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임하댐 수몰지구에서
너 없이는 어떤 풍경에도 잠길 수 없어
하늘 향해 팔 벌리고 생매장된 나무들
죽어가는 가지 끝에, 네 얼굴을 건다
무모했던 여름의 기억들도
개울져 흐르는 저마다의 진실도
이 생에 내가 피운 모든 먼지들도
저무는 햇살에 부서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데
버릴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데
설익은 낙엽 한떼 우수수 난파한 배처럼 떠다니는
그해 시월 강둑에 앉아
이 생에 내가 짓고 허문 마음의 감옥들이여
대답없이 오래 썩은 한숨이여
차라리 제 무게로 가라앉기라도 했으면……
그해 시월 나는 강둑에 앉아 자투리로 남은 청춘을 방생(放生)했다. 쥐었다 풀었다 두 주먹만 허허롭게 살아 놓아준 삼십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