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 기다림 임영준
온 밤을 지새우고
새벽 끄터머리에 잠시 눈 붙이고
부랴 부랴 집을 나섰다
알록 달록 가벼운 차림으로
관악산 초입을 메운 사람들 사이에서
환희에 들떠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 삼십분 후까지도
부푼 가슴 누르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공중전화를 붙들고
애꿎은 친구녀석들 늦잠 깨워
욕 먹고 있었다
세시간 쯤 지나서 사람들 모두 사라지고
그녀는 오지 않고 덩그라니
찌그러진 깡통처럼 버려지고 말았다
이윽고 해 저물어
후배 몇 불러 앉혀
억지 술자리로 만취해 퍼졌는데
그제서야 너울 너울 다가오는 그녀
머뭇거리다가 “미안해, ---”
그리곤 생각나지 않는다
흐지부지 그녀는 떠났고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수 없이 소풍가고
동네 뒷산처럼 드나들던 관악산을
그 날 이후 가끔 지나쳤지만
다시는 가지 않았다
눈길도 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