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동화 - 김남조
절망이 이리도 아름다운가
홍해에까지 쫓긴 모세는
황홀한 어질머리로 바다를 본다
하느님이 먼저 와 계셨다
이르시되
너의 지팡이로 바다를 치면
너희가 건널 큰 길이 열릴 것이니라.
하느님께선
동화를 쓰고 계셨다
지팡이 끝이 가위질처럼
바다를 두 피륙으로 갈라
둥글게 말아 올리며
길을 내는 대목,
동화는
이쯤 쓰여지고 있었다
모세의 지팡이
물을 쳤으되
실바람 한 주름이 일 뿐이더니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 믿음으로 길이 열려
그들이 모두 바다를 건넜다
홍해 기슭 태고의 고요에
홀로 남으신 하느님,
오늘의 동화는
괜찮게 쓰인 편이라고
저으기 즐거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