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에 춤추는 연분홍빛 소나기 제 1장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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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과 헤어진 후, 나는 1년간 연과 만나지 못했다.
서울에 막 돌아왔을 땐, 하루 종일 연이 생각나서 멍하니 있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도 언제까지나 연을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점점 나의 일상은 바빠졌고, 그 계속되는 바쁜 일상 속에서 연의 기억은 점점 투명하게 존재감을 잃어갔다.
연을 만나기로 했던 2년이란 시간을 나는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눈코뜰새 없이 지나간 1년이란 세월에 나는 연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만난 때와 같은 1년 후의 봄방학, 그 마지막 주, 나는 또다시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다. 첫날을 뒹굴 거리며 소설책만 읽으며 보내고, 또다시 아무 일 없이 보내는 할아버지 댁에서의 둘째 날,
“잠시 요 앞에 나갔다 올게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전한 후, 그 집을 나왔다. 달리 할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집안 보다 집 밖이 더 심심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휴... 지루해...”
나는 할아버지 댁 앞에 흐르는, 도랑을 건너는 다리의 난간에 기대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가지고 온 소설은 어제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다 읽어 버렸고, 아직 아침이라 재미있는 방송프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일단 밖에 나온 것이다만...
“아... 나른해...“
겨울이 녹은 봄바람을 한껏 맞으며 나는 혼자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주머니에서 작은 소설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아무 페이지에나 넘겨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어제 다 읽은 책이라 어느 페이지로 넘겨도 나는 그게 소설의 어느 부분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소설의 최심부. 푸른 언덕에 홀로 서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고백을 하지만 희망적이었던 예상과는 완전히 반대로 여자 주인공이 거절하는 장면이었다.
어라? 다시 보니 이거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휙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읽은 소설은 내용을 거의 잊어버린 것도 있을 만큼 많이 있지만, 어딘지 다른 소설에서 읽은 것 같지는 않았다. 기억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조금 현기증이 일기 시작했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피식하고 새어내며 도랑 옆을 따라 잠시 산책하기위해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앞엔 할아버지 댁 뒤에 있는 뒷산이 보였다.
새싹의 연두색이 온산을 뒤덮고 있었다. 어쩐지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는듯한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의 목적지를 시아 속의 장소로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생각 날듯 말듯 한 기억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발이 당겨지는 대로 가면,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연기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더듬어서 나는 풀숲을 헤치며 숲속을 배회했다. 어딘가 본 기억이 있는 풍경을 따라 산속을 헤메었다.
관자놀이에 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고, 호흡은 가파르게 불안정 했졌다. 꽤 깊숙이 까지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을 땐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하아... 하... 힘들어... 도대체 내가 왜 이짓을 하고 있는 건지...”
바로 앞의 소나무에 쓰러지듯 기대어 나는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푸념을 혼자 중얼거렸다.
이젠 못하겠어... 찾더라도 내일 찾도록 하자... 라고 생각한 나는 하릴없이 산을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던 중, 본적 없는 이상한 길을 발견했다.
...어라? 올라올 때 이런 길 있었나?
그것은 좁지만 동물이 다닌 길이라고 하기엔 조금 커 보이는, 수풀속에 난 작은 오솔길 이었다. 나는 숲을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곳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길을 나오자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돌연 가슴이 그 장소에 공명하듯 소란스럽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본 기억이... 있는 것 같다... 아니, 본 기억이 있다.
공터에는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주위의 모든 수풀이 봄의 태동에 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가운데 홀로 겨울인 채로 남아있는 앙상한 나무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나무에 다가섰다. 아무래도 그리운 향수와 같은 느낌의 풍경 속에 우뚝선 그 나무만이 내게 위화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며시, 조심스레 다가선 그 나무의 앞에 나는 살짝 손을 댔다.
-두근
감전되듯 저릿한 감각이 온몸을 핥고 지나갔다. 그것과 동시에 머리 속에는 기억의 조각이 찔러 들어왔다.
그것은, 황량한 그 나무의 앙상한 가지 가지에 우울한 공허대신 만발한 벚꽃이 달려있고, 소나기처럼 내리는 꽃잎의 한 중간에 백발의 소녀가, 그 흰 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서 있는...
그런 추억이 사진이 찍히듯 번쩍 튀어 오르는...
그런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소녀를 알고 있다. 몇 년씩이나 지난 것 같은 빛바랜 한 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이내 모든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소녀와 함께했던 나흘간의 기억들...
그렇다...
나는 그 백발의 소녀를 알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이렇게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겨우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 아무리 바빴다 하더라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는 기억일 터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서워졌다.
잊고싶지 않은 것을 거의 잊어가고...
아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사실이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또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지금 겨우 생각해낸 정말 중요한 모든 것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때, 나의 등에 무언가가 서늘한 것이 기대어 섰다.
“--!”
주위의 모든 것이 차단되어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무었인지 알아채고 있었다. 기억에 있다. 1년전에 소녀와 등을 맞대고 책을 낭독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드디어 소녀와 만났다.
그 벅찬 감정이 내 몸에 들어차고 넘쳐흘러 숨이 가빠지고,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핑 돌것 같이 커다래졌다.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그녀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돌아보지마!”
그녀의 날카로운 외침이 나를 사고회로 째로 정지시켰다.
“부탁이야... 그대로... 그대로 있어줘...”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그 애절한 목소리가 나를 그 자리에 그대로 굳혀 다시는 움직일 엄두도 못내게 만들었다.
“2년이라고 했는데... 왜 벌써 돌아온거야...”
힘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뒤에서부터 흘러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잠자코 앞에 있는 벚나무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을 뿐.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모든게 끝났을 텐데... 어째서...”
그녀의 목소리는 시들어가는 그 벚나무의 앙상해진 가지처럼 기운이 없었다.
어째서 그녀는 이렇게 기운이 없는 것일까. 어째서 그녀가 이런일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째서 그녀는 2년이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째서 그녀는 혼자서 모든 짐을 지려 하는 것일까.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모든 의문이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돌고 도는 가운데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너는... 뭘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소중한걸 지키고 싶으것 뿐... 이야..."
-털썩
“연?”
그녀의 대답과 동시에 내 등에 느껴지던 그녀의 온기와 무게가 갑자기 실이 끊기듯 떨어져 나갔다. 나는 놀라서 뒤를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소녀가... 연이 쓰러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피부가 핏기가 없어 더욱 창백해 져서는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이, 연! 어이!”
그녀를 불러 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에 나는 온 몸이 떨려와서 어떻게 손도 대지 못하고 그저 허둥대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어떻게든 눈을 뜬 그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나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상반신을 일으키려 했으나 팔이 후들거리며 떨린다. 역시 안된다.
어디가 괜찮다는 거냐! 이 바보!
“역시 안돼 그대로 누워있어! 의사선생님을 불러올 테니까!”
과연 인간의 의사가 요괴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라는 당연한 의문이 들기도 전에 나는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후들거리는 팔로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뭐라해도 듣지 않을 셈인가 보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억지 부리지 말라고!”
나는 단호한 말투로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잡아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녀ㅇ는 한동안 웅크리고 앉아 조금 힘든 듯이 숨을 가쁘게 쉬며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오늘은 집에 가도록 해”
조금 진정이 된 듯한 연이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소리야? 너,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니, 방금건 언제나 있는 일이니까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웃기지마! 그런 일이 그렇게 자주 있어서 괜찮을까 보냐고!”
나는 무심코 그녀에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내 소리에 나도 화들짝 놀랄만큼 큰 소리였다. 나는 금세 수그러들었다.
“미안, 소리 질러버려서... 그래도...”
“네가 있어주는 건 고마워, 하지만 정말 괜찮으니까.”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도대체 넌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거야? 이제 그만 이유를...”
“그건, 말할 수 없어. 적어도 지금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었을 원하고 있는지, 깜깜하고 깊은 밤바다 속을 헤메는 것 같은 답답한 기분에 가슴이 꽉 메인다. 나는 그녀에게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넌... 그걸로 좋은거야?”
“에?...”
그녀가 내 쪽을 홱 하고 돌아봤다. 총알에 맞은 것같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망설이고 있는 듯 했다.
“그건...”
그녀는 무언가를 뿌리치듯 고개를 홱홱 저었다.
“안돼, 역시 오늘은 그냥 돌아가줘.”
그녀는 힘이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그녀를 남긴 채 공터로 들어왔던 오솔길로 들어섰다. 나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만이 사실로 남아있을 뿐.
“너는 그걸로 좋은거야?”
그 말은 숲을 나와 집으로 향하려던 내 뒤통수를 때리듯 뒤에서부터 돌연 나를 덮쳐왔다. 그것은 작은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나무위에 걸터앉아 있는 령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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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요즘 레포트땜에 정신이 없네요ㅠㅠ 밑빠진 독에 물을 붇는 느낌이 딱 이런 느낌일거에요ㅠㅜ 겨우겨우 한 주의 레포트를
다 끝내서 그 레포트를 제출하면 또 바로 다음주 까지의 레포트가 있고...ㅠㅜ 하여간 요즘 이래저래 바빠서 못올렸어요.
정말 짬짬이 쓴 거라서 스토리도 막장으로 가고 있네요ㅠ ( 죄송함돠!) 다음편은 언제 올리게 될지 또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