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황동규
귀뚜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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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벤자민 화분 부근에서 며칠 저녁 울던 귀뚜라미가 어제는 뒤꼍 다용도실에서 울었다. 다소 힘없이. 무엇이 그를 그 곳으로 이사 가게 했을까, 가을은 점차 쓸쓸히 깊어 가는데. 기어서 거실을 통과했을까, 아니면 날아서? 아무도 없는 낮 시간에 그가 열린 베란다 문턱을 넘어 천천히 걸어 거실을 건넜으리라 상상해 본다.
우선 텔레비전 앞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저녁마다 집 안에 사는 생물과 가구의 얼굴에 한참씩 이상한 빛 던지던 기계. 한번 날아올라 예민한 촉각으로 매끄러운 브라운관 표면을 만져 보려 했을 것이다. 아 눈이 어두워졌다! 손 헛짚고 떨어지듯 착륙하여 깔개 위에서 귀뚜라미 잠을 한숨 잤을 것이다. 그리곤 어슬렁어슬렁 걸어 부엌으로 들어가 바닥에 흘린 찻물 마른 자리 핥아 보고 뒤돌아보며 고개 두어 번 끄덕이고 문턱을 넘어 다용도실로 들어섰을 것이다, 아파트의 가장 외진 공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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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그의 소리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