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나는 지금 도로 한복판에 서있다.
뭐 달리 할거라곤 교수가 그에게 따로 준 과제 때문.
사회 복지학과 전공수업시간이었다.
웃음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내가 그때 질문을 했던 것이 실수였다.
"교수님, 그렇다면 웃음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떤 웃음이 가장 좋은 웃음인가요?"
"그것은 스스로 느끼고 체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거야. 따로 학생에게만 숙제를 내 줄 테니 수업이 끝나면 따라오게,
이 숙제가 너에게 큰 도움이 될거야."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숙제가 이것이다. 사람들의 웃음에 대해 조사하기.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개별과제를 내주는 이상한 타입의 교수였지만.
그것을 까먹은 채 질문했던 내가 정말 멍청하다.
그저 웃음에 관해 조사하라니, 웃음의 무엇을 조사하라는 것인가. 시작조차도 할 수가 없다.
계속 그렇게 방황을 하고 있다보니 내 눈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가는듯한 네살 남짓한 소녀가 보였다.
그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끌려가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얘야, 무엇이 그렇게 기쁘길래 그리도 활짝 웃고 있니?"
아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엄마랑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어요."
"그래, 대답해줘서 고맙다."
나는 꼬마숙녀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답례로 주머니에 있던 막대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또 싱글벙글 웃었다.
그렇게 설문지의(라고는 그저 A4용지 몇장을 겹친거라 별거 없지만) 첫 줄을 완성했다.
「즐거운 곳에 놀러가기.」
역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맞는듯 그 이후로는 술술 풀려나갔다.
웃음을 띠고 있는 사람들을 다짜고짜 붙잡은 뒤에 나는 동일한 질문을 했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웃고있나요?"
그에 웃고있는 사람들의 대답은 나의 설문지를 조금씩 조금씩 채워나가고 두어장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이제 어느정도 해놓았으니 중간정리를 하기로 했다.
어떤 부부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렇게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웃고 있어요."
수능이 끝나고 놀고있는 학생들의 입에선.
"이제 더러운 수능도 끝나고 자유잖아요? 실컷 놀 수 있으니까요!"
뭐 대충 이런 중복성이 있는 대답들이었다.
다음 남은 반정도의 내용을 채우는것의 질문은 조금 다르게 해보았다.
"어떤 것이 당신을 웃게 만드나요?"
역시나 동일한 질문의 반복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웃고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작위로 골라서 질문을 했다.
그렇게 몇시간동안 돌아다니면서 질문을 하고 설문지에 내용을 적은 뒤에
마무리로 점검을 했다.
운동을 하고 쉬고 있던 중년의 남성에게 질문을 했을 때이다.
"제가 몇달전 말기암을 완치하고서 지금 꾸준히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고 식단조절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막상 암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죽음의 길에서 살아돌아와보니 지금 살고 있는 순간순간이 저를 웃게 만드는 것 같네요. 하하."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던 정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에게 돌아온 대답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느끼게 했다.
과연 이것이 교수가 나에게 이런 숙제를 내 준 이유인것인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할아버지, 죄송한데 질문좀 괜찮은가요?"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항상 들고다니는 보온병의 따뜻한 녹차 한잔을 종이컵에 따라드리며 물었다.
"무엇이 할아버지에게 웃음을 짓게 만드나요?"
할아버지에게 대답이 돌아오는 것은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이런 외로운 늙은이에게 말 한마디 건네주고 이렇게 따뜻한 차까지 대접해주는 이 상황이 나의 입에 웃음을 가져다준다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