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 이산(怡山)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 : 이산(怡山) 김광섭 시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採石場) 포성(砲聲)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九孔炭)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平和)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 감상 : 성북동(서울) 산에 사는 비둘기는 도시 개발에 의해 삶의 터전을 상실한 성북동 사람이며, 나아가서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 소외된 인간으로 그 의미를 확대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시인이 63세 되던 노경에 지은 것으로 부드럽고 원숙한 표현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