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냄새 속에서 - 마종하
빈 사과 궤짝을
우리 마을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주워다
흙을 담고 빽빽이
파를 심었다. 눈 오는 날
발가벗은 나무들이 흰 깁을 두르던 날
마누라가 우장산 기슭으로
나를 마구 끌고 가서
흙을 담으라고 해서 담았다.
구제받지 못할 나의 긴긴 잠을
불러 흔들어 깨워서
파를 심으라고 해서 심었다.
시퍼렇게 언 파를 흙에다 끼우면서
나는 은빛 깁의 산이 그립다고 했다.
(목숨이야 마음같이
안될지언정, 그 산 속에 한동안
묻혀 있고 싶다고 했다.)
길다란 궤짝에 흙을 담아 왔으면 되었지
검은 흙 가득가득
속살이 하얀 파를 심어 놓았으면 되었지
더 무슨 정신 나간 잠꼬대를 하느냐고
마누라는 치마를
펄럭이며 돌아서 버렸다.
그래 좋다, 푸른 파
뜯어먹자 매운 파
콧날이 얼얼한 우리들의 삶
너무 매워서 눈물 나는 궤짝 속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