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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행(上行) - 김광규
조커 | L:45/A: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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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184 | 작성일 2021-08-25 18: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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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행(上行) - 김광규

상 행(上行)
                                                                              - 김광규 -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으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반달곰에게>(1981)-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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