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엔 젠틀이 그냥 일회용 빌런일 줄 알았는데....
처음엔 젠틀이 일회용의 가벼운 빌런 일 줄 알았는데, 호리코시 코헤이는 일회용 캐릭터를 만들어도 정성 없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잊었었습니다.. 팬으로서 부끄럽습니다.
깊이 있게 보다보니 젠틀과 라 브라바는 세상에서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 과업에 대하여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올포원이 시가라키에게 자신의 다음 대를 이어가게 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바로 그것은 불멸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사실 원포올 계승도 불멸의 의지를 이어가는 모습이기 때문에 작가가 아주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전하고자 여러가지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여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화장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여 자신을 완성하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토가나 라 브라바도 핵심은 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작가가 오랫동안 생각해 왔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캐릭터가 빌런으로서는 젠틀과 라 브라바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음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관계성을 보여 주기 때문에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시 보였습니다. 호리코시 코헤이 만세.
사실 처음에는 스테인과 히어로 브리더로 캐릭터성이 겹치는게 아닌가 식상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다소 젠틀에 대하여 비판적인 생각을 했습니다만 역시 저의 생각을 훨씬 앞서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고 보면 작품내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대한 기대에 부응 하고 싶어서, 사고치는 치사키도 있었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대해 보답하고 싶어서 최고의 히어로가 혹은 최악의 빌런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 이것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히어로를 만들거나 빌런을 만들거나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고 손과 발을 움직여서 그 모습을 만들어 내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서 만들고 싶은 사회의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엔데버를 보면서 느끼는 부분인데 작가가 돌려 말하고 있지만 증오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야쿠자의 대한 시각을 보면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굉장히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작가가 아닐까 느꼈습니다. 작품을 마치는 날까지 진격의 거인처럼 작가가 쓸데없는 실수를 안 했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히로아카는 청소년이 보고 있다면 어른이 되어서 다시 한번 읽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굉장히 이야기가 깊은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야기에 필요한 설정들이 가끔은 불편하고 작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천천히 빼먹지 않고 꾹꾹 눌러 담아서 하는 사람이라 웹툰 보듯이 가볍게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비판을 하더라도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시간을 갖고 여유를 갖고 천천히 히로아카를 즐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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