렘을 걱정하는 것은 자신 뿐이라고, 렘을 구하려는 것은 자신뿐이라고 독선하며 고민하고.
그런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스바루는 코를 훌쩍거린다.
그리고――,
"――"
자신의 흐느낌 소리만 들리는 방에서, 스바루에게 불의의 따뜻함이 목이 걸쳤다.
뒤에서, 의자 등받이 너머에서 스바루를 안고 에밀리아는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
아무런 말도 없었고,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
다만, 다정함을 구원하며, 스바루는 눈물과 함께 자신의 약함을 소리질렀다.
그리고 지금, 맹세한다.
"——나는 꼭 너를 되찾을 거야. 렘, 반드시다"
말한 것이다. 스바루는 그녀에게.
너의 앞에서 네가 반한 남자가 최고의 히어로가 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그렇다면 아직, 그 길의 도중이 아닌가.
"내가 반드시……너의 영웅이 반드시 너를 맞이하러 갈게. ——기다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다짐이자, 운명이라는 적에 대한 선전 포고다.
나츠키 스바루의 앞을 막아서며 악의대로 행동하고, 사람들에게 결코 침범해서는 안 된는 물건을 더럽힌 자들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츠키 스바루가.
"반드시. 반드시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시간 속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렘을 뺀다라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까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잃어버린 나날을, 너와 함께 걸었던 시간을, 너와 걸어갈 시간을.
다시 한 번 이 손에 끌어 올려 보일테니까――.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