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은 의자 - 박금숙
걷다가 지치면
너 나 없이 한 번쯤
등 붙였을 긴 의자 하나
나무 밑에서 굵은 빗방울을
뚝뚝 맞고 있다
젖은 제 무게에
푹 꺼지고 싶기도 하련만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주저앉기도 쉽지 않아
짓무른 땅에도
네 발 단단히 지탱하고 서 있다
누군가 우산을 받쳐들고
앉을 듯도 하여
다시 내다보면
구정물 튈세라 흘끔흘끔
비켜가는 차가운 발걸음뿐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면
다투어 차지할 자리에
물총까지 쏘고 달아나는
자동차 안의 의자들은
제법 의기양양
경적조차 요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