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나르는 소녀 [ 프롤로그 2 ]
문득 일어나 보니 그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
그야말로 백색의 공간 .
그곳에 있는 것이라곤 나 하나가 전부였다 .
내 몸은 보이지 않는 사슬이 옭아맨 것처럼 자유롭지 않았고 ,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
이곳은 어디이고 나는 ‘누구란 말인가’ .
그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몽환적으로 피어오르는 어린 소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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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아는 시장의 곳곳에서 공연과 자주 보기 힘든 음식들을 구경했다 .
전국 방방곳곳에서 찾아온 상인들은 저마다 새로운 물건을 소개했고 ,
근처에 바다가 없음에도 손쉽게 어류도 볼 수 있었다 .
항상 봐오던 풍경이었다 .
하지만 ....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
늘 봐오던 그런 풍경이었지만 뭔가가 달랐다 .
그럼에도 련아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 .
집에 돌아가는 길 .
어두운 골목을 지나는 련아의 왼손에는 작은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그 빛을 따라서 작은 바람이 모여들고 이윽고 그것은 작은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
“누구시죠 ?”
그리고는 빛의 회오리를 자신의 뒤쪽으로 조준했다 .
하지만 긴 침묵이 지난 뒤에도 련아에게 모습들 드러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내가 요즘 많이 민감해 진건가 ?”
련아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왼손을 털어 빛의 회오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
그 이후엔 집에 올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집에 도착했을 때 , 가족들은 식탁에서 앉아서 련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
분명 하시는 일이 바빠 오늘도 돌아오시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
“늦었네 .”
그녀의 오빠가 차가운 눈초리로 련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
련아는 움츠려들려 하는 자신의 몸을 애써 억제하고는 오빠를 마주보며 대답했다 .
“볼일이 있었거든 .”
“보나마다 시답지 않은 일이었겠지 .”
“정말 너무 하네, 오빠 .”
“닥쳐, 아니면 제대로 된 변명거리라도 있어 ?”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닿지도 않는 키의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
“......”
항상 이렇다 .
그녀의 오빠는 련아를 매우 싫어하며 아버지가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지만 ,
그렇지 않을 때면 자기가 집안에서 최강자가 된 듯 떠들어대는 비겁자임을 표출 한다 .
그리고 어머니는 그 광경을 방관할 뿐이다 .
그녀에겐 10살 차이나 나는 아들이 딸에게 손찌검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
낮과 밤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단 말인가 .
련아는 자신의 집을 싫어하고 , 경멸 한다 .
련아는 결국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
뒤에서 낮게 조소를 보내는 오빠를 뒤로 하며 방문을 열고 침대에 뛰어올라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아냈다 .
그동안 힘들게 버텨냈지만 이젠 한계였다 .
13살 소녀에게 매일 이런 일을 견디라는 것은 너무나 큰 고역이었다 .
련아는 그렇게 한참을 운 뒤 이내 지쳐서 잠들었다 .
별이 쏟아져 내린다 .
주위는 불에 휩싸여 있고 자신은 그것을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수행했다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옮긴 련아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
피투성이인 목을 들고 즐겁게 웃어 보이는 남자가 서있었던 것이다 .
“나는 그대의 검 , 그대가 원한다면 죽일것이고 , 죽을 것이다 .”
-프롤로그2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