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 오랑캐꽃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는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띠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도래샘 :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