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에리리 인생의 일부
자서전 이벤트 참여합니다.
한가지 사건을 가지고 길게 쓰기보다는 제 인생에 있었던 많고 많았던 일들중 일부를 간략하게 써볼까합니다.
2살때 내성발톱이 발생해 병원에가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이때는 기억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전해들음.)
당시 마취를 하기엔 너무 아기였기 때문에 마취 없이 생 살을 째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말하길 사람이 죽을위기에 처하면 힘이 몇배나 세진다더니 어머니와 간호사 2명 3명이 달려들어 몸 전체를 붙잡아 겨우 수술을 했고. 수술후 나는 한동안 흰가운 입은 사람만 보이면 엄청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때의 기억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기억이 있었다면 지금도 PTSD로 남아있을거 같다.
4~5살때 나는 505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넘어졌는데 공사장에 쓰는 쇠파이프에 얼굴을 박으면서 앞니 두개가 날라갔다 그리고 울면서 어머니에게 갔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이 내가 기억하는 제일 어릴때 일이다.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생일이 1월이라 흔히 말하는 빠른 년생이다. 동갑내기보다 한살 빨리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1살 형들과 학교다녔고 친구로 지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데 아직은 입학과 졸업을 같이한 사람을 직장동료로 맞이해본적은 없어서 고민해본적은 없음.
초등학생때 나는 홍역에 걸렸었다. 당시 몸에 열이 38도가 넘어가는데 어머니는 의사에게 홍역이 의심된다고 했으나 의사는 홍역이 아니라고 다른 약을 처방해주었고, 증상이 더 심해져 어머니는 탄산음료가 열배출을 해준다는 말을듣고
나에게 사이다를 한잔 가득 마시게 했다. 사이다를 마신지 2~30분후 온몸에 발진이 일어났고 다시 병원에 가니 의사가 홍역을 인정했다. 홍역 인정후 어머니가 의사에게 머라 했는지 안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홍역이 걸려 학교를 일주일 쉬게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공교롭게도 티비에서 전광렬 주연의 허준이 엄청 인기 있는 드라마였고 역병으로 사람들이 다죽어나가는 상황이 나왔었다. 역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증상이 나하고 비슷한것이었다.
초등학생의 에리리는 나도 저렇게 죽을까봐 무서웠고 어머니한테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형이 중학생이고 내가 초등학생일때 2002년 월드컵이 있었다.
월드컵때는 그날 오후에 대한민국 경기가 있을때는 학교에서 오전수업만 하고 마쳐주었다.
어느날 대한민국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형과 나는 둘이서 사직동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응원을 갔다.
그날 요즘도 2002년 월드컵하면 나오는 유명한 골 장면 박지성의 레전드 골이 터지면서 16강에 진출했고, 형과 나는 나쁜놈들한테 삥 뜯겼다.
2명한테 뜯겼는데 몇살인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생 같았다. 덩치에 쫄았던 형제는 피같은 돈 1800원을 뜯기고 어머니가 혹시 모른다고 형의 양말속에 숨겨두었던 세종대왕님은 살아남았다.
그후 두형제는 차가 막혀서 미남교차로까지 걸어갔고 살아남은 세종대왕님으로 택시타고 집으로 갔다.
가끔 형과 그때 이야기를 하면 서로 웃으면서 그양반들 지금은 머하고 있을까 하곤한다.
중학생때 형이 날라차기 연습을 한다고 나에게 한쪽 발을 잡아달라했다. 나는 한쪽 발을 잡았고 형은 날라차기로 내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순간 눈앞이 번쩍이면서 고통과 함께 쓰러졌고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코피가 줄줄 흐르는것이었다. 형도 당황해서 급하게 휴지를 가져와 닦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코피의 보상과 어머니한테 말하지 말라는 입막음 보상으로 라면을 얻어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라면말고 더한 보상을 요구했어야했는데라고 생각한다ㅋㅋㅋ
의정부에 위치한 306 보충대에 1월 입대하였고 비교적 따뜻했던 부산에서 살았던 나는 의정부의 살인 추위를 맛보았다. 하지만 의정부 추위는 아무것도 아닌곳으로 부대배치를 받았다.
당시 2300여명의 입영 장정중 10%인 230여명이 강원도 철원에 배치될 예정이었고 나는 그 10%에 당첨되었다.
5주간의 신병교육대 훈련이 끝나고 자대배치를 받은지 1달 정도 지난 이병일때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났고 일병이 꺽일 즈음에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다.
그 당시 밖에선 무난한 평일이 이어졌겠지만 군대는 초비상사태였다. 출동 명령 떨어지면 바로 출발할수 있게끔 모든 준비를 다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채로 전투복을 입은채로 잠들고 전방부대였던 탓에 불시로 적 미사일 낙하 상황 대비 대피 훈련 이런걸 엄청 했었다.
이외의 큰 사건은 없었고 내가 속했던 중대는 부조리가 별로 없었던지라 스스로가 잘하면 선임도 별 터치 없었고 나름 즐겁게 군생활을 했다.
전역할 당시 우리 사단은 전역행사라는걸 했는데 전역 행사를 하면서 사단장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악수를 했다. 그 사단장이 현재 국방부장관을 하고 있다. 저사람이 국방장관까지나 갔구나 싶더라.
전역하고 빡빡머리에서 점점 머리가 길어지고 있을때 북한에서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고 그 뉴스를 보고 아 지금쯤 또 비상 걸렸겠구나 생각했다.
군 제대후 나는 군생활한다고 못본 나루토 질풍전 번역본을 찾기위해 혈안이 되어있었고 우리 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와중에 형이 야 질풍전 번역본 볼수 있는 사이트 찾았음 하는것이었다.
그게 어디고 하며 달려갔고 나는 그때 처음 갓흥 사이트 츄잉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츄잉에서 다른사이트를 들어가 번역본을 볼수 있었고 시간이 흘러 막히면서 츄잉은 즐겨찾기에 방치된채 잊혀졌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취업준비를 하다 즐겨찾기의 츄잉을 눌러보았고 아이디를 만들게 된게 지금의 이 계정이다.
계정 만들고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 2년간 더 방치함.
그러다 첫글을 적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제일 잘했다 하는것중 하나가 담배에 손대지 않은것이다.
그런데 술은 엄청나게 마셨다. 22~25살까지 3년동안 완전 술독에 빠져 살았다 싶을정도로 많이 마셨다. 실제로 일주일 7일중 6일을 술마신적도 있었다.
대략 1년 6개월정도 감자탕 가게 서빙 알바하면서 달마다 6~70만원을 벌면 그돈은 전부 술마시는데 사용되었다.
어쩔땐 내가 오늘 콜?? 하고 어쩔땐 친구가 오늘 콜?? 하고 술을 마시면 거의 항상 4명이서 마셨는데 4명이서 마신거 치곤 그리 많이 먹진 않았음 4명이서 6~7병정도 마셨던거 같다.
그렇게 술에 절은 대학시절이 지나가고 취업을 준비할때가 되었다. 취업을 위해 건강검진을 했는데 35~40정도가 정상수치인 간수치가 280이 나왔었다. 상담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살아있는게 용하다 하셨고 취업을 준비중이었던곳은 탈락했다.
그날을 시점으로 나는 술을 거의 끊었고 한달동안 운동하면서 간수치를 38까지 내렸고 건강검진때문에 탈락했던 직장에 들어갈수 있었다.
술은 현재까지도 회식때 아니면 거의 마시지 않는다. 1달에 많이 마셔봐야 캔맥주 1~2캔이 전부인거 같다.
그렇게 나는 취업해서 이글을 적고 있는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며, 이제는 완전 새로운 것을 하기위해 이직을 준비중이다.
여기까지 이상 에리리의 자서전이었습니다.
수많은 일들중 일부를 가져오고 그 일부를 간추려서 적으려니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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