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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리 데이즈 전체 번역_5장~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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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614 | 작성일 2020-10-22 0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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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리 데이즈 전체 번역_5장~9장

5

 

22층의 전이게이트에서 빠져 나오자, 정확히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한가롭게 울려퍼졌다.

코랄마을의 중앙광장은 여전히 한산해서 우리들 이외의 플레이어는 눈에 띄지 않았다. 3층의 줌프트 광장에도 플레이어는 없었지만, 이 광장은 NPC도 걷고 있지 않았기에 아무리 봐도 주거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 여기에는 분명 옛 친구랑 목재를 모으러 왔었지요. 벌써 1년 정도 지난 일이지만."

 

나와 아스나를 따라 광장의 포석을 밟은 마호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체크하면서도 추억을 말하는 듯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질 좋은 나무를 많이 채집하는 바람에 스토리지가 가득차버려서, NPC삽의 한 구석을 빌려 테이블을 만들었죠. 그걸 그대로 위탁해버리고 장부에 기입하지 않았었네요."

 

"...그렇다는 건, 1년전에 이미 그 정도의 퀄리티의 테이블을 만들 수 있었다는 건가요?"

 

아스나가 놀란듯이 묻자, 소용돌이 안경을 쓴 장인은 씩하고 웃엇다.

 

"뭐, 그렇게 되겠네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때 이후로 스킬을 완전습득 하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는 말이 되겠네요. 자, 가게로 가죠."

 

셋이서 NPC 가구점으로 이동하자, 문제의 호두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테이블, 무려 70만콜이나 되는 녀석은 어제와 똑같이 가게 안쪽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총총총 다가간 제작자는, 오른손의 장갑을 벗더니 상판의 표면을 살짝 만졌다. "그럭저럭 쓸만한 제품이네요."라고 중얼거리더니 테이블의 표면을 탭하였다.

탭해서 나타난 제작자 전용의 윈도우에서 <위탁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마호클을 내가 순간적으로 제지했다.

 

"저기, 자, 잠깐만요!"

 

"...뭐죠?"

 

"그 테이블, 이제 판매종료하시려구요?"

 

"맞아요, 이유는 아까 얘기한 대로입니다."

 

"그, 그렇겠네요..."

 

줌프트의 공방에서 마호클에게 들은 은둔의 이유는 실로 타당했다. 그녀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당분간 장사를 접고 몸을 숨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이 테이블 한 개 때문에 나와 아스나가 그녀의 공방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 <생쥐> 아르고의 기가막힌 정보력 덕분이었지만.

하지만, 어제 이 테이블을 발견했을때의 아스나의 표정을 다시 떠올리자 깔끔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 가구의 값인 70만콜을 턱하고 지불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

결혼 3일만에 <남편의 자부심> 같은것을 시험 하는 것 같은 이 상황에 끙끙거리고 있자, 아스나가 쿡 하고 웃더니 내 어깨를 가볍게 톡 쳤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더니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고마워, 키리토군. 그치만 그 마음이면 충분해."

 

"으, 응, 하지만..."

 

"언제고 나중에 돈이 다시 모이면, 또 사러 오면 되잖아."

 

"으, 으으으으......"

 

우리가 얘기하는 모습을 두꺼운 렌즈너머로 바라보고 있던 마호클이, 재차 빙긋하며 웃었다.

 

"두 분."

 

"네... 네?"

 

"이 테이블, 90% 할인해서 팔아드릴 수 있는데요."

 

"하.... 구.... --에, 에에!? 90% 할인이요!?"

 

놀라서 피용 하고 점프하는 나에게, 마호클은 오른손의 손가락을 쉭 하며 내밀었다.

 

"물론, 주문하셨던 흔들의자도 제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 그렇겠죠.... .....그래서 어떤...?"

 

"제가 지정한 재료아이템을 모두 모아주시는 경우에, 입니다!"

 

 

 

판매하기로 약속이 된 테이블을 일단 회수하고, 전이문에서 3층으로 돌아가는 마호클을 배웅한 나와 아스나는, 목공세공사가 전해준 작은 양피지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양피지에는, 다섯가지의 재료 아이템이 열거되어 있었다. 어느것이듯 꽤 레어한 아이템이었지만, 문제는 그 이외의 곳에 있다.

 

"....이것들, 아마도 발리스타의 재료겠지...?"

 

아스나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에. 하지만, 어째설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전의 공방을 그만두고, 3층에 숨어있는 걸텐데..."

 

"으-음.... - 뭐, 일단 우리도 집에 돌아가서 밥이나 먹을까."

 

아내의 그 말에 잊고있었던 공복감이 돌아와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응'이라고 대답했다.

마을에서 식재료를 사 들고, 호숫가의 오솔길을 걸어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아스나가 집 앞에서 결혼했던 일이 10월 24일 오후 5시 지나서였고, 지금은 26일 오후 1시이므로, 실제로는 아직 이틀도 지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언덕 너머로 소박한 굴뚝이 달린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가슴 속에 꾹 하고 단단히 조여지면서 향수 같은것이 느껴졌다. 아스나도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집이 있다는 건, 좋네."

 

중얼거리는 아스나의 어깨를 안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대답했다.

 

"응. 어쩐지 <플레이어 홈> 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서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응.... 우리 둘만의, 집인걸."

 

그렇게 말하고 나를 보는 아스나의 얼굴은 평온해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강하게 애태우는 듯한 표정이어서 나는 참지 못하고 그 뺨에 왼손을 살며시 가져다 대고, 입술을 맞췄다. 키스를 하는 동안, 아스나가 입술의 움직임으로 [좋아해]라고 말했다.

아침에 둘이 함께 나와서 다양한 장소에 가 보고, 둘이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저 그것 뿐이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기쁘고,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좋아해.... 엄청 좋아해, 키리토군..."

 

애태우는 듯 속삭이는 아스나의 가녀린 몸을 있는 힘껏 강하게 껴안으면서, 나도 같은말을 속삭였다.

 

 

 

생햄과 치즈, 양상추를 사이에 끼운 검은 빵에 계란 후라이를 얹은 크로크마담(*샌드위치 한 종류라고 합니다*)을 점심으로 먹고난 뒤, 내 셔츠에 달려 있는 가슴 주머니에서 양피지에 쓴 메모를 꺼냈다.

나열되어 있는 재료 아이템명과 수량은 위에서부터

-소리다이트 잉곳 30개

-아큐타이트 잉곳 20개

-오래된 티크(*나무 이름*) 10개

-그레이트 록 드래곤의 힘줄 8개

-환상의 곰기름 9개

라고 되어있다. 위 쪽 두개는 레어한 금속, 중간의 이것도 아마 레어한 목재 일 것이고, 네 번째는 동굴에 사는 드래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소재. 그리고 다섯번째는 - 무척 그리운 이름의 아이템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잔을 두 개 가져온 아스나가, 내 옆에 앉아서 내가 손에 든 것을 들여다보았다.

 

"...마지막 아이템은, 그거지... 4층의..."

 

"맞아. 설마, 그 불을 내뿜는 곰이랑 다시 싸우게 될 줄은..."

 

커피컵에 입을 가져가면서, 잠시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환상의 곰기름>은, 호수와 수로의 플로어로 이루어진 제 4층을 이동하는데 필요한 곤돌라를 만드는데 필요한 레어 소재다. 화염 브레스를 내뿜는 거대한 곰 <마그나테리움>이 드랍하는 소재지만, 처음에 도전했을때 꽤나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레벨 15 언저리였던 그 때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내 레벨은 90을 넘어섰다. 당시에는 그렇게나 두려워했던 마그나테리움도 아마 소드스킬 한 방에 잡을 수 있을 테지만, 그건 그것대로 허전한 기분이 든다.

역시 불을 내뿜는 곰과 싸우는건 그만두고, 플레이어 거래를 통해서 입수할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아스나가 '으-음'거리며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왜그래?"

 

"나도, 이 테이블을 90% 할인해서 살 수 있는건 기쁘지만... 정말로 이 소재들을 모아도 좋은걸까, 싶어서..."

 

"으-음."

 

하고, 이번엔 내가 신음소리를 냈다.

마호클의 행동에는 이상한 모순이 있다. 왜냐면 그녀는 상층에 있던 자신의 공방을 그만두고, 훨씬 아래층의 줌프트로 이주한 이유로 '자신이 발견한 콤퍼지션 무기인 <발리스타>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대전제로서, SAO에는 <비행도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판타지 RPG에서는 필수적 요소인 마법은 물론이며, 활과 화살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 이유는, 게임에서 슈팅요소를 제거해 아바타를 통한 전투를 플레이어가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라는 게임 디자인상의 이유가 있는것 같지만, 일단은 게임내 세계관도 이치에 맞게 설정되어 있다.

전해지기를 - 아득히 먼 옛날에, 인간과 엘프, 드워프는 대지에 각각의 왕국을 세우고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대지절단>이라 불리는 천변지이가 발생하여 모든 왕국의 수도뿐 아니라 수많은 도시와 마을들이 대지에서 원형으로 잘려나가 층층이 쌓이더니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성이 되었다. 이후, 모든 마법의 힘은 소실되었으며, 활에서 쏘아져 나간 화살은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들에게 이 전설을 가르쳐준 다크 엘프 기사에 대한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만약에 발리스타가 진짜여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대단할 것 같아. 미궁구역에 있는 보스방에 가지고 갈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필스 보스 공략전이나 그 외에는 완전히 바뀔거라고 생각해. 그런만큼, 마호클의 불안함도 이해할 수는 있어. 지금, 발리스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그녀뿐이라는 사실을 공략조의 성룡연합(DDA), 아니면 <군>에서 알게 되몀 분명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테니까.

 

"그러게... 그 녀석들은 [게임 공략을 위해서라면 PK이외에는 무엇이든 허용한다]는 말이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가택연금 같은걸 벌일지도 몰라."

 

약간이지만 혈맹기사단 부단장의 얼굴로 돌아온 아스나가 심각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품질의 가구제작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마호클로서는,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아 발리스타라는 무기, 아니, 병기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몸을 숨긴다는 선택을 한 그녀를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허나, 그렇다면 왜, 그녀는 우리에게 발리스타에 대한 것을 말한 것일까?

그리고 왜 발리스타의 재료로 보이는 레어 소재를 수집해 오라는 교환조건을 내건 것일까?

 

"......어떻게 할래, 키리토군?"

 

아스나의 물음에 나는 십 초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대답했다.

 

"해 보자. 테이블을 원해서가 아니야.... 분명, 마호클에게도 뭔가 생각이 있을거야. 위험한 일이 될 것 같으면, 그 때 멈춰도 될 거야."

 

"....응, 알겠어. 그럼 준비할게."

 

내 대답에 수긍하며 일어선 아스나는, 오른손을 휙 흔들어 윈도우를 꺼냈다.

장비 피규어를 톡톡 조작하자 수수한 스웨터와 스커트가 순백에 진홍색이 들어간 기사복으로 바뀌었다. 겨우 이틀동안 못 봤을 뿐인데, 그 모습은 깜짝 놀랄만큼 아름답고, 늠름하고, 매력적이었다.

미니스커트의 끝자락을 살짝 펄럭이며 뒤돌아서서

 

"키리토군도, 빨리 갈아..."

 

라고 말하는 아스나의 몸에 양손을 뻗어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앗, 잠깐만, 안돼. 이제 아이템 수집하러..."

 

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는 세검사(펜서)의 목덜미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다대고 속삭였다.

 

"괜찮아, 그 정도라면 세 시간안에 모을 수 있어."

 

"정말, 뭐가 괜찮다는거... 응...."

 

움찔, 하고 몸을 떨면서 내뱉는 아스나의 숨결이 조금씩 뜨거워졌다.

 

 

 

 

6

 

아인크라드 제 4층, 주거구 로비아

남유럽풍의 우아한 거리를 맑은 물로 가득 찬 수로가 가로세로로 연결하고 있는 <물의 도시>는, 전이문이 개통 된 이후 잠시동안 제일 가는 인기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로 붐볐었다. NPC 뱃사공이 조종하는 곤돌라를 타는 장소는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서, 화창한 날이 되면 그 날 오후에는 메인 수로가 정체되는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들도 이제는 모두 옛날의 일-.

나와 아스나가 발을 디딘 전이문 광장에, 플레이어들의 모습은 거의 없었다. 물의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도 61층의 주거구 셀름부르그에 빼앗긴 것 처럼 느껴지는 지금에는, 그저 이동하기 어려운 도시가 된 건지도 모른다. 도시에 사람이 너무나도 적어서 꽤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오전에 방문했던 3층의 줌프트 거리도 한적했지만, 이곳에서 한층 더 커다란 적막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조금, 춥네."

 

이런 말을 하면서 아스나가 내민 손을, 단단히 잡았다. 오늘이 2024년 10월 26일, 그리고 나와 아스나가 이 마을의 전이문을 액티베이트(활성화)시켰을 때가 2022년 12월 21일이었으니 그때가 기온이 더 낮았을 텐데도 그다지 추웠다는 기억은 없다. 게다가 그 때 우리는 왕복 계단의 출구에서 이 거리까지 튜브에 몸을 의지해 강을 헤엄쳐 이동했었다. 그런데 아직 10월 말인 오늘, 이만큼이나 늦가을의 추위가 느껴지는 것은 그저 2년 사이에 아인크라드가 한냉화가 진행되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살풍경하고 썰렁한 광경 때문일까 - 그것도 아니면, 아직도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 어떤 슬픈 추억 때문일까.

아스나의 손을 꽉 잡은채, 다시 한 번 광장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기대하고 있던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플레이어 노점, 하나도 안 나와 있네..."

 

내가 중얼거리자 아스나도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옛날에는, 곤돌라의 재료를 파는 노점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는데."

 

"곤돌라를 위층의 셀름부르그까지 옮길수 있었으면, 그 완고한 조선공 영감도 아직까지 장사가 번창하고 있었을테지."

 

내 코멘트에, 아스나가 도시의 북서쪽 블록을 살짝 바라보았다. 아마도, 조선공 NPC인 로몰로 노인의 공방을 다시 들러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노점이 없으니까, 자력으로 드롭 시켜서 얻는 수 밖에 없겠네."

 

"아아... 그러게. 오랜만에 불을 내뿜는 곰의 얼굴이나 보러 가볼까."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광장 서쪽에 있는 선착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아스나가 이 곳, 4층까지 내려온 이유는, 그랜드 마스터 목공 세공사인 마호클에게서 여러 소재 아이템을 모아달라는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소재 리스트에는, 곤돌라의 재료가 되는 <환상의 곰기름> 8개가 들어 있었으나, 플레이어간의 거래로 입수 할 수 없다면, 아스나가 말한대로 자력으로 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정방형의 전이문 광장의 동서남북에는 각각 선착장이 마련되어 있다. 북쪽과 남쪽의 선착장은 NPC 뱃사공의 합승 곤돌라 전용, 동쪽과 서쪽의 선착장은 플레이어 소유의 곤돌라 전용이다.

4층의 공략이 진행되던 무렵에는 동서의 선착장 모두 당시의 2대 길드 -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공략조>라는 말도 없었던 것이다. - 가 건조한 대형 선박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는 몇척인가가 잔물결을 타고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나와 아스나는 서쪽 선착장의 북쪽 가장자리에 홀로 계류되어 있는 소형 곤돌라 앞에서 발을 멈췄다.

아이보리 화이트와 포레스트 그린이 나눠서 칠해진 선체는, 예전에 해상전투에서 받은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지만, 지금도 보석처럼 아름답다.

흔들흔들 거리며 수면의 반사된 빛을 받아 빛나는 선체에는, [Tilnel]이라는 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와 아스나가 재작년에 열심히 노력해 소재를 모아서, 로몰로 노인에 의해 건조된 애선 틸넬 호.

플로어를 공략하고 나서 한동안은 4층 남부 호수에 위치한 다크엘프의 요새인 <요펠성>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아름답던 그 성도 지금에 와서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됐다. 성의 아이들을 틸넬호에 태우고 호수에서 뱃놀이를 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추억을 떠올린 것을 계기로 압도적인 안타까움이 격렬하고 세게 가슴을 조여왔다.

 

"......"

 

옆에 서 있던 아스나가 갑자기 빙글하며 몸을 돌리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겉옷 안에 있는 천을 조그마한 두 손으로 꽉 쥐고, 어깨를 부르르 떠는 세검사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잠시후, 내 귓가에 숨죽인 목소리가 울렸다.

 

"...미안해... 이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직, 괴로워..."

 

"아니... 나도 마찬가지야.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해. 여기에는 오지 않는편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

 

속삭여 주듯이 대답하자, 내 어깨에 기댄 아스나의 머리가 작게 좌우로 움직였다.

 

"아니... 이 통증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는게 조금은 기쁘다는 생각도 들어... - 그치만, 만약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더......"

 

아스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은것인지는 내 마음에 확실히 전해졌다.

나와 아스나는 제 1층의 미궁구에서 만났고, 그 뒤는 거의 우연이긴 하지만, 꽤 오랜 기간을 콤비로 지냈었다. 특히, 아래쪽 플로어를 무대로 펼쳐진 <엘프전쟁 캠페인 퀘스트>에 우리 둘이서 도전한 것은, 데스게임 초기의 가장 강렬한 기억이자 추억으로 남아있다. 틸넬호에 있던 상처들도 그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생긴 것이다.

그 당시의 나와 아스나는, 설령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해도, 고집스럽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는 콤비에, 자주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내 쪽에서 아스나에게 이런 저런 장난을 걸었다가 아스나가 던지는 다양한 물건들에 맞기도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엘프전쟁 퀘스트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들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슬픔을 떠안게 되었다. - 결국 그것이, 아스나가 <혈맹기사단>에 들어가고, 그리고 내가 다시 방황하는 불량한 솔로플레이어로 갈라지는 원인이 되었다.

 

-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더 캠페인 퀘스트를 시작하고 싶어.

 

아스나는 그리 말하려 했을 것이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데스게임 시작 직후부터 죽은 플레이어의 수를 제로로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이 대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해 나와 아스나가 만나는 일이 없던 일로 된다고 해도

 

"........최전선에 돌아가면 게임 클리어를 위해 다시 최선을 다 하자. 키즈멜도 분명 그걸 바라고 있을거야..."

 

내 말에 아스나는 작게 흐느끼면서도, 제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2인승 곤돌라 틸넬호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이 경쾌하게 수로를 미끄러지며 나아갔다. 남쪽의 수문을 이용해 도시를 나와서, 큰 강을 따라 잠시 이동해서, 불을 내뿜는 네임드 몬스터 <마그나테리움>이 서식하는 숲에 상륙했다.

3층 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한 고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숲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밝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숲의 대부분의 나무가 옹이 투성이인 활엽수여서, 침엽수가 대부분인 22층의 숲과는 다른, 나름대로의 정취가 느껴진다.

 

"그럼, 곰씨는 어디에 있으려나..."

 

하며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면서 이끼가 낀 지면을 느긋하게 걸었다. 예전의 이 숲은 마그나테리움 쟁탈로 인해 살벌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우리 이외에 다른 플레이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곰을 발견하기만 하면 느긋하게 사냥 할 수 있을 것이다.

- 라고 생각 했는데.

 

"저어, 키리토군...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오랜만에 항해를 해서 약간은 활기를 되찾은 듯한 아스나가, 양쪽 귀 뒤에 손을 가져다 댔다. 현실세계에서라면 그다지 효과가 없는 행동이지만, SAO에서는 명확하게 청력을 증폭시켜 준다. 나도 아스나와 똑같이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몇 초 후, 분명 플레이어의 함성 소리로 생각되는 아주 희미한 소리가 청각을 자극했다.

 

"- 이쪽이다!"

 

아스나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숲의 북동쪽 방향으로 달려갔다.

지면 군데군데에 물이 솟아나는 깊은 샘이 존재해서, 예전에는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우회해야 했지만, 지금의 우리들이라면 가볍게 뛰어 넘을 수 있다. 때로는 나무 줄기를 발판으로 이용하기도 하면서 마치 닌자처럼 숲속을 질주하기를 약 30초.

전방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진하는 거대한 그림자를 포착할 수 있었다. [끄워러워어어어어!!] 거리는, 포유류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포효가 들리는 것을 보니, 목적인 마그나 테리움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들이 발견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불뿜는 곰의 거의 코 앞에서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두 플레이어. 시선을 집중(포커스)하자, 곰에게는 얇은 붉은색 커서가, 플레이어에게는 녹색 커서가 출현했다. 표시되는 HP의 잔량은 곰은 약 90%, 두 사람은 약 50%정도. 레벨까지는 모르지만, 네임드라고 해도 4계층의 몬스터인 마그나테리움에게 그렇게까지 HP가 감소했다면 기껏해봐야 10~15 언저리 정도가 아닐까.

 

"좀 위험해 보이는걸..."

 

내 말에 아스나도 짧게 '그러게'라고 답했다. 아이 컨택트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달리기의 속도를 높였다.

PK가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함과, 도망치는 두 사람이 이쪽의 기척을 알아차리기 전에

 

"헬프 들어간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친 뒤, 마그나테리움의 돌진 방향으로 끼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곰이 다시 울부짖었다.

 

"캬오오오아아아!!"

 

우람한 팔다리를 이용해 몸을 힘껏 버티고 급정지 하더니 상체를 확하고 일으켰다.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곰이 머리에 난 뿔을 흔들며 턱을 열더니, 진공청소기처럼 격렬하게 공기를 빨아들였다. 목구멍 아래에서 반짝반짝 거리며 붉은 빛이 흔들렸다. 화염브레스의 전구(사전) 이펙트다.

재작년에는 이 브레스를 회피하기 위해 숲 곳곳에 있는 샘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시점에서 등의 애검 <일루시데이터 +45>를 검집에서 빼내어 수직으로 잡는 자세를 취했다.

곰의 목구멍에서 진홍색으로 불타는 화염이 격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 타이밍에 맞춰 칼을 고속회전시켜서 방어용 소드스킬 <스피닝 실드>를 발동했다. 모션을 취할 때 다섯손가락을 사용해 스틱을 돌리는듯한 요령으로 검을 2회전 해야 해서 발동 난이도는 높은 편이지만, 불꽃과 얼음 속성의 브레스 공격을 막을 수 있는 - 유감스럽게도, 번개나 독 브레스는 막을 수 없다 - 편리한 기술이다.

내 손에서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일루시데이터의 검날은, 하얗게 빛나는 방패가 되어 곰이 내뿜는 화염 브레스를 흩날리게 했다.

기술을 유지하면서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스나, 카운터 공격 부탁할게."

 

"네-에. 맡겨둬."

 

카랑 하는 시원스런 소리를 내며 아스나의 허리에서 레이피어 <렘번트 라이트 +32>가 발검되었다.

곰의 측면으로 미끄러지는듯한 스탭으로 이동해서, 브레스 공격이 끝나는 순간, <쿼드러플 페인> 4연격을 발동시켰다.

내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만큼 빠른 신속의 찌르기 네 격이 곰의 옆구리에 붉은 십자가를 새겼다. 곰의 거대한 몸이 파랗게 빛나며 팽창하더니, 무수한 파티클을 뿌리면서 폭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약간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의 아스나의 공격력 이라면 일반 기술 한두발 이나 기본 단발기술 <리니어>만으로도 곰을 쓰러트리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왜 오버킬이라고 생각 할 수있는 4연격기술을 사용했는가 -. 라는 의문은, 곰에게서 도망치던 플레이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얼음 녹듯이 사라졌다.

 

"가... 감사합니다.!"

 

검을 다시 검집으로 넣으면서 뒤돌아보자, 거기에 나란히 서 있던건 우리와 똑같은 남녀 콤비였다. 둘다 오소독스한 방패와 한손검 사용자로, 방어구는 남자쪽이 경금속 장비, 여자쪽은 가죽장비였다. 장비 등급을 보아하니 레벨은 역시 15정도려나. 4층에서 싸울만한 마진은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절대라는 게 없는것이 SAO의 전투이다. 상대가 네임드 몬스터라면 더 그렇다.

 

"아, 이쪽이야말로, 내 마음대로 판단해서 끼어들어서 미안하게됐어."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두 사람은 완벽하게 일치된 동작으로 고개를 붕붕거리며 좌우로 수평운동을 했다.

 

"아뇨아뇨아뇨, 그렇지 않아요. 엄청 도움이 됐는걸요~."

 

라고, 이번엔 여성 플레이어 쪽이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뒤쪽에서 아스나가 다가오자 그 쪽으로도 두 명이 같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힘차게 몸을 일으킨 남성 플레이어가 아스나를 향해 탄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대단하시네요! 저 터프한 마그나테리움을, 4연격 소드 스킬 한 방으로 쓰러트리다니!"

 

저 말대로, 아스나는 분명 두 사람에게 <4연격이 필요했다>라는 생각을 들도록 만들려 한 것이다. 만약 리니어 한 방으로 곰을 쓰러트렸다면, 우리들이 공략조 라는 걸 간파 할 수도 있고, 이 소문이 최전선까지 닿을 경우, 엄격하고 고지식한 히스클리프가 [휴양이니 뭐니 라고 말해놓고, 4층 주변에서 무쌍 흉내나 내면서 노는 꼴이라니, 이게 무슨 짓인가!] 라면서 휴가를 취소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4연격으로 처치했다고 해도, 이 층에서 적절한 레벨은 아니라는것은 분명했기에, 아스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이미 HP가 거의 바닥났었는걸요..."

 

"하지만 조금밖에 못 깎았는걸요. 그리고, 브레스를 막은 기술도 굉장했어요. 그런 소드 스킬도 있었군요..."

 

감탄하는 남성 플레이어는, 아바타의 외견으로 보건데, 스무살 전후로 보였다.

붉은색과 갈색이 섞인 듯한 머리를 뒤로 묶었고, 얼굴은 꽤 용맹하게 보였다. 한편 여성플레이어는 흰색에 가까운 금발을 물결치는 듯 한 포니테일로 묶어서, 이 쪽은 어딘가 부드럽고 폭신한 외모로 보였다. 나이도 파트너 보다 약간 어리려나.

이 이상, 우리에 대한 화제가 계속 이야기 되는것을 방지하고자, 나는 두 사람에게 질문을 했다.

 

"두 분은 <옛날의 선장(*목수*)> 퀘스트를 하는건가요?"

 

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네'라고 대답하기에, 웃으며 말했다.

 

"로몰로 영감, 고집이 세서 힘들지."

 

"마, 맞아요~ 주문을 받아 줄 때까지 무진장 고생했어요~~"

 

여성 플레이어가 절절하게 동의하자, 아스나가 쿡 하며 웃었다. 일단, 두 사람이 불을 내뿜는 곰과 싸우고 있던 이유는 밝혀냈지만, 이렇게 되면 새로운 질문도 생긴다.

 

"저기... 장비로 보건데, 둘은 생산직이 아니라 전투직이지? 레벨업이 목적이라면, 왜 그런 귀찮은 퀘스트를.... 랄까, 왜 이 귀찮은 플로어에 온거야? 여기는 그냥 건너 뛰고, 5층의 지하묘지에서 사냥하는게, 돈이랑 경험치 모두 효율적으로 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들이 4층에 처음 도착했을때에는, 5층에 가기 위해 미궁구를 공략해서 플로어 보스를 쓰러트려 왕복계단을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플로어를 이동하기 위한 자신이 소유한 곤돌라가 필수적이었으나, 전이문이 개통된 지금에 와서는 이른바 <맛있는 사냥터>만을 골라서 레벨업 하는 것이 가능해졌기에, 위를 목표로 하는 플레이어의 정석이 된 것이다.

내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더니 남성쪽이 수줍은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아뇨-, 사실은 저희들, 엘프전쟁 캠페인을 하고있어서..."

 

아스나가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는 나에게만 들렸나 보다. 남자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3층의 퀘스트 보상만 받고 중단하려고 했어요. 공략본에도 4층의 이벤트 퀘는 꽤나 힘들다고 써있었으니까요."

 

"그치만~, 저희들, 어쩐지 이 이야기의 뒷 이야기가 신경쓰여서요~"

 

여성 플레이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크 엘프 측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9층의, 여왕님이 있는 성에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해서~. 뭐, 4층에서 시작하자마자 바로 막혀버렸지만~"

 

데헤헤, 거리며 웃는 여성 대신에 다시 남자쪽이 입을 열었다.

 

"저희들, 얼마 전까지 시작의 도시의 주변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인 멧돼지라던가, 웜 같은 녀석들만 잡아서 하루치 숙소비나 식사비를 벌어 지내기만 하는 생활을 했었어요. 하지만 그 짓을 1년 가까이 하다보니 어느순간 레벨이 10까지 올랐는데... 그런데 그걸 <군>한테 들키는 바람에 병사가 되라고 말하더군요. 그것만은 절대 싫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저희들이 시작의 도시를 나온거에요~. 이왕 이렇게 된거 엄청 강해지자고 생각해서요~. 두 분처럼 정말로 강한 사람들이 보면 이제 와서 겨우~ 라는 느낌일거고, 엘프 퀘스트에 고집하는 것도 비웃음을 살테지만~..."

 

여성플레이어가 다시 헤헷하면서 웃는 순간, 아스나가 외쳤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진지한 눈빛으로 두 명의 검사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목표로 노력하는 것... 이 세계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그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시기나 동기는 전혀 관계없어요... 두 분처럼 도시를 떠나 강해지자고 결심한 사람도, 생산스킬의 수행을 하는 사람도... 시작의 도시에서 하루하루 살아남으려 하는 사람들도, 모두들 이 게임에서 싸우며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이에요."

 

아스나의 말에 두 사람은 잠시동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지만, 이윽고 마음에 새기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스나가 쓰러트린 마그나테리움에게서 <환상의 곰기름>이 6개가 드롭되어서, 조선공 퀘스트에 필요한 4개를 건네주었다. 추가로 앞으로 발생할 폴른 엘프에 대한 주의사항을 덧붙여주었고, 그 두 플레이어와는 숲의 출구에서 헤어졌다.

나와 아스나는 불을 내뿜는 곰이 다시 리스폰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쓰러트리고 - 이번에는 내 <버티컬> 한방으로 끝내버렸다 - 순조롭게 목표치인 8개를 습득하고 곤돌라를 이용해 로비아로 돌아왔다.

틸넬호를 서쪽 선착장에 정박시키고, 전이문 광장에 있는 계단을 올랐다. 만약을 위해 주변을 빙 둘러봤지만 그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로몰로 노인의 공방에서 곤돌라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던 중 아스나가 불쑥 말했다.

 

"그 두 사람... 최초의 다크엘프 기사를 구해줬던걸까..."

 

나는 그건 무리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후 이뤄진 검증에서, 설령 이쪽의 레벨이 50에 도달해서 적의 엘리트 기사를 한방에 쓰러트릴 만큼 강해졌다고 해도, 캠페인의 기점 퀘스트에서 양쪽의 기사가 모두 반드시 죽는다는게 확인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스나가 우연히 조우했던, 단 한 번의 이레귤러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나는 아스나의 손을 잡으면서 대답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이제 엘프퀘를 할 거라고 했으니까."

 

"응... 그렇겠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동시에 작게 웃었다.

손을 잡은채, 다른쪽 손으로 윈도우를 열고, 아이템 스토리지에서 수수한 회색의 후드 망토를 두 개 꺼냈다. 하나를 아스나에게 건네주고 같이 장비했다.

눈을 가릴만큼 후드를 푹 눌러쓰고, 파랗게 흔들리는 전이문에 발을 내디뎠다. 숨을 크게 들이마쉰 뒤, 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전이, 알게이드!"

 

 

 

 

7

 

제 50층 주거구, 알게이드.

22층의 통나무집을 구입하고, 아스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 내가 홈으로 삼았던 도시이다. 지내고 있던 방은 아직도 빌리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 이라고 믿고 싶다.

알게이드는, 50층이 공략된 이후 10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아인크라드 최대의 도시이며, 상점도 플레이어 상점, NPC 상점을 불문하고 엄청나게 많이 있다.

그런만큼 톱 플레이어들이 이곳까지 쇼핑을 하러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여서 후드로 얼굴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이사하고나서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엄청 그립다는 생각이 드는 혼잡한 메인 거리를 잠시동안 걸으며, 한 플레이어샵의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윈도우를 펼친 채 무언가 난감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있는 가게 주인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요옷. 나 왔어."

 

그러자, 고개를 든 스킨헤드의 거한은 군데군데 자라난 턱수염이 자라난 입가를 매만지며 신음했다.

 

"왔어같은 소리하고 있네! 적어도 하루 전에는 미리 연락하라고!"

 

거한의 이름은 에길. 이 만물상을 경영할 만큼 유능한 상인이며, 공략조의 일원인, 역전의 양손도끼 사용자이다. 나나 아스나와는 제 1층 플로어 보스전에서 처음 만났었다.

후드 안에서 씨익 웃으며, 상대의 듬직한 팔을 툭 두드렸다.

 

"그거야 뭐, 너의 솜씨를 신용하고 있으니까 말이지."

 

"이런 귀찮은 주문이 그리 쉽게 가능한 줄 아냐..."

 

투덜거리는 에길을 보고 옆에서 아스나가 쿡하고 웃었다.

 

"죄송해요, 에길씨. 갑자기 힘든 부탁을 드려서."

 

"아뇨, 뭐, 괜찮습니다. 포션부터 장비까지 무엇이든 매입해서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하는게 우리가게의 모토니까."

 

미인의 스마일 효과가 바로 나타나서, 가게 주인은 미간에 잡혔던 주름을 지우고, 수상한 캐치프레이즈를 입에 담으며 윈도우를 스크롤 시켰다. 트레이드 하기 위한 아이템을 나에게 신속하게 정리해서 내놓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다이트 잉곳 30개, 아큐타이트 잉곳 20개, 오래된 티크 10개, 그레이트 록 드래곤의 힘줄 8개. 이게 도대체 무슨 재료야? 내가 아는 한 이런 레시피는 존재 하지 않는데."

 

- 사실은 거기에 환상의 곰기름 8개가 추가 되어야 하지만 말이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목공세공사 마호클에게서 의뢰받은 다섯 종류의 재료 아이템 중에서 가격은 조금 나가지만, 그럭저럭 유통이 되는 나머지 네 종류의 아이템을 구해달라고 내가 에길에게 부탁한 것이다. 곰기름을 부탁하지 않은 이유는, 4층의 조선 퀘스트 한정으로만 사용되는 재료를 이제와서 가게에 파는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도 있고, 레시피의 전부가 외부에 노출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에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재로 만들게 될 물건이 물건인만큼, 보험을 들어둔 셈이다.

에길이 나에게 건 트레이드 윈도우의 내용을 제대로 체크하고, 항목과 수량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OK, 완벽하네. 얼마야?"

 

"상대가 처음 본 손님이라면 시세보다 배는 부르겠다만... 뭐, 1만 8천콜이다."

 

만약 이게 평소 하던 거래였다면, 여기서부터 인정 따위 없는 에누리 언쟁이 시작되겠지만, 이번에는 겨우 2시간만에 이만큼의 레어 소재를 모아 준 에길의 얼굴을 봐서 순순히 값을 치루기로 했다. 윈도우에 숫자를 입력하고, 쌍방이 OK버튼을 누르자, 트레이드 성립의 효과음이 남과 동시에 윈도우가 사라졌다.

 

"땡큐, 에길."

 

"고마워요, 에길씨."

 

나와 아스나가 동시에 감사를 표하자 거한은 [매번 와줘서 고맙다]고 대답하고나서 어째선지 빙긋 웃었다.

 

"그건 그렇고 거기 두 분, 혹시..."

 

"아- 맞다, 맞다, 75층의 공략은 어때보여?"

 

에길의 부자연스럽게 캐고 들려는 질문을 중간에 셧다운 시키고 '간신히 절반 정도 한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수고 많네. 다음에 또 보자' 고 말하며 가게를 나왔다.

다시 전이문에서, 이번에는 3층 줌프트로 이동. 떠들썩한 알게이드와 전혀 다른 조용한 광장에 발을 디디자 동시에 후드 망토를 벗었다.

 

"...에길씨, 상인이 완전히 몸에 배었네."

 

"정말이지... <벤더즈 카펫>을 양보했을 때는 설마 가게까지 차리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짧게 웃고나서, 시선을 거대한 트리타워로 돌렸다.

 

"...그럼, 드디어구나."

 

 

 

"소리다이트 잉곳 30개랑, 아큐타이트 잉곳 20개... 오래된 티크 10개에 그레이트 록 드래곤의 힘줄이 8개. 그리고 환상의 곰기름이 8개, 이걸로 지정된 소재는 전부 모아왔어."

 

공방의 여유 공간에 오브젝트화한 아이템들을 차례차례로 쌓아 올리자, 목공세공사 마호클은 조그만 몸을 뒤로 젖히며 탄식했다.

 

"흐에~~. 설마 겨우 반나절만에 다 모아올 줄은 몰랐는데, 놀랍네요..."

 

소용돌이 안경이 콧등 근처까지 흘러내리자, 의외로 귀여운 두 눈이 드러났지만, 그에 대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말해도, 자력으로 모은건 <환상의 곰기름>뿐이고, 나머지는 아는 상인한테 구입해 온거지만 말야... 아, 이, 일단 말해두겠는데 <사서 오면 아웃>같은 규칙은 없었잖아?"

 

"당연히 없었죠. 훌륭한 상인과의 인맥을 가지는 것도 플레이어의 실력 중 하나니까."

 

마호클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뇌리에 에길이 뽐내는것 같은 얼굴이 떠오르는 것만 같아서, 그걸 신속히 삭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럼 이제 약속대로, 이 재료들로 뭘 만들 것인지를..."

 

거기까지 말을 내뱉은 순간, 아스나가 내 좌후방 대각선 쪽에서 내 코트를 잡아당겼다.

 

"잠깐만, 키리토군. 뭔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거 같은데. 마호클씨가 소재 아이템의 대가로 제시해 주신것은 소재의 용도가 아니라..."

 

"맞아요, 이겁니다."

 

라고 말한 목공세공사는 윈도우를 열고, 조금 떨어진 벽쪽에 거대한 테이블을 오브젝트화 시키고 테이블의 두꺼운 상판을 툭 하고 두드렸다. 그것을 보자, 그제서야 나도 제대로 된 기억을 떠올리는데 성공했다.

 

"아... 아앗, 맞다. 저 테이블을 90% 할인 해 주는 거였지."

 

"그리고, 주문하신 흔들의자도 제작해 드리는 거죠."

 

그렇지, 그렇지. 라고 인정하며 아스나가 종종걸음으로 테이블로 걸어가, 눈동자에 하트 마크 모양까지 떠올리며 복잡한 나뭇결이 새겨진 테이블의 상판을 양손으로 부비부비 쓰다듬었다.

 

"몇 번을 봐도 멋진 테이블이네요... 이 상판은 호두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거죠?"

 

"호오-, 잘 알고 계시네요, 아스나씨."

 

소용돌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마호클이 씨익 웃었다.

 

"맞습니다. 이른바 아인크라드의 5대 명목이라 불리는 것들 중 하나를 이용했지요."

 

"5대? 그 말은, 다른 4개가 더 있다는 건가?"

 

내 질문에, 마호클이 투박한 가죽장갑을 낀 오른손을 내밀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나무의 이름을 열거했다.

 

"물론 그렇죠. 호두나무, 마호가니, 티크, 흑단, 로즈우드(*자단나무*)가 이른바 S급의 목재입니다. 또 다른 S급 향나무도 있습니다만, 그쪽은 가구제작용이 아닌 소품 제작용입니다."

 

"헤에에~... 우드 크래프트의 세계도 정말로 심오하구나."

 

흠흠 하면서 감탄하자, 어째선지 아스나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주석을 덧붙였다.

 

"소재가 S급인 것만이 다가 아니야. 이 나무 상판의 커다란 크기로 보건데 레어한 호두나무 중에서도 최대급의 고목이 아니면 만들 수가 없다구. 벌채는 마호클씨가 직접 하신 건가요?"

 

"아니요, 거기까지 하기엔 스킬슬롯이 부족하더군요."

 

"아아, 그렇겠네요... 커다란 나무 벌채에는..."

 

라고 말하려는 아스나의 입을 내가 손가락으로 톡 치며 막았다.

 

"오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분명 양손도끼 스킬에 나무의 벌채력을 강화시키는 mod가 있던걸로 기억해."

 

"전투 방면으로만 지식이 치우쳐져 있는 점은 여전하네."

 

말이 중간에 잘린 아스나는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칭찬하는 걸로 받아들이자.

무기로서의 성능이 조금 애매해서, 메인 스킬로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사와 상인을 양립하려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 그 이유는, 전투를 하는 것 뿐 아니라, 목재를 벌채하는 걸로도 스킬의 숙련도가 오르는 것(효율이 좋은편은 아니지만)과, 레어한 목재는 꽤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인 즉슨, 이 커다란 테이블의 상판을 벌채한 사람은 마스터 클래스의 도끼전사라는건가..."

 

중얼거리면서 나도 감탄할만큼 두꺼운 상판을 쓰다듬자, 마호클이 톤이 약간 바뀐 목소리로 말했다.

 

"네에...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로 공방을 옮기기 전의....."

 

그러나 거기서 입을 다물더니, 수수께끼의 목공세공사는 톡하고 테이블을 두드렸다.

 

"뭐,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입니다. 자, 일을 마무리 하도록 하죠. 아스나씨, 흔들의자의 사양은 어떤걸로 하고 싶으신가요?"

 

 

 

색상, 모양, 안정감까지, 아스나가 이것저것 까다롭게 지정한 주문을, 마호클은 단 한방에 완벽히 구현했다.

완성된 흔들의자와 90% 할인 받은 테이블의 대금을 합해 총 8만콜을 바로 지불하고 - 정확히 말하자면, 소재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만 8천콜을 지불했기에 총액은 10만콜에 가깝지만, 그래도 엄청 싸게 구매한 것은 분명하다 - 다시금 감사의 말을 전하고 나와 아스나는 공방을 나왔다. 저녁식사 시간이지만 여전히 플레이어가 적은 삼층 주거구 줌프트에서, 그보다도 더 인기척이 없는 22층의 주거구 코랄로 전이했다.

마을의 NPC 상점에서 저녁식사 재료를 사 들고, 호숫가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자, 아스나가 어제 구입한 테이블을 서둘러 정리하더니, 마호클이 제작한 명목으로 만든 테이블을 오브젝트화했다.

긴 쪽에는 4명씩, 짧은쪽에는 1명씩, 총 10명이 앉을 수 있을만한 초대형의 사이즈를 보자 둘이 쓰는 식탁으로는 너무 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스나는 그런걸 신경쓰는 기색도 안 보인다. 양쪽 끝에 의자를 세트시켜 서로 마주 보도록 하고, 촛대와 플레이스 매트를 흐뭇한 표정으로 늘어놓는 것을 보고 있자니 혹시 현실세계에서도 이 정도 클래스나 되는 테이블이 있는 집의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봐봐. 이 거실에 딱 맞지! 많이 앉을수도 있고, 다음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파티 열자."

 

세팅을 마치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그렇게 말하는 아스나에게,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그럼 그때는 이걸 만들어준 마호클도 불러야겠네."

 

"그리고, 원목을 베어준 도끼전사씨도. ...자, 이제 밥 먹자."

 

테이블이 너무 거대해서 진정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흔들림이 전혀 없는 안정감과 따뜻한 감촉 덕분에 반대로 느긋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친 나는, 정리하는 아스나를 도와주고 함께 집 바깥의 현관으로 나갔다.

어느샌가 해가 완전히 졌지만, 경계선의 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눈 앞의 호수를 파랗게 빛내고 있었다. 늦가을의 밤바람이 조금 쌀쌀해서인지, 아스나가 몸을 가볍게 떨면서 딱 달라붙었다.

 

"....그러고보니, 마호클씨가 만들어준 흔들의자는 어디에 둘 거야?"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 아스나에게 물어보자, 새신부님은 조금 망설이는 듯한 소리를 했다.

 

"흐-음... 낮 동안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이 현관에 놓는게 좋을거 같고, 밤에는 집 안에 있는 벽난로 옆에 두면 좋을거 같은데."

 

"하하, 그러게. 그럼, 아예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양쪽에 두는건 어때?"

 

"어, 그래도 괜찮아?"

 

"1만콜 정도는 잠깐 사냥하러 가면 벌 수 있어."

 

라고 내가 대답하자, 아스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음-, 솔직히, 저 의자가 1만콜 인것도 너무 싸다고 생각하는데. 소재도 S급 정도는 아니지만 고급 단풍나무로 만들었고... 아마 테이블이랑 마찬가지로 재료 모으는 의뢰를 성공해서 깎아준게 아닐까."

 

"그, 그런가... 그럼, 또 무언가 의뢰를 받아야겠네."

 

"저기 말야, 마호클씨는 NPC가 아니거든?"

 

아스나는 내 등을 살짝 때리더니,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치만, 솔직히 말해서 뭔가가 만족스럽지 않아..."

 

아스나가 중얼거리는 그 소리에 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나도 그래. 마호클은 우리에게 재료를 모아오라고 시켜놓고 대체 뭘 할 생각이지..."

 

"그야, 뭔가를 만들려는거잖아?"

 

"그, 그건 나도 알고 있지. 문제는, 그 '무언가'야. 아마 발리스타가 아닐까 싶은데..."

 

"...있지, 키리토군이 고정식의 커다란 석궁이라고 말하긴 했는데 애초에 발리스타란게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이야?"

 

"으음~..."

 

나는 오른손으로 허공에 빙빙 선을 그어가며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하는지를 생각햇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전에, 더 차가워진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혀서 후엣취- 하고 커다란 재채기를 해버렸다.

그걸 보고 쿡 웃은 아스나가 내 왼팔을 잡아 당기며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자."

 

 

 

거실 서쪽 벽에 설치된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 앞에 소중한 흔들의자를 오브젝트화하자, 곧바로 아스나가 먼저 앉는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아스나는 나를 쳐다보면서 의자를 가리키더니 '응' 이라고 말했다.

 

"어... 내가 먼저 앉으라는 거야?"

 

"응."

 

"그, 그럼, 사양않고..."

 

난로의 불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는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앉았다. 체중을 싣자마자 퍽 하며 부서진 - 것은 물론 아니고, 쿠션으로 만든 앉는 자리가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절묘한 곡선을 그리는 의자 다리가 앞뒤로 편안하게 흔들렸다. 게다가, 소재의 특수 효과인건지, 메이플 시럽 같은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오오... 좀 큰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확실히 앉는 느낌이 꽤나...."

 

라고, 앉은 감상을 말하려고 했지만, 중간에 아스나가 '응~~' 같은, 고양이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내 위에 올라탔다. 아스나가 꿈틀거리며 몸을 움직이자 나도 내 손과 발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베스트 포지션을 맞추자 다시 '으으음~~~' 하며 목소리를 냈다.

 

"...과연, 둘이 앉을 때 딱 좋은 사이즈 답네..."

 

내가 납득한다는 투로 말하자 '응' 하며 고개를 끄덕인 아스나는, 이어서 '으응?'하며 말끝을 올렸다. 아무래도 방금 하던 이야기의 계속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헛기침을 하고 해설을 재개했다.

 

"그러니까, 발리스타 라는건, 고대 그리스 시대나 로마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한, 석궁을 대형화시킨 공성무기야. 지금도 영어로 탄도곡선을 발리스틱 커브(*ballistic curve*) 라고 말하는데, 그 어원이 된거지."

 

"흐음... 석궁이라고 했는데, 그럼 발사할 수 있는건 화살뿐인거야?"

 

고양이 흉내를 그만둔 아스나의 질문에 반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뭐, 기본적으로는 그렇지. 화살이지만 창 정도 되는 사이즈일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거 외에도, 바위나 철구, 혹은 화염병 같은것도 발사 할 수 있고."

 

"그렇구나..."

 

내 몸 위에서 빙글 몸을 돌린 아스나가 천장을 바라보더니 조금 진지한 말을 했다.

 

"-그렇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뭔가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헤? 뭐가?"

 

"그거. - 폴 피쳐(*fall feature*)"

 

"......아아!"

 

무심코 상체를 일으키자, 내 가슴 위에서 아스나가 10cm정도 가볍게 공중으로 떴다가, 다시 착지했다.

<기적의 상실>(폴 피쳐)이란, 옛날의 <대지 절단>에 의해 아인크라드의 각 층이 땅에서 떠오른 동시에, 마법의 힘을 잃어버린 현상을 의미한다. 엘프전쟁 캠페인 퀘스트의 마지막 부분까지 가야 나오는 설정이기에 공략조 플레이어 중에서도 이 말을 아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당연히 나와 아스나는 엘프들의 입에서 직접 들은바가 있다.

엄밀히 말해서 폴 피쳐로 인해 잃어버린 것은 마법만이 아니다. 장거리를 날아가는 무기, 즉, 활과 관련된 제조법이나 기술도 영원히 상실되었다는 설정이다. 그렇기에 아인크라드에는 활이나 화살을 제작하는 스킬(보우 크래프트(*bow craft*))도, 궁술 스킬(아처리(*archery))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지금까지 믿어왔으나-.

 

"...확실히, 발리스타도 활의 일종이긴 하지... 그럼, 발리스타의 제작법이나 조작법도 대지절단이 일어날 때 사라졌을거야. 하지만, 마호클은 분명히 발리스타를 제작할 수 있는 스킬 복합효과(콤퍼지션)를 발견했다고 말했는데, 게다가 그것 때문의 공방도 숨기게 되었다고도 말했고..."

 

"게다가, 우리들한테 발리스타의 재료처럼 보이는 아이템들을 수집해 달라는 의뢰도 했었고. 70만 콜이나 하는 테이블을 90%나 할인해주면서까지 소재를 모아달라고 했으니, 마호클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아스나의 지적에 나도 수긍했다. 몸을 움직일때마다 내 몸 이곳 저곳에 유혹적인 감각이 발생해서 양 손으로 이런 짓 저런짓을 해 보고 싶어졌지만, 지금은 일단 참고, 생각을 계속했다.

 

"그럼, 일단은, 발리스타는 <폴 피쳐>의 범위에서 제외되어서 제대로 만들 수도 있고, 조작도 가능하다고 생각을 해보자. 그렇다면, 마호클은 왜 우리들한테 소재를 모아달라고 부탁한거지? 맨 처음의 말투로 보건데, 발리스타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몸을 숨겼다는 듯한 투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말을 끝마치자, 아스나도 잠시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최대한 머리를 회전시키며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평소의 버릇대로 오른손 손가락으로 아래턱을 여러번 쓰다듬었다. 그때마다 아스나의 요염한 입술이 반짝반짝 빛나는게 보여서 다시 내 사념 미터가 상승했다. 다행히도 내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아스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아무런 근거도 없는 단순한 감이긴 한데... 나, 그 테이블의 상판을 벌채한 사람이, 이번 마호클씨의 요청에... 아니, 어쩌면 마호클씨가 공방을 줌프트로 옮기게 된 이유에까지도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이런 엄청 레어한 소재의 벌채와 가공을 서로 의뢰하는 사이니까, 그냥 오며가며 한 번 보는 사이가 아니라 좀 더 사업상의... 어쩌면 그 이상의 파트너일 가능성도 높고..."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옆으로 향한 아스나의 시선을 쫓아서, 나도 거실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테이블을 보았다. 깔끔한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상판 측면에는 나무껍질의 요철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마치 아인크라드 어딘가에서 우뚝 솟아 있었을 커다란 나무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만 같다.

 

"......뭐어, 저만큼 커다란 나무를 잘라야 했을테니까, 양손 도끼 사용자라도 상당한 숙련자겠..."

 

내 말은 거기에서 부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 되었다.

왜냐면, 뇌리에 어떤 플레이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내 뇌리에 떠오른 이미지가 전해진것처럼 아스나도 "....우냣"하며 다시 고양이 말투로 돌아가서 신음했다.

눈으로 '먼저 말씀하시죠'라며 서로 양보하다가 결국 아스나에게 진 내가 추측을 침착하게 말로 바꿨다.

 

"......만약에, 마호클의 원 파트너가, 그 바가지 씌우는 도끼 상인... 이라는 건 아니겠지......?"

 

"도끼 상인 이라고 하니까 도끼를 사고 파는 사람처럼 들리는데, 키리토군."

 

"그럼 상인 도끼전사라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 아니, 그치만, 정말로.......?"

 

"음~...... 다시 생각해 보면 잉곳이나 드래곤의 힘줄 매입을 부탁했을 때, 에길씨, 무슨 레시피인지를 궁금해 하는것 같기도 했는데... 발리스타의 재료인것 까지는 몰랐다고 해도, 무언가 걸리는게 있었을지도 몰라."

 

"으~~~~~~~음...."

 

양손을 머리뒤에서 깍지를끼고 잠시 동안 신음했다. 머릿속에서 스킨헤드의 거한과 소용돌이 안경을 낀 소녀를 나란히 세워보았지만, 뭔가 딱 와 닿는게 없었다.

하지만 그 점은,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비터인 나와 공략조의 아이돌인 아스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미스 매치 되는 느낌은 일단 보류한 채, 두 사람의 접점을 추측하려고 했다. - 그러나.

 

"...사실 나, 에길이 정확히 무엇 때문에 본격적으로 상인도 같이 하려고 한건지 전혀 모르겠어..."

 

천장의 나뭇결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아스나가 가슴쪽으로 몸을 반전시켜서, 의외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어? 그거 때문인거 아니었어? 게임 초반에 키리토군이 에길씨에게 떠맡겼던 <벤더즈 카펫>."

 

"아아, 뭐, 근본적인 원인은 그거일지도 모르지만... 에길은, 그 카펫을 받고 나서도 한동안은 '어디까지나 도끼전사가 본직이다'라고 했었거든. 노점상은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이었고. 그 뒤에 내가 에길이랑 조금 소원해지는 바람에..."

 

나 자신이 내뱉은 말때문에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서 아주 잠깐이지만 몸이 경직되었다. 그러자 내 가슴팍에 엎드려 있던 아스나가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이마와 이마를 살며시 가져다댔다. 서늘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내 통증을 녹여주고, 빨아들였다.

길고 깊은 호흡을 한 후,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 아스나."

 

"...응."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잠시 입술을 포갠 뒤, 아스나는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 등에 손을 올리고, 흔들의자를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면서 생각을 계속했다.

 

"20층 언저리까지는 활발한 공략조였던 에길이 알게이드의 메인 스트리트에 가게를 내서 본격적으로 상인이 될때까지의 시간 동안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마호클의 발리스타 제조법과 뭔가 관련이 있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인 걸까...."

 

"어, 으음~~...."

 

아스나가 내 위에서 귀여운 신음소리를 냈다.

 

"...에길씨가 우리가 부탁했던 소재 리스트를 신경쓰기는 했어도, 그게 발리스타의 재료라고는 몰랐을테니까, 예전에 마호클씨가 실제로 에길씨와 발리스타를 만들었다면 그로 인해 뭔가 사건이 일어났다던가...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확실히... 애초에, 만약 발리스타가 진짜여서 대포 수준의 사거리와 공격력이 있다고 한다면, 에길이 그걸 알고도 공략조 사람들에게 숨기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아."

 

"맞아. 그렇다고 한다면..... 으-음, 이 이상의 상상이나 가정은 무리인가..."

 

푸우~ 하고 숨을 내쉰 아스나가 몸에서 힘을 뺐다. 가벼운 밀도와 따뜻한 온도가 느껴지는 아바타를 양손으로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에길한테 직접 물어볼까."

 

그러자 내 팔안에 있던 아스나가 빠르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안돼. 마호클씨가 자신의 의지로 몸을 숨긴거라면, 상대가 에길씨라도 우리 멋대로 마호클씨의 이름을 말 해선 안돼."

 

"그,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들의 의뢰를 받은 정보상 아르고는 겨우 하룻밤만에 마호클의 공방을 찾을 수 있었다. 에길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찾으려고 생각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상태라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이상 깊이 관여 했다가 긁어 부스럼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테이블과 흔들의자를 저렴한 가격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 이후의 일은 이제 어찌 되든 상관없다... 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약간 망설임이 있다.

역시 공략조의 일원으로서, 발리스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마호클이 모아달라고 한 재료로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렇게 되면, 나머지는 사정을 알 것 같은 녀석에게 물어보는 수 밖에 없겠어."

 

"에, 누구를...?"

 

눈을 깜빡이는 아스나에게 씨익 웃어보이며 말했다.

 

"만나보면 알거야."

 

 

 

 

 

8

 

다음날 10월 27일, 오전 10시.

코랄 마을의 전이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나를 발견하더니 간소한 선물로 보이는 술병을 들어올리며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여어-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야. 미안해, 갑자기 불러내서."

 

"괜찮다니까. 이 몸이랑 너 사이에..."

 

그렇게 말하던 방문자 - 공략길드 <풍림화산>의 리더이자 카타나 사용자 클라인은, 내 뒤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아스나를 보더니, 갑자기 말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클라인씨."

 

"아... 안녕하..."

 

순간적으로 차렷자세를 취하더니, 내 옆까지 슈아악 소리를 내며 슬라이드 대시로 오더니, 내 목에 팔을 감더니 몇 미터나 끌고갔다.

 

"어... 어이, 키리도령, 이게 어떻게 된거야!? 재충전 휴가중인 네가, 왜, 뭣때문에 KoB의 아스나씨랑 같이 있는건데!?"

 

"아아-.... 저기, 그게, 그러니까 그..."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입을 우물거리기만 했다.

 

우리 둘 앞으로 다가온 아스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알려드리는게 늦어져서 정말 죄송해요, 클라인씨, 저랑 키리토군, 3일전에 결혼했어요."

 

"......................................"

 

클라인은 약 5초 동안 경직상태에 빠져있더니.

 

"뭐, 뭐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는, 클라인의 절규가 전이문 광장에 울려퍼졌다.

 

 

 

5분 뒤.

 

"<결혼>인가.... SAO에 그런 시스템이 있다는것조차도.... 싸움만 하느라 잊어버리고 있었어.... 나란 놈은...."

 

먼 곳을 응시하는 눈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카타나 사용자에게, 어떻게 츳코미를 넣을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런 것보다 말이지,"

 

"'그런거'라고오오!?"

 

"알았어, 알았어, 이번에 술이라도 마시면서 제대로 들어줄게."

 

일본식 갑옷의 등을 툭툭 치자, 클라인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어쩔 수 없구만' 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테이블의 맞은편에 안은 아스나가 쿡하고 웃었다.

주거구 코랄의 전이문 광장 한 구석. 소박한 오픈카페에는, 상쾌한 아침햇살이 흘러 넘치고 있다. 아인크라드의 NPC 음식점은 원칙적으로 음식이나 음료 반입이 허용되기에, 탁자에는 클라인이 선물로 가지고 온 브랜디 병이 올려져 있었는데, 이런 아침 볕 아래에서 독한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 그렇다고 해서 저걸로 취하지는 않겠지만 - 세 명 모두 이 가게의 명물인 생강(クロモジ)차를 주문했다.

메뉴에서 처음으로 이 이름을 봤을때는, 검은(クロ=까맣다는 뜻) 모지(モジ) 차라고? 모지라는게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스나의 말에 따르면 녹나무 과의 한 종류인 나무로, 실재로 존재하는 나무라고 한다. 고급 에센셜 오일이나 이쑤시개의 원료가 된다고 하며, 차에서도 깔끔하고 상쾌한 향기가 난다.

값이 좀 나가는 차를 홀짝이면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말인데..."

 

그렇지만, 갑자기 본론으로 들어가는것도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우선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에길한테서 들었었는데, 75층 공략, 꽤 고생하는것 같더라."

 

"아아-, 뭐 그렇지..."

 

거만한 자세로 차를 홀짝 마시고, 클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75층의 공략이 시작된지, 어어...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났나? 어제서야 겨우 마지막 필드 보스를 돌파했으니 말이지. 미궁구에 도달하는건 빨라도 아마 내일은 되어야 할 거고, 보스방까지 가는데도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렇구나..."

 

"아니다, 어쩌면 일주일이 걸려도 미궁구 돌파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뭣보다도, 기술이 가장 뛰어난 매핑장인님께서 어딘가에서 허니문 휴가를 만끽하고 있으니 말이지~~"

 

그러면서 곁눈질로 고의적으로 심술궃은 시선을 보내와서, 의자를 뒤로 기울여 그 시선을 회피하고, 못 본척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뭐,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쿼터 포인트인 75층의 플로어보스는 상당한 강적일테니까. 미궁구에서 천천히 레벨업하고, 레어아이템을 찾아내는 것도 헛되이 해서는 안되겠지.

 

"오-, 오, 유니키 님은 말씀하시는 것도 여유가 넘치시는군요"

 

"...또 뭐야, 그 유니키라는건..."

 

"당연하잖아, '유니크 스킬러'의 약자라고. 명명자는 바로 이 몸이시다."

 

"야, 그거 퍼트리고 다니지 말라고!"

 

"헹, 이미 늦었네요! 80층까지 올라가기 전에 '블래키 선생님' 대신에 '유니키 선생님'이라고 불리게 해주마."

 

"진짜 그만 두라고! 애초에, '스킬러'라는 영어 단어가 실제로 있긴 한거야!?"

 

이처럼, 약간 지성적이지 못한 대화가 오고갔다.

지금까지 옆에서 계속 참아내던 아스나가 한계를 초과했는지 '푸훗' 하고 뿜더니 이윽고 아하하하... 하고 이제까지 거의 본 적이 없는 명쾌하고 발랄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하하하..... 정말이지, 여전하네요, 둘 다."

 

바로 그 때, 나와 클라인은 뒷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멋쩍은 듯 긁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딱히 사과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 매번 공략회의에서 혼나가지고 조건반사로 이게...."

 

"나라고해서, 화내고 싶어서 화내는게 아니거든."

 

가볍게 뺨을 부풀린 아스나는 웃음을 거두더니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클라인에게 돌렸다.

 

"...일주일이 지나도 미궁구에 도착하지 못한 이유는, 필드 보스나 일반 몬스터들이 강화되어서인가요?"

 

"아-, 그건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25층이나 50층 때랑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스텝업이 된 느낌이랄까요."

 

"그런... 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스나의 표정에, 은은한 슬픔이 번지는것 같았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동안 공략조를 이끌어온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왼손을 테이블 아래로 살짝 뻗어서 아스나의 오른손을 잡아주었다. 클라인도 고개를 과장되게 흔들며 말했다.

 

"아니아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75층 공략에는 그쪽 길드의 단장 각하가 나와서 도와주고 있으니까요..."

 

그 말은 들은 나와 아스나는 동시에 놀란 소리를 내뱉었다.

혈맹기사단의 단장인 <신성검> 히스클리프는, KoB가 최강길드라고 불리기 시작한때부터 기본적으로 플로어 보스 공략전 이외에는 참가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우리들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필드 공략의 초반부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부단장인 아스나의 부재를 커버하기 위해서 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의도가 있는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그냥 많은 관중들 앞에서 듀얼에서 멋지게 패배해버린 내 삐딱한 시선때문일지도 모른다.

잡고 있던 아스나의 손을 놓은 내 왼손으로 생강차를 다시 한입 마시고, 말을 계속했다.

 

"그거 깜짝 놀랄만한 일이네... 그럼, 어제 있었던 필드 보스전에도 히스클리프가 참여한거야?"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클라인은, 탁상의 메뉴판을 마치 방패인냥 손에 들고 떠들었다.

 

"아니 뭐, 너도 알고 있겠지만, 엄청 단단하더라고. 혼자서 보스의 타겟팅이 되는데, 포션 로테이션은 커녕 스위치도 필요 없을 정도라니까. 게다가 그게 단순히 방어구의 스펙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더라고. 욕 나올만큼 쬐그만 예비동작에도 귀신같이 반응해서는, 보스가 큰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핀 포인트에서 연속해서 끊어버리더라."

 

"......흐-음"

 

카타나 사용자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지난 듀얼에서 히스클리프가 내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끊어내던 기억이 선명히 살아나서 나도 모르게 떪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클라인이 뭔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씨익 웃으면서 단장의 무용담을 추가로 히트업 시키려는지 급하게 끼어들었다

 

"아니, 이제 충분히 알겠더라고. 이대로면 플로어 보스전에서도 단장님께서 대활약을 해 줄 거고, 우리들도 조금쯤은 휴가를..."

 

"그렇게 말할줄 알았다."

 

그러자 아스나가 끼어들어서 그쪽을 보자, 새신부님은 나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내 왼쪽 어깨를 가볍게 쿡쿡 찔렀다.

 

"그럼 안돼. 키리토군. 만약 플로어보스 공략전에 협력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제대로 참여해야 하니까. 아무리 휴가 중인데다가, 길드를 탈퇴했다고 해도, 우리도 공략조인걸."

 

"아, 알고있어."

 

내가 꼬마아이 같은 대답을 하자, 아스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고, 클라인은 부보보보하는 폭음을 내며 차를 들이마셨다.

그 한 순간의 브레이크 타임을 놓치지않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의 주제를 수정했다.

 

"그런데 말야... 클라인, 너랑 에길이 처음으로 만난게 언제쯤이었지?"

 

"어엉? 뭐야, 갑자기?"

 

의심스럽다는 표정이 된 카타나 사용자의 비어있는 컵에 생강차를 추가로 따라주면서 '아니, 뭐, 그냥'이라고 얼버무렸다.

클라인은 고개를 한층 더 갸웃거리면서도, 시선을 위로 향한 채 잠시 신음했다.

 

"어~~~ 음, 그게에... 풍림화산이 최전선을 따라잡던 시절이니까, 꽤 예전일이지. 에길한테는, 소모 아이템을 공급받거나 드롭 아이템을 거래하는데도 많이 신세를 졌으니까... 그때에는 이래도 이익이 나는건가 싶을정도로 싸게 팔고 비싸게 사줬었는데, 요새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깎아서 사들이거나 바가지 씌운다는 느낌만 팍팍 든단 말이지."

 

클라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지만, 에길이 단순한 장사치여서가 아니라는 것을 나도, 클라인도 즉시 알 수 있었다. 에길은 50층 알게이드에 지은 본점에서는 상급자를 상대로 솜씨좋고 교묘한 장사를 하고, 거기서 벌어들인 이익을 아래층에 있는 지점에서 초급, 중급 플레이어들에게 환원하고 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말로는 불평하면서도, 에길과 거래를 계속하는 고레벨의 플레이어들이 많이 있다. 에길 본인은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속이 깊은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는, 데스 게임이 시작된 뒤, 초창기에는 도끼전사로 활약을 하던 에길이, 언제 상인의 길에 눈을 뜬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수수께끼가 많은 그랜드마스터 목공세공사인 마호클이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어어, 한때는 나보다 클라인 네가 에길이랑 친했었으니까. 그래서 물어보는건데, 에길이 본격적으로 상인을 시작한 계기가 뭔지 짚이는 거 없어?"

 

<한때>라고 말한 기간은, 길드 <달밤의 검은 고양이단>이 전멸했던 2023년 6월에서 2023년 크리스마스까지를 의미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클라인이 두건 아래에서 눈썹을 움찔했고, 옆의 아스나도 숨을 살짝 들이마셨다.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카타나 사용자는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으, 으으음~~...... 뭔가 이거다 라고 할 만한 계기가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도끼 전사랑 상인을 양립하다가, 어느샌가 상인쪽에 더 재미가 붙었다던가, 그런거 아닐까? 싶은데..."

 

그 말을 하고 눈썹을 다시 한 번 더 꿈틀대더니, 내 기색을 살폈다.

 

"...애초에 왜 나한테 물어보는건데? 이런건, 그냥 에길 본인한테 달려들어서 물어보면 되는거 아니냐."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거기에는 좀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마호클이 몸을 숨기려고 하는 것 이상, 이 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을 직접 꺼낼수도 없고, 하물며 에길에게 직접 물어 볼 수 없다. 애초에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클라인을 불러낸 것이다.

내 대답에 만족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클라인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기만 하고, 이야기를 되돌렸다.

 

"...역시, 뭔가 계기가 있어서 상인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왜, 도끼전사는 벌목 스킬도 같이 상승하니까 원래 상인계열 빌드랑 상성이 좋잖냐?"

 

"그렇긴 하지만, 그 순서가 반대라고 생각해요."

 

잠시동안 침묵하고 있던 아스나의 발언에, 나와 클라인의 시선이 동시에 아스나를 향했다.

아주 약간 혈맹기사단의 부단장이었던 분위기를 되찾은 새신부님은,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상인 계열의 플레이어가 호신용으로 무기 스킬을 취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도끼 스킬을 선택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전투를 하지 않아도 숙련도를 쌓을 수 있고, 모아둔 통나무를 거래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도끼전사였던 플레이어가 상인을 목표로 삼을 이유는 되지 않을거에요. 일반적으로 전투를 하는 게 숙련도를 훨씬 효율적으로 올릴 수 있잖아요?"

 

"거기에, 통나무를 모으는 것보다 몬스터가 드롭하는 아이템들을 취하는 쪽이 벌이가 더 좋을거야."

 

내 말에 아스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생강차를 두 잔째 마신 클라인은, 팔짱을 낀 채 '흐으음...'같인 신음소리를 내더니 애매모호한 말투로 다시 반박했다.

 

"그치마안... 분명히, 그 때의 에길이, 열심히 벌목을 하던 기억이 있단 말이지. 낮 동안의 공략이 끝나고 쉬는 동안에도 혼자서 여기저기 있는 숲에 들어가서 많은 통나무를 모아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유를 물어봐도, '스킬 올릴 겸, 개점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라고 말하더라니까?"

 

"에길이... 벌목을?"

 

중얼거리면서, 나와 아스나는 얼굴을 마주봤다.

2023년의 중반까지 에길은 통칭 <형님군단>이라고 하는 육체파 근육질 길드의 리더를 역임하고 있었다. 낮에는 그들과 같이 최전선 공략을 하고, 밤에는 혼자서 자금을 모으고 있었다고 한다면, 솔로로 콜을 벌기 위해 비교적 안전한 벌목꾼을 선택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경우에도 위화감이 남는다. 기본적으로 벌목 관련 작업은, 여기다 라고 정한 숲 한 군데에서 차분히 자리를 잡고 하는게 보통이다. 레어도가 높은 나무의 위치나, 벌채한 나무가 회복되는 시기를 제대로 알아낸 다음 가장 효율 좋은 순회 패턴을 만들어낸 다음 죽어라 벌목만 하는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면, 가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저축할 수가 없다. <여기저기에 있는 숲>에서 <여러 통나무>를 모은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다.

도끼전사로서의 경력이 긴 에길이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몰랐을리가 없을테니, 역시나 그 행동에는 숙련도를 올리는 것이나 자금을 벌어들이는 것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스나와 서로 마주본 채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클라인을 향해 얼굴을 돌리면서 내가 말했다.

 

"땡큐, 클라인. 엄청 도움이 됐어."

 

"하아? 이, 이걸로 끝이라고!? 아니 뭐어, 나도 슬슬 위층으로 돌아가긴 해야 하지만... 어, 엄청 신경 쓰인단 말이다-아! 둘이서 뭘 조사하고 있는건데!?"

 

갑자기 호출되어서 22층까지 왔는데, 에길과 친해졌을 무렵의 이야기만 실컷 말하고 들은 클라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나는 오랜 친구의 어깨를 탁 치고 웃으며 말했다.

 

"전부 해결되면 알려 줄 수 있는 데까지 모두 다 알려줄게."

 

한편 아스나는, 엄청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클라인씨. 사실, 저희들도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지는 잘 몰라요. 그저, 조금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다고 밖에는..."

 

이전에 <공략귀신>으로 불리던 아스나가 이렇게 사과의 말을 하자, 클라인도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는 못하고,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어, 아스나씨가 그렇게까지 말하시니까... 그보다 그, 새삼스럽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닷!"

 

"고맙습니다."

 

커다란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아스나의 미소가 갖는 유니크 스킬도 뛰어넘는 위력에, 카타나 사용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액체상태가 되었다.

 

"아니요-! 그, 뭐냐, 행복하십시오."

 

"75층의 공략이 끝나면, 그동안 신세를 진 다른 분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 예정이니까, 그때는 클라인 씨도 꼭 와주세요."

 

"그, 그거야 당연히! 졸자, 땅끝에서라도 반드시 달려오겠습니다!"

 

놧핫핫하하, 하는 클라인의 웃음을 들으며, "에... 파티 라던가 하는거야? 그거, 다른 사람들도 더 부르는거야?" 라며 전율하는 나였다.

 

 

 

 

9

 

"......저기, 키리토군."

 

통나무집 안의 벽난로 앞에 설치한 흔들의자에서, 어제랑 똑같이 나랑 앉아있던 아스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점심을 먹고 난 뒤의 수마에게 마구 공격 당하고 있던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면서 마찬가지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있잖아... 어쩐지, 이 이상 조사하지 않는 편이 좋을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오른쪽 팔걸이에 몸을 기대서 약 120도 기울인 채로, 내 위에서 엎드려 있던 아스나는 적갈색 머리 한다발을 손 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에길씨가 하던 한밤중에 통나무를 수집하던 일이, 마호클씨와 어떤 관계가 있다고 해도... 에길씨는 친하게 지내던 클라인씨에게까지도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어. 거기에는 뭔가 깊은 이유가 있을거고... 그럼, 우리가 이제와서 그 비밀을 폭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으-음...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아스나의 의견에 찬성하면서 다시 눈꺼풀이 감기려 했지만, 밀착 된 아바타에게서 전해지는 온기와 부드러움, 확실한 무게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마호클은, 노포(발리스타)의 레시피를 발견하는 바람에 가게를 접고 3층에 몸을 숨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고 말했었지. 그렇지만 그녀는, 이 흔들의자를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발리스타의 재료료 생각되는 아이템의 수집을 우리들에게 의뢰했어... 분명 이 말과 행동사이에는 모순이 있고, 어쩌면 우리도 모종의 트러블에 휘말리게 될 지도 모르지... 만에 하나, 마호클이 발리스타를 만들어서 위험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거라면... 그래서 그녀가 실제로 위해를 가하게 된다면... "

 

"발리스타의 소재를 모아다 준 우리의 책임도 있다, 는 거겠지..."

 

아스나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렇게 단정지으며, 말 끝을 한숨으로 덮었다.

<기적의 상실(폴 피쳐)>로 인해 활과 화살과 관련이 있는 모든 기술들이 손실되었다 - 라는 설정을 가진 SAO에서는, 활 계열의 무기를 제작하는 스킬도, 전투 계열 스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활의 우두머리라고 칭해도 좋을 발리스타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제작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 할 거라 생각되지만, SAO의 게임 시스템 및 시스템 관리자가 완전무결, 무오무류(*잘못되거나 틀린것이 없고, 실수도 하지 않음*)한 것도 아니어서, 예전에는 광석이 무한히 솟아나오는 명소가 나타났던 적도 있었고, 스토리가 파탄난 퀘스트를 설정하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저질러 놓은 여러 전설이 있다.

따라서 발리스타도, 무심코 놓치고 말았다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경우 시스템에 감지 된다면 즉시 처리 될 터이지만, 처리 되기 전에 마호클이 뭔가 큰일을 저질러서 그녀의 몸에 모종의 위험이 닥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마호클이 의뢰한 소재를 모으기 전에 나는 '만약, 마호클이 뭔가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할 것 같으면, 알아낸 다음 멈춰도 될거다' 라고 말했었어. 이제와서 그 말을 거짓말이라고 말 할 생각은 없어. 이야기를 직접 해보기전에, 우리가 자세한 사정을 조사해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무리인것 같으니, 다시 한번 더 줌프트의 공방으로 가서 마호클 본인에게 물어보는 수 밖에 없겠지... 발리스타를 만들 것인지, 만일 만들거라면 그걸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응..."

 

아스나는 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지만, 이내 가볍게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내 경험상, 생산계열 스킬을 완전 습득한 플레이어들은 대개 완고하고 고집이 센 편인걸.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어지간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 이상 결정을 번복하지 않아... 하물며 마호클씨는 목공 세공을 컴플리트, 재봉과 장병무기제작도 마스터 클래스까지 올린 사람인걸."

 

"...그런가..."

 

아스나의 말을 긍정하면서, 나는 아스나의 등과 허리에 흘러내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본인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지만, 아스나 자신도 요리스킬을 완전 습득한 끈기의 소유자다. 그리고 또한, 무언가 하나를 하자고 정하면 그것을 반드시 해내는 완고함도 갖고있다.

 

"...확실히, 어제 처음 만났을뿐인 우리들이 말을 한다고 해서 마호클에게 닿을 것 같지는 않아. 예전에 그녀의 파트너였을 도끼전사가 누군지 알아내기만 한다면.... - 나는 에길이라는 데에 50콜을 걸고 싶지만,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좀..."

 

"나는 75콜을 걸어도 상관없지만, 마호클씨가 3층에 몸을 숨긴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상, 다른데서 이름을 댈 수는 없어."

 

"적어도, 에길이 문제의 도끼전사라는 확신이라도 있었다면..."

 

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흔들의자를 있는 힘것 뒤로 밀어 넘어뜨렸다. 절묘한 길이와 곡률로 만들어진 다리는 두 사람분의 무게를 간단히 받아들여서 시소처럼 느긋하게 흔들렸다, 의자가 뒤에까지 기울자 거실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테이블이 시야에 들어왔다. 측면에 나무껍질의 요철이 그대로 사용된 탓에, 바로 옆에서 보면 마치 과거에 숲 속에 솟아있을때의 훌륭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앗!"

 

갑작스러운 작은 외침과 함께, 나는 의자의 앞뒤 운동을 멈췄다. 내 가슴 위에 있는 아스나가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니... 저 테이블의 재료가 된 나무를, 분명 마호클은 이 곳 22층에서 벌채했었다고 말했지?"

 

"그랬지."

 

"좋았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흔들의자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내 가슴에 올라타고 있던 아스나를 양 팔로 안아들고서.

 

"꺄악... 잠, 잠깐만, 무슨 일인데 그래!?"

 

"이제 금방 설명해줄게!"

 

아스나를 옆으로 껴안은채 주방의 안쪽에 있는 식품 저장실(펜트리)를 목표로 대쉬. 이 통나무집은 단층이지만, 펜트리에는 지붕위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그 앞에 잠시 멈춰서서 품에 안고있는 아스나를 '영차' 하며 들어올린 다음 사다리를 붙잡았다.

 

"우선 지붕으로 나가보자!"

 

"정말... 알았다구."

 

한숨을 내쉬며, 아스나는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늘하늘 거리는 스커트를 바라보는 것을 되도록 자제하다가 '나왔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자 나도 전속력으로 올라갔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창을 통해 판자로 지어진 지붕으로 나갔는데, 그곳에 아스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떨어진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가파른 각도의 지붕위를 살금살금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왁!!"

 

하는 커다란 소리가 뒤에서 갑자기 들려서, 내 몸을 지탱하던 다리가 오 센치 정도 미끄러졌다.

 

"누와아아아아아!!"

 

양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내 몸은 지붕의 가장자리 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졌다. 물론, 레벨 90이 넘어가는 지금이면 겨우 2층 높이에서 떨어진다고해서 대미지를 입지는 않겠지만, 꼴사납게 보이는건 또 다른 문제다.

 

"후우우우우우움!!"

 

신음소리를 내뱉으면서 양 팔의 회전속도를 더 빠르게 해서 자이로 효과 - 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겨우 자세를 다잡는데 성공해서 쌔액쌔액 거리며 숨을 쉬고 돌아봤다.

 

"해, 했겠다!"

 

"아하하, 방금 그 자세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다니, 엄청난 민첩성이네!"

 

배를 움켜잡고 웃는 아스나를 향해 나는 복수귀로 변신해서 접근했다.

 

"민첩성뿐만이 아니라... 근력도 엄청나다는걸 보여주마-!!"

 

라고 외치며 몸을 굽혀서 아스나의 양 다리를 껴안았다.

 

"꺄아아아아아아!?"

 

새신부님이 비명을 지르면서 내 머리를 딱딱 때렸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으쌰-!" 기합을 넣고 수직으로 들어올리자, 공중에서 반전, 새하얗고 가느다란 아스나의 양 다리를 내 양 어깨에 올려놓은 자세로 단단히 홀드. 머리에 펄럭하고 스커트가 떨어졌다.

자세가 안정되었지만서도, 아스나는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뭘, 뭐, 뭐하는거야!?"

 

"뭐긴, 목말 태우는거지"

 

"그건 나도 아는데! 내 말은, 왜 이런짓을 하는건지 물어보는 거라구!"

 

"왜냐면, 이게 필요하기 하기 때문이야."

 

우렁차게 대답한뒤 나는 지붕의 경사면을 달려 올라가 꼭대기에서 멈춰섰다.

통나무집이 단층이긴해도, 22층의 필드 기준 높이인 호숫가에서 한참 비탈길을 올라가는 이 높이에 있으니 전망은 꽤나 좋았다. 내 어깨에 앉아있는 아스나는 더더욱 좋은 전망이 보일 것이다.

그 덕분인지, 이제 얌전하게 있는 아스나에게 내가 질문을 했다.

 

"있잖아, 그 테이블의 재료로 쓴 건 나무, 그 중에서도 호두나무의 고목이라고 그랬었지."

 

"...그랬는데?"

 

"호두나무라고 하면, 즉 활엽수라는 거지."

 

"...활엽수?"

 

"그럼, 기본적으로 침엽수만 있는 이 플로어에서는 금방 눈에 띌거야. 거기에서 필드를 둘러보고, 같은 나무가 있는지 찾아보자!"

 

"......그건 괜찮지만..."

 

그렇게 대답하더니, 아스나가 양 다리로 내 목을 꽉 졸랐다

 

"쿠엑....."

 

"....갑자기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앞으로 내가 목말 타고 싶다고 말하면, 장소에 상관없이 내 말을 들어줄거지?"

 

"어... 어디에서든지?"

 

꾸우욱-

 

"아... 알겠습니다."

 

우격다짐으로 원하는 답을 얻어낸 뒤에야 아스나는 그제서야 삼각조르기를 그만뒀다. 도대체 어디에서 목말을 타고싶다고 말할지를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

 

"...그래서, 어때? 호두나무를 찾을 수 있겠어?"

 

"으-음....."

 

머리위에서 아스나가 몸을 좌우로 흔드는 기색이 느껴지더니, 잠시 후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활엽수를 찾을 수 있겠냐고 물어봐도, 이 플로어는 기본적으로 나무들만 있는걸. 랄까, 호두나무가 제아무리 크다고 해도, 여기에서 주로 자라나는 가문비 나무보다는 작잖아. 가문비나무는 최대 50미터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호두나무는 아무리 크게 자란다고 해도 겨우 20미터.... 앗."

 

아스나의 수목 토막지식이, 작은 목소리와 함께 중단됐다. 위로 향하던 내 머리를, 아스나가 양 손으로 꽉 눌렀다.

 

"키리토군, 우측으로 30도 정도 돈 다음에 점프해봐!"

 

"에, 에에...?"

 

"얼른, 빨리!"

 

목이 마치 조이스틱처럼 오른쪽으로 뒤틀어져서, 목말 작전을 발안한 나로서는 아스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지붕의 중앙을 향해 조심스레 우회전해서, 양 발로 힘껏 버텼다.

 

"조, 좋아, 뛴다! 하나, 둘..."

 

아스나의 양 다리를 손으로 단단히 잡고, '셋!'하는 구령과 함께, 나는 있는 힘껏 위로 뛰어올랐다. 현실세계에서의 인도어파인 내 몸이라면, 제아무리 가벼운 여자를 어깨 위에 태운다 하더라도 30센치도 뛸 수 없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수치적인 스테이터스가 전부다. 있는 힘껏, 이라고는 해도, 안전을 배려해서 다소나마 세이브했지만, 통나무집의 지붕에서 2미터 가까이 뛰어올랐다.

수직 점프의 가장 끝부분에 도달한 순간, 아스나가 또 다시 '앗!'하고 외쳤다. 한편, 나는 최대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착지하는데 최대한 집중해서 꽤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냈지만, 내 머리위의 공주님께서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는지, 내 머리를 다시 때렸다.

 

"다시 한 번 더! 한 번만 더!"

 

꼬마애냐! 고 생각했지만 매우 조신하게 입 밖으로는 내지 않고, 두번째 점프! 그 다음 계속해서 세번째, 네번째까지 점프하자 그제서야 겨우 만족했는지 아스나는 내 이마 근처까지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고 플로어 남동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 그거랑 같은 나무가 있는 것 같아."

 

"에... 잘 찾아냈네."

 

"호두나무는 가문비나무보다 높이가 낮지만, 낙엽수이기 때문에 이 계절이면 잎이 노랗게 돼. 나뭇가지 사이로 노란색이 언뜻 보였어."

 

"헤에... 그랬구나."

 

아인크라드는, 플로어마다 사계절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이 22층은 사계절의 구분이 있는 플로어다. 따라서 낙엽수면 단풍이 들거나, 잎이 떨어지거나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그런 변화를 신경쓴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나무의 종류를 심각하게 인식해 본 적은, 35층에서 전나무와 삼나무를 구별하려던 때 뿐이다.

끄덕이는 내 머리를 아스나가 다시 가볍게 두드렸다.

 

"자, 빨리 가 보자!"

 

"아... 알겠어."

 

지붕 끝까지 이동해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방금전까지 몇번이나 착지 연습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높이라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단숨에 뛰어내렸다. 이번에도 착지는 완벽했지만, 아스나는 감명받은 기색도 없이 다시 남쪽을 가리켰다.

 

"자, 출발 전진!"

 

내가 계속해서 목말을 태울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숲 속의 오솔길을 50미터 가까이 들어간 뒤의 일이었다.

 

 

 

처음에 할 때는 그렇게나 꺄악- 꺄악- 거리더니, 막상 내릴때가 되자 왠지 묘하게 꺼려하던 아스나와 함께 걷기 시작한 지 약 20분.

도중에 길을 벗어났기 때문에 정말로 이 방향이 맞는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하던 나의 시야를, 화려한 색채의 무언가가 가로질렀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뻗어서 잡은것은, 진한 노란색으로 물든 타원형의 잎사귀였다. 아인크라드에서 낙엽은 기본적으로 일시적 오브젝트 취급이기에, 잎사귀는 어느새 내 손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그것을 본 아스나가 말했다.

 

"방금 거, 호두나무 잎이야."

 

"헤에... 잎의 형태까지 식별해 낼 수 있구나."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현실세계(저쪽)의 집 마당에..."

 

입을 열기 시작한 아스나의 바로 눈 앞을, 두 번째의 노란색 잎이 팔랑팔랑 지나가더니, 땅에 떨어져 사라졌다. 말 없이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낙옆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돌진.

아스나의 안내를 따라 거무스름하고 칙칙한 나무껍질의 삼나무 종류인 거대한 가문비 나무를 돌아서 약 수십미터를 나아가자, 갑자기 눈 앞이 밝아졌다. 침엽수로 이루어진 숲이 둥그렇게 열리고, 그 중앙에 활엽수가 당당한 모습으로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펼친 채 서 있었다.

높이는 주변에 있는 가문비 나무들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줄기의 굵기는 그것들을 상회하고도 남았다. 방금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타원형의 잎은 화려하게 물들어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팔랑팔랑 흘러가는 모습은 마치 황금으로 된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이곳이 현실세계의 숲이라면, 높이 솟아있는 삼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서 관목(키가 작은 나무)이 되어버렸겠지만, 가상세계의 호두 - 거대한 검은 호두나무는 마치 숲의 왕처럼 주위의 가문비 나무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아스나는 아무런 말 없이 나무에 다가가서 울퉁불퉁하고 거친 나무 껍질에 각자의 손을 가져다댔다.

마호클은 우리들이 90% 할인가로 구입한 호두나무 테이블의 소재가 된 나무를 벌채한 것이 이 22층이라고 말했었으니, 당연히 우리 눈 앞의 이 나무가 그 때 그 나무일리는 없다. 현실세계에서는 나무를 한 번 벌목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아인크라드에서는 기본적으로 그 어떤 커다란 나무던지 무한히 부활하기 때문에 - 크기나 레어도에 따라 부활하는 시간이 늘어나긴 하지만 - 초인적인 기억력이 있는게 아닌 이상, 표시라도 붙이지 않는다면 판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경 8km에 달하는 광대한 22층에서도 이렇게 멋진 S급 고목은 쉽사리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코랄 마을에서 만났던 클라인은, 도끼전사이자 상인인 에길이 한때 곳곳의 층에서 여러종류의 목재를 모으고 다녔다고 말했다. 단순히 스킬을 올리려는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었다면, 그가 예전에 마호클의 지시대로 이 호두나무를 베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혹시 <한 번 벌채한 나무를 두 번이나 벌채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한다면-.

 

"...그래서, 키리토군. 나한테 목말까지 시키면서 찾으려고 했던 이 나무가 도대체 어쨌단거야?"

 

자기도 꽤 즐기고 있었으면서, 라는 말은 하지 않은채, 나는 호두나무에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곧 설명해줄건데, 그전에 잠깐 물건 찾는걸 도와주지 않을래?"

 

"에? 상관없지만... 뭘 찾는건데?"

 

"근처에 있는 삼나무... 가 아니라 가문비 나무의 줄기에 무언가가 박혀있을거라고 생각해."

 

"무언가라니..."

 

수상쩍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도, 아스나도 근처에 있는 침엽수를 올려다보았다. 그 머리를 오른손으로 잡고 각도를 세밀하게 조절했다.

 

"아마도,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고, 체격이 좋은 플레이어가 한계까지 도달할 정도의 높이 정도일거라 생각해."

 

"상당히 구체적이네."

 

다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아스나가 갑자기 세 번 눈을 깜빡이더니 내 등 뒤를 가리켰다.

 

"앗, 키리토군, 저기!"

 

서둘러서 뒤를 돌아보자, 예상대로 가문비 나무의 한 줄기에, 희미한 은빛이 빛나는 무언가가 꽃혀있었다.

높이는 내가 예상한대로, 신장 193cm에 가까운 플레이어가 힘껏 손을 뻗은 높이였다.

대쉬해서 달려가 올려다본 그것은, 내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 되는 한 개의 못이었다. 내 뒤를 따라온 아스나가 놀란듯이 말했다.

 

"우와아, 커다란 못이네. 그치만, 왜 이런게 박혀있는걸까."

 

"아마도 그걸거야. 누군가를 저주하려 한 플레이어가, 예전에 저기에다 커다란 짚인형을 쾅, 쾅 하고..."

 

"잠깐... 하, 하지마. 그런 얘기!"

 

아스트랄계 몬스터라면 아주 질색하시는 부단장님이, 내 오른쪽 팔꿈치를 꽉 꼬집었다. 빠르게 사과하면서 추측을 정정해줬다.

 

"미안, 미안. 저건 단순한 표식이야."

 

"표식...?"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스나에게서 약간 떨어진 나는 가볍게 지면을 걷어찼다. 못이 박혀있는 지점은 지면에서 약 2m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오른손을 뻗자 간단히 못에 도달했다. 왼손으로 가문비 나무의 줄기를 꽉 붙잡고, 못을 꽉 잡아 힘껏 잡아당겨서 뽑아냈다.

기세를 살려 뒤로 공중제비 두 바퀴를 선보이며 착지한 뒤, 오른손의 못을 아스나에게 보여주었다. 두께는 1cm, 길이는 20cm 정도로, 내가 애용하는 투척용 픽보다 크다.

 

"이건, 예전부터 계속 남아있던, 호두나무를 벌채한 나무꾼이 같은 나무를 또 베어버리지 않도록 근처의 나무에 남긴 표시야."

 

"예전부터 계속 이라니... 그치만, 필드에 아이템을 방치하면 내구도가 소모되어 사라지잖아?"

 

아스나의 지적에 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 <영구보존 트린킷>에 넣지 않는한. 하지만 아인크라드의 원칙에서 본다면..."

 

"아마도 예외라는 거겠지."

 

내 말을 이어받은 아스나가, 가문비나무를 쳐다보더니 다시 나를 보았다.

 

"그렇구나... 그거 무기가 아니라, 목공용 못이지? 나무에 꽃아넣은 못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던가?"

 

"거의 정답. 덧붙이자면, 이건 트리하우스 제작용으로 만들어진 못이야."

 

"트리하우스...? 아인크라드에서 그런것도 만들 수 있어?"

 

"아아, 나도 실물은 옛날에 몇 번 보기만 했을 뿐이지만. 트리하우스 용의 재료를 만들려면 꽤 숙련도 높은 목공기술이 필요하고, 게다가 안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유행하지는 않았어."

 

"안전성... 나무를 타는 몬스터한테 습격을 받는다던가?"

 

라고 말하며, 아스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플로어에는 나무를 탈 수 있는 원숭이계열이나 벌레계열의 몬스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무방비하게 숲 속을 걸어다니다가 나무 위에서 습격당하기도 한다.

 

"뭐, 그것도 있지만, 문제가 되는건 다른 플레이어의 못된 장난이었어. 트리하우스는 필드에 있는 나무에 만들 수 있는게 장점이지만, 그게 약점이기도 해서..."

 

"아, 그렇구나. 하우스를 만든 나무 자체를 벌목해서 쓰러트려 버리는거구나. 안에서 자다가 깜짝 놀랄거야, 그거."

 

"그렇겠지. 게다가, 단순히 못된 장난 수준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도둑질이나 PK를 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 이유가 있어서 트리하우스를 만들게 된다면 플레이어 홈의 부지내에 있는 나무에만 만들도록 주의환기가 된건데, 애초에 정원이 딸린 집을 살 수 있다면..."

 

"일부러 좁은 트리하우스 같은 걸 만들리가 없다, 는 거구나. 어린아이가 있다면 또 몰라도."

 

그런말을 한 아스나가, 뭔가를 상상하더니 퐁하고 터질듯한 얼굴이 되어버려서 나는 무심코 헛기침을 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뭐, 뭐어, 그런 이유 때문에, 트리하우스는 순식간에 유행이 지나가 버렸지만, 이 녀석을 표식으로 사용한 플레이어는 그 재료들 중에서 못만 유효하게 사용한 셈이지."

 

"...그렇구나아... 그래서, 그 못을 어떻게 할 생각..."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현실로 돌아온 아스나가, 거기까지 말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앗... 방금, 트리하우스의 재료를 만들려면 목공 스킬이 필요하다, 고 말했었지? 그 말인 즉, 이 못은 상점에서 판매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예스."

 

"그렇다는 말은, 이 못은... 플레이어 메이드?"

 

"예스."

 

내가 두 번 연속으로 예스라고 긍정하자, 아스나는 그제서야 납득이 되었는지 웃음을 지었다.

 

"그럼 다음에 갈 곳은 이미 정해진거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크엘프 퀘스트 때문에라도 프로그레시브가 참 고픈데... 이 정도면 배드 or 데드엔딩은 거의 확정인듯 싶습니다.

 

 

광석이 무한히 솟아나오는 장소 = 프로그레시브 4권에서 언급

영구 보존 트린킷 = 8권 권내사건에서 언급

목말 = 2권 유이 만날 때 등 여러 설정들이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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