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채로 시를 잡다 - 홍관희
가난은 휴일도 없는 지 일꾼이 되라 일꾼이 되라 하고
엄동설한 난방을 해봐도 좀처럼
금고의 온기가 오르지 않았다
손님에게로 향기로이 스며들어야 할 커피는
침묵이 깊어진 그라인더에 갇힌 채
엄혹히 다가올 분쇄의 시간을 묵상하며
쓰디쓴 운명을 무지개맛으로 숙성시키고 있었다
파리 한 마리 윙윙 약을 올리며 머리 위를 날고
까똑까똑 스마트폰에 겹겹이 쌓이는 인생 청구서
돈이 되지 않는 날이면
무엇이든 한 가지는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그 생각마저 놓아버렸다
생각마저 놓아버리니
테이블 위에 펼쳐진 가난한 문우의 시집도 눈짓을 해오고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던
남루한 문장 한 줄
나를 열고 들어와 은은한 시향을 풍기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뭐라도 되긴 될 모양이다
이거라도 되기만 하면
오늘 하루는 됐다
파리채로 파리는 못잡고
저렴한 시만 잡은 어느 날
설정온도를 높이고 높여도
좀처럼 금고에 온기가 돌지 않았지만
내 체온은 36.5도
내 삶이 이만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