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영원을 꿈꾸다 - 박얼서
우주를 한 바퀴 돌아온 셈이다
육십갑자 먼 길을 여행하는 동안
뛰고 넘어지고 헤매다 주저앉고
오랜 시간을 길 위에 머물렀다
길은 내게 늘 두려움이었지만
그날의 설렘이기도 하였다
길은 내게 단 한 순간마저도
게으를 틈을 주질 않았다
봄이 곧 여름 되었다가
어느새 하얀 겨울 되었다가
해진 고된 저녁이었다가
다시 곧 새 아침이었다
아침 일터로 향하는 길에서도
낯선 움직임 사이에 끼인 채
매번 초행길처럼 생소했다
두리번거리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반항처럼 걸어보았으나
다시 푸른 새벽을 맞았을 뿐
삼박 사일의 기나긴 여정에도
길은 결코 끝날 줄 몰랐다
길의 끝은 내일로 이어질 뿐이었다
자취를 지우고 마는 뱃길처럼
순간순간마다 낯가림이었지만
아버질 빼닮은 나만의 길이다
죽음마저도 길의 끝은 아닐 터이다
내게 길을 가르쳐 주시던 아버진
생전처럼 그 봄날 그 호숫가 하늘 길을
내 생각으로 걷고 계실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