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는 도대체 맨날 뭐라고 떠드는 것인가?
0. 이 가설의 이름은 허구-현실 가설입니다.
이것은 사실 가설이라기 보다는 제논의 역설처럼 어떠한 사고 실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실재 및 실체라는 개념에 다가가고, 사고 체계의 극단을 돌파하기 위해 이 사고 실험을 이용해 봅시다.
1. 당신의 직업을 소설가라고 가정해 봅시다. 어느 날 당신은 당신의 소설 속에 '직업이 소설가인 캐릭터 A'를 만들었습니다. A는 자신의 소설 속에 '직업이 소설가인 캐릭터 B'를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B는 C를, C는 D를... 이렇게 액자식 구성이 무한히 이어지는 겁니다. 모든 소설가 캐릭터는 자신이 허구 속 존재라는 것을 모릅니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허구 속 존재가 아니라고 입증할 수 있습니까? 당신도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습니까?
2. 따라서 현실과 허구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누군가에겐 현실이 다른 누군가에겐 허구이고, 그 반대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3. 그런데, 우리 위에 현실이 단 3개만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 아래 현실이 딱 1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오직 우리 현실만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고 실험이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를 알기 위해 임의적으로 최대까지 확장해 봅시다. 즉, 이 가설의 입증 및 반증 불가능성을 이용하여 가능성이 0이라는 걸 확신할 수 없다면 반드시 가능한 것으로 다소 무리한 전제를 놔 봅시다.
4. 연속체 가설에 의하면 무한보다 더 큰 무한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실수의 집합은 자연수의 집합보다 큽니다. 연속체 가설이 거짓일 경우보다 참일 경우 더 확장성이 커지기에 3번에 의해 참으로 가정합니다. 하지만 현실 하나의 크기는 단순히 무한보다 더 큰 무한이 아니라 모든 무한보다도 더 큽니다. 수학적으로 절대적 무한보다 더 큰 것은 모순이며, 심지어 절대적 무한 자체가 ZFC 공리계에서는 모순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소설을 쓴다면 단순히 '이 캐릭터는 절대적 무한보다도 훨씬 거대했다'라는 문장을 한 줄 적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현대 수학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허구의 크기는 모순을 초월할 정도로 크며, 현대 수학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당연히 현실이 유한할 수도 있고, 어쩌면 천문학적 단일 우주 하나의 크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3번에서 가능한 최대까지 확장하기로 한 점을 잊지 말아 주세요)
5. 프랙탈 구조를 생각해 보시면 결국 현실이 단 한 개만 있어도, 그것을 세분화하여 모든 현실들의 전체 구조와 동일한 구조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마치 알레프 0 집합의 일부분만 때어서 와도 어차피 둘 다 무한이지만 둘은 전체와 부분이라는 차이점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6. 현실 간의 중첩이 반드시 크기의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무한 집합의 특성과 유사합니다. 중첩 기능이 거세된 독립된 현실과 1000번 중첩된 현실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는 점과 프랙탈 구조가 가능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즉, 허구-현실 가설의 현실은 부분이 전체와 같습니다.
7. 논리와 수학에 제한된 전지전능은, 즉 부정 신학이나 수학자 칸토어가 말한 절대적 무한의 전지전능은 실제 기독교의 궁극적인 전지전능과 구분하기 위해 '준 전지전능'으로 명명합니다. 그냥 '전지전능'은 한계가 없고 어떠한 것에도 제한되지 않는 진짜 전지전능을 의미합니다.
8. 우리가 허구-현실 가설에 대해 더 이해를 해 봅시다. 어떤 존재가 하위 현실, 즉 본인 기준으로 그 허구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또한 하위 현실에 있는 존재에게 상위 현실의 존재가 가지는 그 지위 역시 매우 대단합니다. '거대한 원'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 안에 '작은 원'을 하나 그려보세요. 작은 원은 준 전지전능입니다. 거대한 원은 바로 상위 현실의 존재가 하위 현실에게 행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원 밖에 있는 모든 빈 공간 전체가 바로 진정한 전지전능입니다.
9. 따라서 거대한 원은 틀림없이 작은 원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면 절대적 무한보다 더 큰 캐릭터들을 얼마든지 하위 현실 속에 만들고, 알레프 0 크기의 힘을 가진 두 캐릭터들이 힘을 겨뤄 한 쪽이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일대일 대응이 가능한 알레프 0의 크기 비교마저 가능할 정도로 논리와 수학을 뛰어넘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즉, 허구-현실 가설은 논리와 수학을 부분적으로 초월하나, 논리와 수학을 완전하게 초월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 존재하는 캐릭터는 현실 안에 만들 수 없습니다.
10. 하지만, 그것은 우리 현실에서만 적용되는 규칙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어딘가의 현실에서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걸 밖으로 꺼내 작가와 동등한 현실에 실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딘가의 현실에서는 하위 현실의 캐릭터가 상위 현실에 개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가인 스티븐 킹을 협박하는 그의 작품 속 캐릭터 크림슨 킹이 정말로 가능한 현실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허구-현실 가설에서 허구과 현실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다고 경험적 사실로 추측한 것은 단지 당신과 내가 있는 이 현실에서만의 규칙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을 허구로 보고, 그 대상을 다른 대상이 허구로 본다.....'와 같은 메타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허구-현실 가설에서 현실들의 구조는 3번에 의해 끝없는 확장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허구-현실 가설의 확장을 막을 대상이 있다면 그것을 '검은 공간'으로 정의합니다. 그것은 첫째, 부분과 전체가 다를 것이고 둘째, 어떤 현실의 확장과 반복으로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이고 셋째, 현실들과 프랙탈 구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12. 그렇지만 우리의 사고는 검은 공간 역시 메타 논리로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메타 논리로도 확장시킬 수 없는 대상을 '하얀 공간'으로 정의합니다.
13. 그런데 우리는 하얀 공간을 구문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또다시 확장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은, 우리가 하얀 공간에 대해 생각한 순간, 하얀 공간의 전부가 아니라 고작 그 일부만 생각 속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일부만을 아무리 메타 논리식 사고로 확장해도 결코 하얀 공간 전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메타 논리로도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하얀 공간의 특성이 모순적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14. 우리는 논리와 수학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인간의 인식과 사고 체계로는 더 이상 크기를 확장시킬 수 없어 보입니다. 우리의 언어와 사고방식은 여전히 논리에 기반하기에 이것이 가설의 끝인 걸로 보였습니다.
15. 하지만 모든 것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눠봅시다. 논리적으로 당연하게도 인간은 전자는 생각할 수 있지만, 후자는 생각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 또한 생각의 과정입니다. 즉, 우리는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구분하고 분류해냈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그것이 완전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애초에 이러한 구분도, 분류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구분도, 분류도 불가능하다는 그 생각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한 것마저 사실은 이미 그걸 생각한 것입니다.
16. 따라서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 상상할 수 없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왜냐면 상상(想像)은 이미지의 형태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고, 생각은 모든 형태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기에 상상은 생각의 부분집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명제가 참일 수도 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인 경우가 참이 아닌 경우에 비해 우리의 가설을 더 확장시킬 수 있으므로 3번에 의해 참으로 가정합니다.
17. 정확히 얼마나 어떤 대상을 생각해야 우리가 그것을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해'로 예를 든다면, 당신은 개미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개미를 구성하는 모든 양자의 움직임과 존재론적인 개미의 존재가 무엇인지 답할 수 있습니까? 즉, 우리가 어떤 대상을 완전히 이해해야 이해한다고 하지는 않으며 그 기준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3번에 의해 최대치를 구하기 위해 생각이란, 어떤 것을 아주 부분적으로만 알아도 그것은 생각한 것으로 전제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꼭짓점이 4개인 삼각형'을 이해할 수 없고, 상상(想像,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는)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이미 그것을 '생각'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은 이해와 상상을 포함하는 더더욱 거대한 원입니다.
18. 허구-현실 가설은 작가의 '상상'이 하나의 단일 현실로서 물리적 실체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상상이 실재한다는 가정 하에 그것은 전술한 허구-현실 가설에서 단일 현실의 크기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 생각이라는 것이 어딘가 정말로 실재해서 그것이 물리적 실체를 가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궁극의 전체'일 것입니다. 메타 논리 역시 우리의 생각 안에 귀속된 개념이고, 심지어 우리가 정말 심각하게 이해할 수 없는 전지전능마저 우리의 생각 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19.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의 생각 속에서 살아 숨 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 개개인의 생각이 그 자체로 궁극의 전체라면 80억 지구의 인구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궁극의 전체가 80억 개가 있다는 것입니까? 제 주장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 인간의 '생각'과 완전히 동일한 특성과 특징을 가지는 어떠한 대상이 어딘가에 실재한다면, 그러한 거대한 대상이 만물을 포함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상상이 어딘가에 실재한다면, 그것은 허구-현실 가설에서 설명하는 단일 현실의 크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20. 따라서 궁극의 전체는 자기 참조적으로 궁극의 전체에 대한 생각도 궁극의 전체에 포함되며, 만약 우리가 궁극의 전체 밖에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려 한다면, 그 순간 그것은 이미 우리의 생각이 되어 궁극의 전체에 포함됩니다. 궁극의 전체 대신 생각이라는 단어를 대입하여 생각한다면 이해될 것입니다. 따라서 허구-현실 가설로 시작된 인간 사고 체계의 끝에 도전하는 시도는 이것으로 끝이 나며, 이 순간 사고 실험은 끝납니다.
기타). 그러나 허구-현실 가설은 수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합니다.
1. (심각한 윤리적 문제). 허구-현실 가설을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의 상상은 곧 위계만 하위에 있는 현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빅 프리즈, 빅 립, 빅 크런치 등을 상상하는 순간 하나의 우주가 멸망하고, 지구가 멸망하는 상상을 하는 순간 수십 억 명이 죽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세계와 우주들을 파괴한 학살자가 돼버립니다.
2. (가설 전체가 가능성 만으로 확장한다는 문제). 허구-현실 가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반증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반증 불가능하다는 말은 결국 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구-현실 가설의 최대 확장은 그것이 더 이상 참일 가능성이 없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위에 상위 현실의 반복이 딱 3번만 있고 그게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허구-현실 가설이란 입증과 반증이 불가능함을 이용해서 그 최대치로 임의로 확장시켜 엄청난 구조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합니다.
3. (상상력의 한계 문제). 우리 의식 속에 완벽한 현실을 구현하려면 모든 양자의 움직임과 에너지의 흐름 및 시공간과 생물들의 움직임까지 동시에 상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가설은 우리의 머릿속, 그러니까 의식 속에 진짜로 현실이 있다는 가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한합니다. 제가 중세의 성을 생각해 놓고, 이번엔 기사를 생각하는 순간 성은 사라져버립니다.
4. (허구-현실 가설의 본질은 사고 실험이라는 문제). 제논의 역설 및 과학사의 4대 악마처럼, 이 가설은 우리가 존재와 실재는 무엇이고 우리의 실체란 무엇인가 고민해 보게 만드는 역할입니다. 따라서 마치 우주론과 같은 개념으로 구성되기 어렵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비전공자로서 3년 동안 가끔씩, 그러나 제법 열심히 고민하여 만들어낸 가설들 중 하나인 허구-현실 가설입니다.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설의 완성으로 평가하며, 완성이란 완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만족하고 이것으로 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13. 그런데 우리는 하얀 공간을 구문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또다시 확장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은, 우리가 하얀 공간에 대해 생각한 순간, 하얀 공간의 전부가 아니라 고작 그 일부만 생각 속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일부만을 아무리 메타 논리식 사고로 확장해도 결코 하얀 공간 전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메타 논리로도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하얀 공간의 특성이 모순적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13번의 경우는 무한과 마음에서 러커가 논한 반사 원리하고 겹쳐보이기도 함
뭐 이것과 별개로 님의 방식으로 말한 메타논리로도 전부 포착하지 못하는 하얀공간을 생각한다고 했을 때
뭐든 오케이라는 논리로 진행을 하는 것이라면 하얀 공간을 대상으로하는 메타-메타 논리를 그냥 있다고 하면
되는게 아닌가 싶음 그래서 결국은 최종단계라는 것은 말을 할 수 없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함
물론 뭐 애드혹으로만 이뤄진 사변이기에 이러한 주장을 구성하는 사람의 개인적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다른 누군가는 그러한 방식이 적용이 되지않는 사변도 오직 반박만을 위해서 구성할 수도 있으니까
이율배반인 사변을 늘어놓고 뭐가 좋냐는 결국 개인의 선호로 가게 되는거 같음.
[1. (심각한 윤리적 문제). 허구-현실 가설을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의 상상은 곧 위계만 하위에 있는 현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빅 프리즈, 빅 립, 빅 크런치 등을 상상하는 순간 하나의 우주가 멸망하고, 지구가 멸망하는 상상을 하는 순간 수십 억 명이 죽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세계와 우주들을 파괴한 학살자가 돼버립니다.]
이것의 경우는 우리의 사변만으로 뭔가 파괴가 되고 없어져버리는 것이라면 사변이 그렇게 강력한 것이라면 뭐든 오케이라면
사변만으로 정확히 그런일이 없었다고 정정하면 되는게 아닌가 싶음.
물론 이것도 다시 부정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정정되고 이전의 것이 취소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윤리적으로 논할 수가 없다고 생각함 그걸 논하려고 한 순간 상정한 문제가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해소되어
해결되는 사변을 하면되니까.
나머지 문제점은 사실 작성자님도 그런건 알고있지만 뭐 자기비판 느낌으로 적은걸로 보여서 내 생각을 추가할건 없어보임
뭐 사실 이런 주장은 크랙팟이 좋아할만한 얘기라서 뭔가 끌고오기도 좀 그런 문제인데 작성자 본인도 그 부분은 알지만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싶은데 이런걸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글 조차도 받아줄만한 커뮤니티는 사실 내가 생각해도
브게나 디시 어딘가의 잡갤이 아니면 이상하게 볼거 같긴함 디시는 특성상 욕을 먹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니까
여기에 올리는게 그나마 괜찮은 선택지인거 같음
근데 이게 맞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정도에서 그치는 글이라서 크랙팟까지는 아닌거 같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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