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땅이 꺼지는 마을
“아이고, 우리 이제 어떡하나……”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어느 여름 날, 부녀회장 최 씨가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그러게요. 어제 달아놨던 사다리도 이젠 소용없어 졌네요”
걱정스런 눈빛을 한 가득 뿜어내는 박 씨가 말을 이어갔다.
불혹을 웃도는 나이에도 이 마을에서는 어린 편에 속했기 때문에, 마을의 잡다한 일을 자주 해결해주고는 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희망 보다는 포기에 가까웠다. 최 씨는 적잖이 불안한 모습이었다.
“김 씨한테 물어봤나?”
“일단 방송으로 준비하라고는 했는데, 언제 나갈진 모르겠네요”
“아무튼 여기서 모이는 거 맞제?”
“그럴걸요?”
뙤약볕은 최 씨와 박 씨가 앉아있는 슈퍼마켓 의자까지 침범해왔다.
하지만 그 둘의 시선을 뺏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마을 밖에 철통처럼 솟아있는 벽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족히 몇 미터가 돼 보이는 흙더미였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몇 센티미터씩 높아져 가고 있었다.
어제 박 씨가 설치했던 사다리가 땅에서 발을 떼고 매달려 있었다.
“우리 이러다 죽는 거 아이가?”
“죽기 전에 얼른 나가야죠”
방금 최 씨가 말한 말은 진심 어린 말투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거침없이 솟아오르는 이 담벼락은 외부와 마을을 철저히 격리시키려고 작정하는 듯 했다.
이 낌새를 예전부터 알아차린 박 씨로 인해, 겨우 오늘에서야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한 것이다.
“니는 마을이 왜 이런지 아나?”
“당연히 모르죠. 심지어 학교에서도 배운적이 없는데”
“무슨 늪지대도 아이고, 땅이 와 꺼지는데?
최 씨의 말 그대로였다. 정확하게 이 마을만 땅으로 꺼지고 있었다.
반대로 마을 밖의 땅이 높아졌다고 한들, 고립된다는 사실은 매 한가지였다.
“짐 다 챙기셨죠? 이제 슬슬 나가야 될 것 같네요”
박 씨가 가리키는 저 멀리서 마을 이장 김 씨와 마을 주민들이 걸어 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 하는 듯 다리를 떨고 있었다.
“다 준비 되었으면 나갑시다”
앞장서던 김 씨가 외쳤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분위기는 삽시간에 침울해졌다.
얼마 되지 않는 주민들이 평생 동안 살았던 자신들의 집을 되돌아 보았다.
전쟁으로 인해 피난생활을 했던 그 시절을 겪었던 노인들은 그 때의 슬픔이 다시 떠올랐는지, 아니면 자신의
배우자를 일찍이 세상에 떠나 보내고 남은 흔적에 미련이 남았던 것인지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 했다.
“아이고, 아범아……”
“나중에 다시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나……”
“이러다가 죽겠소, 빨리 나갑시다”
김 씨가 한 번 더 재촉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떠나지 못 하고 힐끔거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김 씨가 팔 소매를 붙잡고 억지로 끌다시피 했다.
박 씨와 부녀회장 최 씨도 각자의 짐을 들고 그 행렬에 껴 있었다.
“조금만 더 걸읍시다. 다 도착했으니”
그들이 도착할 곳은 단단하게 매달려 있는 사다리였다.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픈 몸을 탓하며 언제 죽을지 낙담하고 있을 마을 사람들은, 막상 죽음의 위협이 가까워지자
살고자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드러냈다.
“이제 올라가시면 됩니다. 이 위에 설치한 사다리는 끈으로 단단히 매달아 놓았으니 안심하세요”
박 씨는 들고 있던 사다리를 내려놓았다.
탈출의 순간을 눈 앞에서 마을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깐 내가 먼저 올라가야지”
“새파랗게 젊은 놈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왜, 억울하면 나이 거꾸로 먹던가?”
“시방 뭐라고 해쌌어?”
누가 먼저 올라가느냐 결정하는 논쟁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번지자, 위아래 없는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럼 공평하게 박 씨부터 보내자고”
“왜 박 씨라고 생각하는겨?”
“사다리 저기다 매달아놔서 우리가 나갈 수 있는 거 아뇨?”
“아니 자네는 부모도 없는가?”
“뭣이여?”
부녀회장 최 씨의 손이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았고, 그에 대응하듯 주먹이 날라왔다.
이를 말리던 당사자 박 씨마저 어디선가 내지른 손톱에 얼굴을 할퀴자 곧 이성을 잃었다.
그 틈에 올라가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를 지켜본 마을 회장 김 씨가 달려들었다.
그야 말로 아수라장 이었다.
쿵-
밟고 있는 땅이 울렸다.
동시에 육중한 소리가 들리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그들이 동시에 목격한 것은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끈과 바닥에 떨어져있는 사다리였다.
한 순간 정적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곧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높아져버린 흙더미 위에 서 있는 검은 물체를.
“깔깔깔깔깔”
기괴하게 찢어진 입에서 나오는 웃음소리를 내 뿜는 그 것은, 누군가 말을 내뱉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구덩이에 갇혀버린 소감이?”
번화가에서 꽤 멀리 떨어진 깊은 시골마을, 한 눈에 봐도 허름해 보이는 행색을 한 남자아이가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씻지 못 한 얼굴에서는 누런 땀방울이 여기저기 맺혀 있었고, 온 몸이 자잘한 상처투성이였다.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가 고파요…… 살려주세요……”
소년의 눈빛에 지나가는 마을 농민 중에는, 경운기를 타고 시내에 나가려는 마을 이장 김 씨도 있었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부녀회장 최 씨며, 농기구를 잔뜩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박 씨도 있었다.
그들은 소년을 눈치채지 못 한 것은 아니다. 쯧쯧, 혀를 차는 소리를 한결같이 내뱉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 없다는 듯이, 3일 내내 풀 뿌리를 뜯어먹어 초췌해진 소년을 비켜갔다.
“아……”
소년은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었다.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에 대항하지 못 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비스듬한 경사를 타고, 소년이 굴러 들어간 곳은 공사 때문에 깊게 파놓은 구덩이였다.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이 더러워진 볼을 타고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소년은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었다. 쨍쨍한 바깥의 햇빛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둠이 그의 시야를 방해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그리고 소년은 생각했다.
자신을 매정하게 버린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기로,
못 볼 것을 본 듯한 눈빛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대로 되갚아주겠다고 말이다.
그 차갑고 차가운 구덩이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