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키는 자신의 의지로 싸운것일까 - 下
* 오타주의
* 비문주의
* 스크롤과 네타주의
* 사진이 많은 관계로 上편과 下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글은 카네키는 자신의 의지로 싸운것일까 - 上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카네키의 심리와 태도변화와
1부의 결말은 카네키의 의지였던 것일까에 대한 의문
카네키를 위로하기 위해서 특별하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지만 이로인해서
카네키에겐 어떠한 사명감 같은 걸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야모리의 고문 후 드디어 자신이 어떤일을 해야할지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카네키에게 다시 망설임을 주게 되었습니다.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었던 카네키는 양쪽을 택하기 위해서 상당히 말도안되는 선택을 해버립니다.
자신이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이미 안테이크로 돌아오겠다고 마음 먹은 그순간부터
안테이크의 점장과 코마, 이리미를 버릴 수 없었던 거죠. 그러나 요시무라는 다릅니다.
10년 전에도 이미 아이를 보호했고
자신과 자신의 아이 중 아이를 택했습니다. 요시무라는 언제나 자신의 아이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전 리제의 환영이말 한 것 처럼 한쪽을 버리더라도 뭔가를 지켜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카네키에게도 요시무라에게도 자신의 목숨을 받쳐서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사람들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일겁니다. 그러나 요시무라가 안테이크를 만들면서 자신 주변의 소중한 이들로 채웠지만 가장 핵심은 자신의 아이인 에토를 위해서 혹은 기다리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에토가 CCG나 조직V에 의해 사라지더라도 안테이크는 여전히 소중한 이들로 가득하겠지만 정작 요시무라에게는 진정한 안테이크의 의미가 없어지는것이 겠지요. 요시무라는 선택 무게와 소중한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시무라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 계획에 안테이크 식구들을 이용할 선택을 했다면 카네키는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남은 안테이크 식구들을 버릴 각오가 없었고 결국 선택할 수 없어서 안테이크전에 참가한 것이 됩니다. 야모리 때에서도 카네키는 선택할 수 없어서 결국 두 명다 죽어버리는 야모리의 결정으로 선택되었지요. 결론적으로, 카네키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요시무라의 계획인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결정에 선택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분재에 대한 비유처럼 카네키는 요시무라나 카노우에게 자신이 하고싶은 바를 말하고 스스로가 판단하고 알아내서 도달한 의문으로 의문과 반감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여 도움받지 않고도 스스로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사실 누군가 계획한 길 위를 달려가는 것입니다. 카네키의 비극은 카네키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선택할 수 없게 요시무라가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상황도 그렇게 따라준 것은 사실이나 카네키의 어머니가 본의아니더라도 남에게 상처주는 사람이 아닌 상처받는 사람이 되란 말에 갇혀서 이모의 집에서 정신적인 학대를 받으면서도 어머니의 강요아닌 강요라는 바람을 지키고, 야모리의 고문에 벗어날때 조차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나섰던 것처럼, 학예회 때 아이들의 떠밀림이지만 연극을 잘 끝낸 것처럼 카네키는 요시무라의 말하지 않은 바람이자 떠밀림에 선택 된 것 같습니다.
카네키는 정말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달려온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도쿄구울 1부의 막이 내릴 때까지 자신의 아이인 에토를 지키기 위한 요시무라씨의 새장 속에 있었던 걸까요.
+번외 1
아오기리나무가 부수고 있는 세상의 균형과
요시무라의 아내인 우키나가 쫓던 조직의 비밀은 무엇이고 균형은 무엇일까요
요시무라가 부정적으로 여겼던 토우카가 하고자했던 감정에 치우친 복수와는 다르게
복수보다는 그저 슬플뿐이었던 히나미. 누나의 아이이자 자신의 조카를 보고 복수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요모의 모습에서 본다면 요시무라는 그저 자신의 아이를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발버둥친다고 말했고
카노우가 잡종강새가 필요하단 말처럼
요시무라는 인간과 구울 둘다를 알 수 있는 척안의 구울인 카네키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시무라는 우키나와 자신의 기적이자 희망인, 자신의 아이를 보호해왔고 복수를 원해서 보다는
카네키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본 것처럼 이 세상을 바꿀 무언가 변화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요
+ 번외 2.
과거의 에토와 요시무라의 카쿠자 동일인물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합니다.
현재 요시무라의 카쿠자
현재의 에토의 카쿠자
10년 전에 외형이 비슷해 착각하고 헷갈려하는 것이 아니라 확연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변했습니다.
그때의 닮은 모습이 10년 전 요시무라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모습을 비슷하게 했다고 치더라도 현재 요시무라와 에토의 카쿠자 모습이 완전히 다른데 이러한 외모변화는 에토와 요시무라의 부녀관계에서 단절과 독립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 번외 3 : 아오기리 나무의 상징에 대해서
아오기리 나무(アオギリの樹)를 단어로만 본다면 벽오동나무를 뜻합니다.
그리고 아오기리 나무의 상징은 어떠한 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벽오동나무에 관련된 새의 설화나 전설에는 봉황이 있는데요 봉황은 예로부터 여러 문헌에서 등장하는데 중국 고전(古傳) 설화에 따르면 봉황은 벽오동나무에 둥지를 틀며 태평성대를 이룰 성군이나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상상의 새입니다.
呻吟語중에는 神龍不貪香餌(신용불탐향이) 彩鳳不入雕籠(채봉불입조롱)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용은 배가 고파도 아무 먹이나 먹지 않고, 봉황은 인간이 만든 새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작 중에 나왔던 아오기리 나무의 목적은
'구울'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봉기하는 '왕'과 '거짓말쟁이'를 밝혀낸다는 것입니다.
위의 봉황과 관련된 설화를 아오기리 나무와 관련지어 생각한다면 아오기리 나무는 봉황의 벽오동나무이며, 아오기리 나무의 조직원들은 봉황, 그리고 그들이 따르는 존재이자 아오기리 나무의 목적은 성군 혹은 성인의 등장과 태평성대. 즉 이미 작중에 언급된 만들어진 새장인 이 세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 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닐까요.
참조 : 봉황에 관련된 언급이 나오는 중국 문헌
이아(爾雅) 석조(釋鳥)
순자(荀子)의 애공편(哀公篇)
장자(莊子)의 추수(秋水)편
---
번외는 좀 다른이야기이긴합니다만 아오기리와 관련됐다고 생각되서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