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적다] 요조라에 대해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겠지만, 요조라의 경우에는 많이 갈리는 편입니다. 이미지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고,
압도적인 이미지를 가진 세나 때문에 항상 콩라인에 묻혀있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요조라의 매력이 세나보다 하등하다는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요조라의 매력은 세나 뿐만 아니라 타캐릭터를 포함해서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합니다.
연출의 한계인지 아니면 그냥 개인적인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조라의 매력이 잘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한번 짧게 써보렵니다.
요조라의 매력은 내면적입니다. 겉으로 잘드러나지 않죠. 그리고 은유적입니다. 잘보고 찾아보아야되죠.
외견부터 살펴봅시다.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면, 초반에 타캐릭터보다 압도적으로 긴 머리카락을 꼽을 수 있습니다.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장발은 어찌보면 남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죠. 그러나 중반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버립니다.
어찌보면 어필하기 힘든 단발머리가 되어버렸죠. 이 때문에 몇몇 팬들은 타캐릭터로 전향을 하거나, 아예 과거의 요조라를 좋아해버립니다.
여기서 하나의 맥락으로 이미지의 변화를 읽어내리면 굉장히 재밌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새출발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새출발로 인식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새출발은 커녕 머리를 깎은 뒤로 요조라의 상황을 밑도 끝도 없이 나락으로 빠져버립니다.
따라서 저는 머리를 자른 것은 요조라에게 내재된 모순을 의미하는 것이라 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조라는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한 친구를 그리워합니다. 과거 요조라가 ‘소라’였던 시절에는 진정한 친구인 ‘타카’가 있었습니다.
‘타카’가‘소라’를 떠나버리기 전까지는 말이죠. 이 때문에 ‘소라’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위해 여러가지 일을 해봅니다.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버리자 ‘소라’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행동의 결과로 사회의 격리가 왔는지,
아니면 스스로 사회로부터 격리되길 원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론 요조라는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립니다.
요조라는 사회에 실망한 것일까요. 반은 맞았지만, 반은 틀렸습니다. 요조라의 언행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사회를 멸시하고 조소합니다.
사회 뿐만 아니라 사람이나 인간관계 자체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자신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회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죠.
그러나 아직까지 진정한 친구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코다카가 전학오기 전까지 요조라는 코다카와의 추억을 위안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친구가 적다 CONNECT 참조)뿐만 아니라 요조라는 에어친구인 ‘토모쨩’을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에어친구, ‘토모쨩’은 요조라가 만들어낸 가장 이상적인 친구입니다. 물론 ‘토모쨩’의 기반이 되는 것인 ‘타카’와의 추억이고 말이죠.
‘타카’가 ‘소라’의 곁을 떠나고,온갖 고난을 겪은 ‘소라’는 진정한 친구는 이제 더이상 현실에선 만들 수 없다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머릿 속에서라도 친구를 만들어놓자는 생각으로 ‘토모쨩’을 만들고, ‘타카’와의 추억을 계속 상기시켰겠죠.
이런 일이 반복되고 심화되면서 ‘소라’는 스스로 벽을 만들어 주변인들의 접근을 불허했을 겁니다.
모순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관계를 원하지만, 관계를 차단합니다. 비록 전자가 ‘타카’와의 관계고, 후자가 ‘사회’ 혹은 ‘세계’지만,
그렇다고 모순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관계는 실이 아니라 그물로 인식됩니다. 얽히고 섥힐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죠.
그 속에서 특정인만의 관계를 고집한다면, 그 특정인의 관계마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모순이죠. 모든 관계가 같다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관계가 얽힐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다카와의 관계를 위해서 만든 이웃사촌부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관계를 이루기위한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죠.요조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코다카와의 관계만을 원했지만,
날파리가 끼어들어 그 관계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본다면,요조라는 코다카를 포함한 부원들과도 관계를 맺었습니다.
투닥거리긴 하더라도 반년 이상을 같이 보냅니다. 이 사실이 요조라가 내재한 본질적은 모순을 심화시킨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조라는 코다카가 자신을 ‘소라’라고 부르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걸까요. 그토록 원하던 관계를 다시 이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었는데 말이죠.
두려웠을까요. 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아니면 ‘타카’가 아닌 ‘코다카’이기 때문에?
코다카와의 재회 후 요조라에게 있어서 더이상 코다카는 더이상 ‘타카’가 아니고 진정한 친구도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100명만큼 소중히 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 1명이기에 소중히 할 수 있는 친구, 인생의 반려자, 즉 연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소라’가 아닌 ‘요조라’,
별명이 아닌 온전한 자신을 불러달라고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핸드폰에는 ‘타카’라고 저장해놓았을 정도로 코다카는 과거 진정한 우정의 대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의 대상이라고도 인식되었다고 한다면,
여태까지 우정이라 생각해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변해버려 혼란이 찾아왔을 겁니다. 흔히 말하는 우정과 사랑과의 갈등이 이 한장면에 나타나있는 것이죠.
요조라의 매력은 본질적입니다. 본질적은 모순. 이 모순을 느낄때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느낍니다.
그리고 요조라의 매력은 은유적입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요조라는 작품이 전개되면 될 수록 해석이 풍부해집니다.
사연이 있는 여자. 그늘이 있는 여자. 단순히 노출도가 심한 수영복을 입는 모습보단, 한밤 중에 분위기 잡고 서있는 모습이 매혹적인 여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매력적인 여자. 그 여자가 요조라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